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이 나를 다시 집어삼켜 어찌할 바를 모르겠을 때
어제 그렇게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최선을 다하는 남편 그러나 복직하고 첫 달 동안 가장 공감과 위로가 필요할 때 정서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나 그 둘 사이에는 각자의 억울함이 남았다
지난 한 주 내내 몸이 으슬으슬 아팠고 이번 달에 처음으로 계획했던 둘째 임신 때문에 마음을 졸이며 테스트기를 하기를 수차례 몸은, 그저 더 아파갔고 심지어 음식 냄새를 맡으면 안 하던 구토까지 하며 온갖 임신 증상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생리가 시작되었고 생각보다 마음이 힘들었다. 아이를 낳고 일 년 하고도 몇 달이 지나고 처음으로 임신을 시도했던 달이니 기대를 안 하는 것이 맞는데 참 이상하게도 기대가 되었더랬다.
임신을 기대하며 보냈던 한 주 동안 일은 참 많았고 참 어려웠고 참 부담스러웠다. 지난 십 년 동안 죽을 만큼 노력해서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얻어낸 자리인데 아직도 전문성이 없는 내 모습에 소위말하는 현타가 많이 왔다. 그리고 내 선택들이 뼈저리게 후회되기 시작했다.
정말 창피하지만 남편을 만나고 사랑에 빠진 이후 지난 12년 동안 나의 꿈은 단 하나였다.
"세후 3000유로 이상 & DAX 30 대기업 & 정규직"
정말 외적동기부여 그 자체인 꿈. 꿈이라고 말하기도 참 속물적이고 피상적인, 지금 보면 저것만 달성하면 그저 행복하리라고 믿었던 나 자신이 귀여울 정도의 순진무구한 꿈. 적성과 비전과 내 흥미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목표.
나는 그 목표를 대학원 졸업하고 첫 취업으로 5년 전에 이미 이뤘다. 그러나 번아웃 우울증으로 첫 직장을 일 년도 다니지 못하고 그만두고 다시 재취업을 해야 했기에 다시 저 정도의 조건으로 처음부터 새로운 산업, 새로운 직군에서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일 년을 좀 넘게 일하던 어느 날 다시 번아웃과 우울증이 터졌고 반년 간의 50프로 한시적 파트타임을 시작하자마자 계획임신에 성공해서 파트타임 중 아주 행복하게 임신 초중기를 보내고 후기에 풀타임 몇 달 일하고 육아휴직을 했던 거였다. 그 1년 하고도 몇 달의 육아휴직에서 복직한 지 딱 한 달이 지난 지금, 우울이 다시 얼굴을 들이밀고
까꿍 나 여기 있어, 어딜 도망가, 아기 낳으면 나 못 볼 줄 알았어?
하면서 무섭게 웃고 있다.
휴직 기간 동안 여러 번의 까꿍이 있었지만 그동안의 우울은 어느 정도 목줄을 달고 내가 조절가능한 Schwarzer Hund 정도였다.
그렇지만 지난주 내네의 우울은 까꿍을 넘어 내 몸보다 커져서 나를 물어뜯을까 말까 으르렁 거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주말에 정말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 우울이 도망가기에는 그 뿌리가 깊었던 것일까 남편과 저녁밥을 먹고 있던 어제, 오늘 출근할 것을 생각하며 나는 터져버렸다.
이번 주에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외국계 특성상 매주 해야 할 일이 딱 정해져 있고 금요일 퇴근 전에는 이번 주에 했던 일을 보고하며 일의 진척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한다. 연말 KPI 성과보고시기에는 아주 피가 터진다.
나는 파트타임이지만 내가 일하던 포지션으로 복직을 했는데 그사이에 팀 업무의 범위도 바뀌면서 팀장도 바뀌고 팀원도 바뀌고 일의 범위와 책임도 확장되었다. 물론 월급은 그대로이다. 완전 공무원이 따로 없다. 커진 책임과 업무의 영역, 무엇보다 휴직기간 동안 바뀌어버린 리포팅 툴. 이 전 툴도 입사하고 처음 다루게 되었는데 온보딩을 할 시간 없이 바로 툴만 던져주고 알아서 배워라고 해서 유튜브 보며 겨우겨우 실무에 필요한 것만 다룰 줄 아는 서바이벌 능력을 갖췄었는데 다시 바뀌어버린 툴... 엄청난 코딩도 필요 없지만 데이터를 이해하고 필요한 외부 데이터를 찾아내고 우리 목적에 맞게 수정하여 자동화 및 시각화하는 것은 몇 주 만에 뚝딱 배워 해내기엔 무엇보다 파트타임에겐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 외에도 나를 짓누르는 내가 전공을 그리고 산업을 무엇보다 직군을 잘못 택했다는 내 선택에 대한 후회들이 나를 터지게 했다. 여태까지는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인지했을 땐 나름 빠르게 방향을 선회할 수 있었다.
폭싹 속았수다 에서 관식이가 딸에게
해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넌 다 잘해, 안되면 냅다 빠꾸
라고 말했던 것처럼 나도 나 스스로에게 현실적인 대안이 있는 경우에 한해서는 그 빠꾸를 수차례 허용했었다.
근데 아이를 낳고 서른 중반이 되어 파트타임으로 복직한 지금은 그 빠꾸가 너무 어려움을 어쩔 수 없이 깨닫게 되는 그 순간순간마다 답답함과 역겨움에 몸이 굳어버리고야 만다.
사는 곳, 남편의 직업, 나의 직장, 나의 부서, 나의 직군, 나의 파트타임, 그로 인한 우리의 수입과 자기 계발을 위한 시간의 한정... 무엇보다 내 목숨보다 소중한 아기의 존재와 그 아이를 위한 보육시설과 아이를 위해 꼭 써야만 하는 남편과 나의 시간과 에너지
다시 돌아와 남편과 밥을 먹으며 내가 터졌던 그 순간의 화두는 지난 10년간의 내 목표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닌 자기 꿈을 사는 프리랜서인 내가 세상 무엇보다 사랑했던 그 10년 전의 남편을 위해 그리고 그와의 미래를 위해 내가 세웠던 목표라는 것이다.
나는 꿈과 열정이 있는 사람을 너무도 동경했다. 나는 지금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밥벌이를 하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을 존경하고 부러워한다. 고등학생 시절 보그 매거진 편집장에 대한 동경, 대학시절 광고에 재미가 잠깐 있었다가 관련 수업을 들어보고 런던에서 서머스쿨까지 들어본 후에야 그 분야에 대한 흥미가 뚝 떨어졌었다. 정확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국제적인 상과 매출로 실력이 증명이야 되겠지만 전반적인 광고제작의 과정에서 주관성이 너무 크게 작용한다는 게 맘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팩트, 객관적 사실, 논리 이런 걸 매우 동경하던 20대의 나였건만 이러한 경험들의 사실을 뒤로하고 나는 사랑에 기반한 감정적인 그러나 그를 위한 현실적인 이유들을 취합해 경영학석사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공부할 땐 좀 더 어렵더라도 외국인으로서 말로 하는 핸디캡이 그나마 적고 자기 전문성을 커리어 전반 내내 객관적으로 키워갈 수 있는 재무 회계 이런 걸 했어야 하는데 졸업이 가장 쉬워 보이는 기본 매니지먼트와 마케팅을 부전공으로 했다. 이건 정말 큰 실수였는데 광고보다도 더 심각하게 주관적인 매니지먼트라는 분야에서 독일인들과 순수 독일어로 말발로 발표시험 보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 기준에서 엉터리에 아무짝에 쓸모없는 이론들을 달달 외워 독일어로 시험 보느라 정말 졸업하기 힘들었다. 마지막 논문시기에는 우울증 약을 먹어가며 겨우 졸업했다.
그 전공을 살려 취업을 하려니 결국 남들이 다 회피하는 인사 쪽 IT 아니면 순수 마케팅 쪽 밖에 남지 않았다.
또 순간순간 가장 현실적으로 맞는 결정들을 해 오며 살다 보니 정착하게 된 데이터마케팅, 그렇지만 회사에는 신입에게 데이터를 다루는 방법을 하나하나 가르쳐줄 만큼 한가한 사람은 없었고 매니지먼트 바로 아래 있는 마케팅팀은 매니지먼트 임원 그 모두의 비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에 입사하고 육아휴직으로 쉬기 전까지의 2년이 좀 안 되는 기간 동안은 엄청 바쁘게 많은 것을 했는데 뭘 했는지는 기억이 안나는 순간순간의 양적 질적 ad-hoc 업무들을 쳐내기에 바쁜 물경력 업무들과의 싸움이 연속이었다.
그러고 복직했는데 갑자기 업무 시간 동안 배울 시간은 1도 없는 툴을 배워 1년이 넘은 내 휴직기간 동안 진행이 전혀 안된 리포트를 뚝딱 만들어내라고 하질 않나 그 외에도 이미 해야 하는 기본 업무들은 이전 풀타임 업무와 동일한데 내게 주어진 시간은 60%의 파트타임.
이 모든 것이 쌓여 밥을 먹던 남편 앞에서 내가, 나처럼 현실적인 사람이, 너무 사랑에 눈이 뒤집혀서 꿈이 있는 너와의 가정을 이루기 위해 나라도 안정적인 직업이 있어야 하니 3000유로 이상의 독일 대기업 탑 30 기업의 워라밸 좋은 곳에서 정규직으로 취업을 하기 위해 지난 10년간 죽어라 달려서 그걸 이뤘는데 결과가 이거다. 현재는 지옥 같고 미래는 없는 것만 같고 빠꾸를 하기엔 이미 나이도 들고 처자식도 생겨버린 지금의 내가 너무 답답해서 나도 모르게 울며 얘기하다가 정말 나도 모르게... 내 머리를 주먹으로 쳐 버렸다.
결국 자기 연민과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친 남 탓만 하는 못난 어른이 되어버렸다.
감정이 내 몸을 집어삼킨 것 같은 스트레스의 신체화였다. 다행히 딱 한대였고 자해라고 하기엔 귀여운 수준이긴 하지만, 전혀 귀엽지 않고 전혀 소소하지 않다. 내가 나를 때렸고 그 순간이 예측되지 않았으며 밥을 먹는 일상적인 순간에서 터져버린 나의 폭력성 그리고 우울의 깊은 뿌리가 이제는 너무 복잡하고 깊게 얽히고설켜 있어서 무엇이 정확한 원인이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서 첫걸음을 어떻게 내야 하는지 논리적으로 접근이 잘 되지 않는다.
밤새 울고 나를 달래러 온 남편에게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그저 위로와 공감, 아니 그저 따듯한 포옹이었다.
정말 위로와 공감이 필요했지만 지난 한 주간 우리는 교대근무로 서로 대화할 시간이 너무 없었기에 무엇보다 남편은 지금 프리랜서를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기에 지난 주말에 처음으로 구직활동을 시작했고 첫 이력서를 한 곳에 냈는데 그 과정에서 주말의 하루가 통으로 투자되었다. 그 시간은 내가 일주일 내내 기다려온 남편과의 유일한 대화시간이었기에... 나는 현실적으로 부족한 우리의 시간이 머리론 이해가 가지만 복직하고 한 달 동안 정말 힘들었는데 감정적 지원이 전혀 없었고 남편이 아닌 다른 곳에서 그 지원을 찾기엔 나는 독일 땅에서 가족도 친구도 없다. 친한 친구 한 명이 현재 사는 도시에 있지만 아직 학생이고 싱글이기에 그녀와의 공통점은 너무 제한되어 있어 어느 순간 내 힘듦을 말할 수가 없더라. 나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힘든 상황에 있는 친구에게 그리고 구직을 걱정하는 친구에게 내 모든 고민은 그저 배부른 소리로 들릴 것을 알기에...
이런저런 쌓인 이야기를 하며 울부짖는 나에게 남편은 자기변명과 반박만을 따박따박했고 나는 어느새 귀를 막아버렸다. 정말 숨이 막혀 한 마디도 더 들으면 죽어버릴 것 같았다.
위로와 공감을 해 주지 못한다면 지금 네 앞에서 울고 있는 네 부인을 그저 안아줄 순 없는 거니... 그마저도 어려운 거니
사람과 사랑만 보고 결혼을 했을 때에는 경제적인 현실적인 부분은 내가 주로 감당하리라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다. 나 같이 계산적인 사람이 수지타산 안 따지고 결혼했을 턱은 없다. 나도 내 나름의 계산을 다 했고 감정적인 서포트는 내 원가정에서 내가 받을 수 없었고 나 스스로 채우지 못하는 유일한 한 가지였기에 돈은 내가 벌게 너도 사고만 치지 말고 최소한의 평균의 경제활동만 놓지 않고 하면 내가 나머지는 채울게 다만 감정적 서포트는 관식이처럼 예쁘다 예쁘다 네가 최고다 만 계속해줘 가 내 스탠스였고 내 희망이었다. 지난 11년간 부족한 적도 있었지만 힘든 시기 대부분 내내 남편에게 충분히 서포트를 받았었지만 지금은 육아와 살림 그리고 일도 함께 하고 있는 남편이기에 남편의 시간과 에너지는 너무도 한정되어 있고 남편도 내 감정적 서포트까지 할 여유가 전혀 없다. 물리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머리론 다 알고 이해하지만 울며 힘듦을 토로하는 나를 선뜻 안아주지 않는 남편을 보며 하나하나 반박하며 자기가 왜 못하는지 내가 다 아는 내용들을 말하며 힘없이 울고 있는 나를 그저 맞은편에 내 버려두는 남편을 보며
외로웠다.
세상에 정말 나 혼자구나.
너무 많이 울어 눈이 떠지지 않았던 오늘 아침, 무엇보다 일을 하려면 어찌어찌 지난주처럼 해낼 수 있기도 했지만 나 스스로를 그렇게까지 채찍질하고 싶지는 않았던 오늘, 나는 오늘 병가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