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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gan Lee Sep 29. 2022

플랜 B가 없는 삶

눈을 감고 걸어도 맞는 길을 고르지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 것이 확실했던 나는 언제나 플랜 A를 고집하며 삶을 살아왔다. 처음으로 인생의 목표가 생겼던 때는 내가 열다섯, 중학생이었을 때였다. 당시 나는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던 대부분의 친구들과는 달리, 호텔리어가 되겠다는 일념 하에 특성화고등학교 진학을 결심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일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외국어(필자는 중국어 전공이다)를 배울 수 있는 학교를 찾았고, 그 당시 최연소 관광통역사를 꾸준히 배출하고 있던 학교를 선택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아직 특성화 고등학교가 각광받기 전이라 주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학원을 다니거나 대학 진학 후 배워도 되는 걸 왜 굳이 다른 길을 가려고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배우고 싶은 것이 생긴 이상 대학생이 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고, 그렇다고 입시공부를 하면서 부수적으로 중국어 학원을 다닐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나는 당장 중국어가 배우고 싶었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 배워두었던 중국어는 지금까지도 나의 가장 중요한 경쟁력 중 하나로 남아있다.




고등학교 진학 후, 한동안 정말 재밌게 학교생활을 했다. 주변의 걱정과는 달리 학교는 외국어 교육뿐 아니라 다양한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었고 덕분에 나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해외 경험 없이도 견문을 넓힐 수 있었다. 특히 해외자매결연 학교와의 교환학생 프로그램 및 통역봉사활동 등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며 많은 외국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고, 내 인생의 큰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학년이 올라가면서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대학입시에 대한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학교 특성상, 일반적인 고교 교육과정을 밟지 않았으며 엄격한 기숙사 생활 탓에 학원을 다닐 수도 없었기에 수능을 준비하기에 불리한 조건임에는 틀림없었다. 다행히도 학교생활을 성실히 했던 나는 내신성적이 좋았고 영어, 중국어 공인점수가 있었기에 '입학사정관제'로 승부를 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열아홉 가을, 나는 내가 가장 선망하던 대학교에 원하는 전공으로 입학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할 만큼 자신감에 가득 차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밖에도 나는 내가 원하는 일이라면 그게 뭐든 무섭게 집중해 이뤄내고는 했다. 덕분에 나에게는 플랜 B가 필요하지 않았고 언제나 플랜 A를 성취할 수 있었다. 항상 결과가 좋았으니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이 높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만심은 사실 오래가지 않았다. 내 첫 번째 글 '소속감이라는 이름의 중독'에도 나왔듯이 코로나로 인해 계획했던 시기에 해외 재취업을 하지 못했으며,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우고 싶었으나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커리어 변경을 하기도 했다.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진리를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만약 지금의 나에게 과거의 선택을 바꿀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냐고 묻는다면 나는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틀림없이 말할 수 있다. 매 순간에 나는 언제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자신하기 때문이다.


시간적, 금전적 비용 없이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해 마음껏 중국어를 배웠고, 해외 재취업 대신 국내 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외국계 대기업에도 입사했으며, 익숙했던 업계를 떠나 비즈니스의 기반이 되는 컨설팅 업계에서 경력을 쌓기도 했다. 누군가는 그게 플랜 B 아니야?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 결정들이 각각의 상황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믿기에 여전히 플랜 A로 성립한다고 생각한다. 플랜 A의 본질은 그것이 최선인지 아닌지에 달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선의 기준은 언제나 주관적이다.




내 운명을 고르자면, 눈을 감고 걸어도 맞는 길을 고르지


김이나 작사가가 작사한 아이유의 <분홍신>이라는 노래 가사이다. 김이나 작사가가 아이유에게 앞으로의 길을 응원하는 의미에서 선물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유는 어떤 일에 확신이 없을 때 이 가사를 되새긴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평소 아이유 노래를 즐겨 듣지는 않지만 이 가사가 꽤나 꽂혀 한동안 귀에서 맴돌았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는 나도 인생을 살면서 나에 대한 확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믿음이 부족할 때 종종 이 가사를 떠올린다. 이 가사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내가 선택한 것이 결국 최선의 판단이라고 믿으면서 과거의 나를 원망하기보다 격려할 수 있었다. 또한 다가올 미래에도 내가 나에게 최선인 길을 골라줄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지금 어떤 이유에서든 과거에 대해 후회를 하거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매 순간 최선을 다했고, 그 보다 잘한 선택을 할 수는 없을 거라고. 당신의 삶은 이미 A, 아니 S급이라고.


자 어떤가, 당신은 플랜 B가 없는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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