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준비하는 중이세요?
퇴사를 한 지 이제 한 달 하고도 일주일이 더 되었다. 시간이 빠른 듯하면서도 느리다는 생각을 한다. 현재의 내 심정을 묘사하자면 한 달 전보다 불안감은 덜 하고 만족감은 더 크다라고 할 수 있겠다. 요즘 나의 일과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아침 7시에 기상해(스트레스가 없으니 회사를 다닐 때보다 더 일찍 일어나고 있다) 명상과 요가를 하고, 노트북을 켜 오늘의 할 일을 리스트로 작성한 후,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다가 아침을 먹는다. 내일모레면 서른인데, 부모님께 용돈을 타 쓸 수는 없는 요령이니 생활비를 벌기 위해 종종 엄마 카페일을 돕기도 하고, 영어도서관에서 아이들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생활비를 충당할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일이 생각보다 적성에 잘 맞는지 얼마 전에는 원장님께서 정규직으로 일해볼 생각이 없냐고 물으셨다. 정규직이라고? 놀랍게도 거부감이 들었다. 어제는 함께 일하는 한 선생님께서 '그럼 선생님은 이직 준비하는 중이세요?'라고 물었다. 거의 반자동적으로 '아뇨. 회사는 안 다니려구요.'라고 대답해버렸다. 결코 짧지 않은 4년간의 사회생활을 했는데 도출한 결론이 '회사 가기 싫다.'라니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급하게 '아직 고민 중이에요.'라고 덧붙였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면서 결심한 것이 있는데, 해보지도 않고 미리 걱정하거나 편견을 갖지 말자는 것이었다. 이건 결코 쉽지 않게 얻어낸 나의 자유시간에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마련한 나만의 원칙이었다. 그리고 한동안은 이 원칙을 꽤나 잘 지켜왔다. 대학시절 멕시코에서 교환학생을 끝내고 남미 여행을 하면서 버킷리스트에 적었던 '라틴댄스 배우기'를 크로스 오프(cross off) 하기 위해 살사댄스를 배우기 시작했고, '이게 되겠어?'라고 생각만 하던 브런치 작가에도 도전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또 한 번도 누군가를 가르쳐본 경험이 없지만 지금은 영어강사로 일 하고 있다.
그런데 유난히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는 것. 특히 회사에 소속되는 것에 나는 유난히도 방어적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에는 이미 너무 여러 번 경험해왔고, 그 결과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던 탓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어느 정도 일리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소속된 회사가 없다는 나의 결핍이 오히려 대상을 집착적으로 밀어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방어기제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결심(회사에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 자체가 이미 나의 자유를 통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자고 결심했지만 나는 이미 한 가지 가능성을 스스로 닫아두고 있었다.
얼마 전 대학 후배와 등산을 갔다 왔다(말이 후배지 이제는 그냥 언니 동생 사이다). 많은 후배들을 알지는 못하지만 내가 아는 몇몇 후배들이 모두 이 동생과 친한 친구들이라 종종 소식을 전해 듣고는 한다. 이들은 모두 소위 잘 나가는 회사를 다닌다. LG디스플레이, 네이버 웹툰, 오비맥주 등 대기업을 다니는 능력 좋은 친구들이다. 동생들인데도 각자 열심히 해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을 보자니 대단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성공의 기준은 모두 다르지만 모두가 '성공'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기는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성과는 꽤나 괄목할 만한 것이고 그렇기에 그것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부러움의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찌 보면 나는 소속감에 중독되어있던 것이 아니라 타인의 인정이 고팠던 것 같기도 하다. 좋은 학교(소위 명문대)를 다니면 '공부 열심히 했나 보다.'라고 하는 것처럼 좋은 회사(소위 대기업)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다는 증거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순간 나의 진정한 만족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궁극적으로 그들이 원하는 삶은 내가 원하는 삶과 다르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던 사실인데 나이가 들수록 겁이 많아지는 탓일까 눈치는 늘고 당당함은 줄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