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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음 Dec 03. 2022

플러르 드 꾸흐제뜨 팍시/
호박꽃요리

가을을 위로하는 초여름의 미식 

  괴산으로 귀촌한 지 5년 차가 되어가는 엄마는 마당에 세상의 모든 꽃을 하나하나 심고 가꾸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았다. 노년의 힘겨운 노력이 집대성된 꽃밭에서 새로운 꽃봉오리가 맺힐 때마다 전화로 때로는 사진으로 자랑을 했다. 

  여름이 막 시작되어 오렌지 껍질이 터지는 듯 싱그러운 오후였다.

  엄마가 보내온 사진은 새로 심은 복숭아나무였다.

  복숭아나무는 가느다랗고 키는 껑충해서 볼품이 없었다. 열매가 달려도 큰 문제를 일으킬 만한 허약한 자태로 마당가에 심어져 있었다.

  사진을 들여다보다 예의상 한 마디를 건네려다 말고 복숭아나무 뒤 비탈에 노랗게 피어있는 꽃 무더기를 발견했다. 엄지와 검지를 벌려 화면을 확대했다. 아마도. 호박꽃이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내일 호박꽃 좀 따러 가도 될까. 

  호박꽃은 뭐하려고. 필요하면 언제든 가져가도 되지.

  아무래도 독감에 걸린 게 분명했다. 며칠 사이에 3kg이나 빠졌다. 아날로그 체중계가 고장이 났는지 몇 번 툭툭 쳐봤지만 H가 올라가 보고 나서는 정상임을 확인했다.  

  옷을 겹겹이 껴입고 담요를 덮어도 오한이 났다. 실내온도는 19도에서 라디에이터를 올려놔도 20도를 넘지 않았다. 

  프랑스 아파트의 권장 실내온도는 춥긴 하지만 건강하게 날 수 있는 온도이기는 했다. 다만, 이렇게 아플 때는 견디기가 힘들었다. 벽난로라도 있다면 불이라도 피워보겠지만 그때 우리에게는 실내온도를 올릴 만한 그 무엇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옆 동네의 제네랄리스트/일반의에게 예약을 하고 거의 기어가듯 엉금엉금 아파트 안에 있는 병원으로 들어섰다. 간호사도 없는 개인 공간에서 의사는 열부터 쟀다. 체온을 확인하고는 울랄라ohlala 중얼거렸다.

  역시 독감이었다. 처방전을 썼다. 그리고 처방약 외에 오렌지주스 1리터와 비타민C 복용 등을 지시했다. 

  병원을 나서는데 문 앞 대형 거울에 시선이 잠깐 머물렀다. 

  머리는 산발을 하고 무릎이 나온 운동복을 대충 걸친 한 여자. 볼이 움푹 꺼지고 퀭한 눈빛은 초점이 없었다. 늘 보던, 까르푸 앞에 상주하는 노숙자와 다를 바가 없었다. 재빨리 거울로부터 눈을 돌렸다. 고열에 허상을 본 것이라고 생각했다.

  H의 부축을 받으며 길을 나섰다. 

  가을은 해를 어디엔가 감춰두고 햇빛 한 줄기를 내어주지 않았다. 바람만 여기저기 쏘다니는 회색의 거리 한가운데 서자 갑자기 설움이 북받쳤다. 무릎이 풀려 주저앉았다. 차마 소리는 내지 못한 채 눈물을 조금 떨궜다.


  가을이 되면 태양이 사라졌다. 빛이 없어졌다. 모두가 우울해지는 계절이 되었다. 어둡고 축축하고 비가 내리거나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병원에서는 비타민 D를 처방했고 방송에서는 가을의 자살률에 대해 이야기했다.

  날씨는 사람을 농락했다. 특히 마음이 약한 있는 사람은 취약한 계절이었다. 

 H가 학교로 출근을 하고 S를 갸흐드리/유아원에 보내고 나면 쓸쓸하게 흔들리는 가로수를 바라보며 그냥 울었다. 하루의 일과처럼 울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게 더 미칠 노릇이었다. 울다 지칠 때쯤 일어나 빨래를 하고 청소를 했다. 그러면서 울컥울컥 눈물을 쏟았다.


  약국으로 갈 일에 마음이 급해졌다. 문 닫기 전에 어서 약을 사서 먹자. 아프면 안 돼. 타지의 삶은 아프면 안 된다는 강박이 일상을 팽팽하게 만들었다. 각종 매장이 한 건물에 모여있는 곳으로 향했다. 

  약국에서 약을 샀다. 맞은편에는 픽업을 할 수 있는 식사메뉴를 무게로 판매하는 작은 매장이 있었다. 음식이 놓여있는 커다란 유리 가림막 앞에 서자 강한 식욕이 생겼다. 마침 그날 메뉴의 주제는 팍시farci였다.

   토마토 팍시, 가지 팍시, 호박 팍시, 파프리카 팍시. 

  채울 수 있는 채소는 모두 속이 꽉 채워져 오븐에서 보기 좋게 그을려 있었다. 쳐다보는데도 침이 고였다. 하지만 며칠 전, 다른 곳에서 본 호박꽃 팍시는 없었다. 호박꽃 팍시에 대해 물었지만 없다는 단호한 대답을 들었다. 아쉬웠다. 

  꽃으로 만든 팍시를 접시 위에 올려 오븐에 따끈하게 데운 후 무릎에 올려놓고 감상하고 싶었다. 깊고 그윽한 노란 꽃잎과 그 안을 채운 프로마주를 보며 아름다운 것에 대한 고찰을 하고 싶었다. 눈을 정화하고 싶었다. 그래야 거울에서 본 그 사람을 잊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꽃 대신 열매 팍시를 종류대로 사 왔고 숙제를 하듯 담요를 뒤집어쓰고 꾸역꾸역 다 먹었다. 

  아쉬움은 여전히 빈 접시 위에 남아 있었다.


  엄마의 정원에는 호박꽃이 지천이었다. 도시에서는 절대 구할 수 없는 싱싱한 호박꽃. 

  흥분상태가 되어 호박꽃을 향해 돌진하려는 찰나, 엄마는 잠깐!! 외쳤다. 

  암꽃은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 수꽃만 따야 돼. 만약 암꽃을 딴 걸 발견할 시에는 용서하지 않겠어.

  암꽃은 뭐고 수꽃은 뭐란 말인가. 호박꽃이 그저 호박꽃이 아니란 말이야. 이런 난제가 있을 줄이야. 

  암꽃은 꽃받침 바로 아래 호박이 열려 있어. 암꽃을 따면 호박도 버리는 거야. 수꽃은 할 일을 다했으니 따도 된다.

  

  호박꽃 더미에는 수많은 호박꽃과 셀 수 없이 많은 모기가 공존하고 있었다. 호박꽃 한 송이에 모기 열 마리의 공격. 게다가 암꽃과 수꽃을 구별하기 위해 속도를 낼 수가 없어서 몇 송이 따기도 전에 양팔과 드러난 모든 곳은 모기들의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이런 흡혈귀들. 하지만 싱싱한 호박꽃이라니. 충분한 보상이었다.

  그날 저녁, 호박꽃의 수술과 암술을 떼어내고 조심스럽게 씻어 물기를 없애고 염소 치즈와 생 치즈, 올리브, 버섯 등을 다져 넣어 속을 채운 뒤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을 뿌리고 오븐에서 구워냈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 입.

  

  오래전, 길에 주저앉아 울던 낯선 거리의 나를 담담하게 바라보는 시간.

  독감의 통증이 눈물의 이유가 아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위로.

  그래. 그랬지.

  

 팍시farci는 채운다는 뜻으로 대표적인 재료로 토마토가 있다. 이 메뉴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크로아티아 모임에서도 전통요리로 내놓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채우는 속의 재료가 약간씩 달라질 뿐 팍시는 국경을 넘어 대중적인 메뉴일 수도. 


<만들기>

  **싱싱한 호박꽃을 구하기만 한다면 요리 거의 완성

1. 호박꽃의 술을 조심스럽게 떼어낸다. 잘못하면 꽃받침 쪽에 구멍이 날 수도 있다.

2. 염소치즈와 생치즈, 없다면 집에 있는 치즈들을 섞는다. 

3. 버섯, 올리브 등 어울릴 만한 재료를 다진다.

4. 치즈와 다진 재료를 섞어 호박꽃에 채운다.

5. 엑스트라버진올리브오일을 슥슥 뿌린다.

6. 오븐에 보기좋은 갈색이 될떄까지 굽는다.

7. 본아뻬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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