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가가일 Feb 16. 2024

나는 왜 우울증에 세 번이나 걸렸나

출산을 앞둔 막달이 되어서야 더욱 분명해졌다. 내 우울증의  뿌리가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드디어 그 감정적 귀찮음과 책임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


편지의 내용은 나의 임신 사실을 알리는 것.


2024년에 내 마음을 더 잘 전달하기 위해서 혹은 얼굴 보고 또는 유선상으로는 멋쩍어서 쓰는 편지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는 연락이 도무지 닿지 않아 8개월을 미루고 미룬 후 편지를 쓰는 사람은 정말 몇이나 될까. 그것도 독일과 대한민국에 살며 문명의 혜택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말이다.


나는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정말이지 감정적으로 펜을 들기까지 너무 많은 걸림돌들이 있었으며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는 생각만 해도 느껴지는 피로함과 동시에 몰려오는 죄책감이 더해져 힘들었다.


출산을 한 달도 앞두지 않은 막달의 임산부인 내가 이제야 친정엄마에게 임신 사실을 알릴 수 있게 된 이유는 혼전임신도 어디 부끄러운 이유가 있어서도 아니다.


나의 어머니는 정신적인 질병을 가지고 계시다. 병원에 내원해서 정확하게 의사에게 진단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이 어떤 질병이라고는 단정 지을 수 없지만 내가 여섯 살쯤 되던 해부터 삼십 년이 거의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 어머니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으시다.


이 문제에 대해 내가 온라인에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아니 객관적으로 남편과 상담선생님을 제외한 그 누군가에게 설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내가 많이 성숙했고 이 문제로부터 거리 두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반증같다. 실로 나는 정말 친한 친구들에게도 친해지고 거의 십 년이 다 되어서야 대충 얼버무려 엄마가 정신적, 종교적으로 문제가 있으셔서 학창 시절이 힘들었다 정도로만 말했고 자세한 내막은 남편과 상담선생님에게만 말해왔다. 대부분 내 심리적 상태가 불안정할 때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반추되어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심리적 상태가 안정적임에도 편지라는 것이 촉매제가 되어 엄마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엄마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는 편지를 쓰면서 그리고 5년 전 한 결혼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하면서 나는 깨달았다. 내가 우울증을 세 번이나 걸린 이유의 아주 깊숙한 곳 그 중간에는 엄마가 있다는 것을.

내 우울증은 독일 대학원 첫 학기 마칠 무렵 처음 발병해서, 졸업논문을 쓸 때 약을 먹기 시작했고 그리고 첫 직장에서 적응을 하지 못하면서 두 번째로 발병, 가장 최근에는 작년 초에 코로나에 걸린 후로 두 번째 직장에서 업무부담과 롱코비드가 겹치면서 세 번째로 발병했는데 이 세 번 모두 성과에 대한 압박이 그 기저에 깔려있다고 상담을 하며 알게 되었다.


성과에 대한 압박은 왜 있게 되었을까. 되돌아보면 재수준비를 하면서도 나는 번아웃과 우울증을 경험했었는데 그때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그냥 살아냈고 다행히 그렇게 넘어갈 수 있었다.


엄마가 주는 불안정함과 창피함 그리고 미치겠는 답답함은 6살 이후의 내 학창 시절 내내 나를 줄곧 따라다녔고 나는 나의 불행한 가정환경과는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소심하기는커녕 리더십 있고 당돌한 아이로 커 갔다. 가면을 쓰면서, 그리고 엄마의 사랑과 보살핌이라는 좋은 환경에서도 성과를 내지 못하는 병신 같은 친구들을 비웃으면서 나는 그렇게 혼자서 커 왔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 강하게 잘 커왔다고 생각하며 여기까지 왔지만, 결국에는 마음속에 큰 돌을 지며 살아왔고 남들보다 어려운 과제에 맞닥뜨리며 그것을 해낼 때마다 내 존재의 가치를 증명받는 기분이었다. 그 벽들을 하나씩 깨 부술 때마다 정말 뿌듯했지만, 더 큰 벽을 만나서 내 한계를 느꼈을 때 나는 그저 고꾸라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나 둘 쌓여온 마음속 돌들에게 깔려서 성과를 내지 못하는 나는 가치가 없다고 느꼈다.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아빠가 참 미웠다.


편지를 쓰고는 뱃속에 있는 내 아이에게 약속했다.


엄마는 너를 꼭 지켜줄게. 적어도 네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이십 년 남짓의 시간 동안은 반드시 지켜줄게. 아빠와 함께 너에게 세상의 아름다움과 기쁨과 사랑을 알려줄게. 그리고 건강하게 강해지는 법도 꼭 가르쳐 줄게. 그러기 위해서 엄마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꼭 잘 보살필게. 그게 가능할 수 있는 이유는 엄마에게는 엄마의 아빠와는 정 반대인 정말 좋은 너의 아빠가 있기 때문이야. 너를 통해 엄마의 아팠던 마음이, 너의 아빠 덕분에 많이 치유된 마음이, 흉터까지 온전히 치유될 수 있을 것 같아, 딸아.


 


작가의 이전글 출산 예정일을 7주 앞두고 끊은 항우울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