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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gan Lee Sep 20. 2022

소속감이라는 이름의 중독

나 자신에게 온전히 소속될 수 있는 용기

벌써 3개월 후면 서른이 되는 나는 그 참을 수 없는 무게감에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단순히 나이 앞자리만 바뀌는 건데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 생각을 해보니 정신없이 달려온 나의 시간이 온전히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인 것 같다. 


뒤돌아보면 지난 시간 동안 나는 항상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었다. 한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거쳐가는 초중고등학교 국민 공통 기본교육과정은 물론이고, 70% 이상(국내 대학 진학률)이 경험한다는 대학생활과 약 5년간의 회사생활까지. 심지어 대학시절 1년의 휴학기간 동안에도 나는 연고도 없는 마카오에 해외인턴십을 다녀왔었지. 소속감이라는 건 마치 추운 겨울에 마시는 뱅쇼(와인에 여러 과일과 계피를 비롯한 향신료를 넣고 끓여 만든 음료수) 한 잔과 같아서 한번 그 따뜻한 달콤함을 맛보면 그다음 한 입을 계속해서 찾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학생,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이 그러했다. XX학교를 다니는 누구, XX회사를 다니는 누구라는 것처럼 나를 쉽게 소개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이쯤 되면 왜 많은 사람들이 학벌 또는 회사 네임밸류에 집착하는지도 그리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나 또한 크게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에 자랑스러운 타이틀을 달기 위해 꽤나 치열하게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리고 한동안은 그 결과가 무척 만족스러웠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에 충만해 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간과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언제까지나 뱅쇼 한잔으로 온기를 유기할 수는 없다는 사실. 아무리 추워도 스스로 열을 내는 방법을 익혀 추위를 극복해야 하는 시기가 온다는 사실 말이다.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소속이 없던 시기가 있었다. 약 2년 전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하며 그 정도 없는 파도를 정면으로 맞고야 말았다. 나에게는 어릴 적(이라고 하면 저자가 중학생이었던 시절)부터 키워온 단 한 가지의 꿈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프로페셔널하게 일하는 호텔리어였다. 그 꿈을 위해 나는 일반계 고등학교가 아닌 관광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하였고, 대학교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했으며 전 세계를 돌며 5성급 호텔에서 탄탄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모든 것이 내 계획하에 컨트롤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코로나라는 불청객이 찾아와 내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린 것이다. 처음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받았을 때는 정말이지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다고..?라는 생각이 들며 그 사실을 믿기조차 어려웠다. 그리고 결국 회사가 경영악화를 겪으며 감히 그 단어조차 입에 올리기 무서운 '정리해고'를 당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앞으로의 커리어가 걱정되는 정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더 무서운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바로 내가 더 이상 나 자신으로서 당당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무소속이라는 그림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무기력증, 우울증, 불안감 등의 다양한 형태로 점점 더 나를 덮쳐왔다. 인간 리트리버(사람을 좋아한다는 뜻으로 지어진 별명)인 내가 대인기피증이 생길 지경이었으니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터. 정말 힘들었던 시기였지만 이때 나는 처음으로 '홀로서기'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외부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내 스스로 바로 설 수 있는 힘에 대한 진지한 고찰 말이다.




나에게는 친구 두 명이 있다. 둘 다 대학시절 만난 친구인데, 각자의 분야에서 정말 열심히 살고 있는 친구들이다. 친구 A는 나와 대학시절 내내 붙어 다니던 친구인데, 졸업 후 지상직 승무원으로 1-2년 정도 근무하다가 불현듯 회사를 그만두고 미용을 배우더니 지금은 서울 유명 미용실에 헤어 디자이너로 근무 중이다. A는 5년 후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개인 샵을 차릴 계획을 갖고 있다. 친구 B는 A에 비해 심리적 거리가 가깝지는 않지만 마찬가지로 같은 학교, 같은 과를 졸업했으며 졸업 직후 메이크업 콘텐츠를 찍는 유튜버로 전향을 하더니 지금은 약 20만 구독자를 보유한 대형 유튜버가 되었다. 이 두 친구 모두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즐거운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성공적으로만 보이는 이들이 각자의 길을 선택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그다지 희망차지 않았다. '왜 그 학벌 갖고 미용을 해?', '왜 취업 안 하고 갑자기 유튜브를 한데?', '취업 실패해서 딴 거 하는 거 아니야?' 등등 각종 억측과 까내림이 난무했다. 


왜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하는지 의아하지 않은가? 나는 내 친구들을 자랑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물론 그들이 매우 자랑스럽긴 하다), 단순히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쏟으라는 뻔한 얘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들은 눈앞의 불안감을 이겨내 스스로에게 온전히 소속되기, 즉 홀로서기를 해냈다는 점에서 이미 박수받을 만한 성과(적어도 나한테는 말이다)를 이루어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언젠가 친구 A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 지금까지 모아둔 돈 다 털어서 미용 배운 거야. 적지 않은 나이에 모아둔 돈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일이 정말 재밌고 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좋아." 모아둔 돈이 문제일까. 내 앞에서 천직을 찾았다며 눈을 반짝이는 친구가 나는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다시 내 이야기로 돌아와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2년 전 무소속의 불안감을 이기지 못해 금방 다시 회사에 들어가는 것을 선택했다. 당시에 겪었던 무력감이 너무 컸던 나머지 비교적 쉽게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회사라는 울타리를 다시 찾게 된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소속감에 아주 쉽게 중독된다. 슬프게도 이를 벗어날 용기(라고 쓰고 능력이라고 읽는다)가 없다면 우리는 여전히 그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내 삶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당신은 받아들일 수 있는가.


최근 마지막 회사를 퇴사하며 '내 일'을 찾아 나 자신에게 온전히 소속되어 보자라는 다짐을 했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에 몰입하고 있는 친구 A처럼, 또한 원치 않는 취업 대신 스스로 브랜드가 된 친구 B처럼 말이다. 물론 그 과정은 절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 친구들이 성공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과 노력을 감내했는지는 그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들이 지났을 때 내가 나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지금의 당신은 어떤가. 스스로에게 온전히 소속되어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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