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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간이 MeganLee Jun 30. 2021

말차, 그 녹색의 매력

유럽사는 여자의 홈카페


나는 보통 커피를 하루에 두 잔, 오전과 오후에 각 한 잔씩 마신다. 특히 아침 커피는 내게 정말 중요하다. 일어나 한 잔 들이켜지 않으면 머리에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거니와 고소한 커피 향을 맡으며 소파에 잠시 앉아 멍- 한 시간을 갖는 게 나의 하루를 시작하는 일종의 의식(ritual)이기 때문이다. 작년 코로나로 시작된 재택근무 덕에 아침식사를 느지막이 10-11시쯤 하게 되면서 커피를 처음으로 공복에 마시기 시작했는데, 없던 역류성 식도염과 소화 장애가 온 걸 보면 이게 위 건강에 부담이 되었나 보다. 그래서 빈 속에 마실 수 있으면서 커피를 대체할 만한 따뜻한 아침 음료를 찾던 중 말차를 만났다. 


말차를 마셔야겠다는 아이디어를 얻게 된 건 내가 좋아하는 더치 모델 산느 불렛(Sanne Vloet)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다. 비가 와서 야외 운동을 할 수 없는 날이면 이 분 채널에 나오는 필라테스 강좌를 집에서 종종 따라 하곤 했는데, 우연히 브이로그를 시청하다가 매일 아침 말차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들어 마시는 걸 보게 됐다. 전통적이라고 함은 바로 다완(차를 마시는 사발), 차시(가루차를 떠내는 수저), 차선(대나무 거품기)을 갖춘 방법을 말한다. 쉽게 말해 사발에 전용 수저로 소량의 말차 가루를 넣고 물을 부어 가며 거품기로 빠르게 쳐 멍울을 없애고 거품을 내주는 식인데, 당연하게도 수고스럽고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마음만큼은 나른하게 일어나 감미로운 음악이라도 틀어놓고 이렇게 "제대로" 된 방법으로 차를 만들어 마시고 싶지만, 9시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운동도 명상도 샤워도 해야 하는 나에게 이런 방식은 전혀 현실적이지 못했다. 그래서 떠올린 건 바로 카푸치노를 만들 때 쓰는 우유 거품기를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다완(사발)에 차선(거품기)으로 말차를 준비하는 모습



그렇게 시작된 나의 말차 여정.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며 물에 말차를 넣어 거품기에 돌려보았는데 멍울 하나 없이 윤기도는 고운 거품이 뜬 말차가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커피처럼 일단 버튼을 눌러두고 다른 일을 하다 돌아오면 준비되어 있으니 편리하고 빠르기까지,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말차도 빈 속에 마시면 부담이 될 수 있는 법. 그래서 아침에는 내가 좋아하는 귀리 우유를 넣어 라테를 만들어 마시고, 커피가 필요할 때는 에스프레소를 추가해 커피 음료를 만들어 마신다.


우리 집에 오는 내 유러피안 친구들은 커피머신 옆에 놓인 초록색 가루에 고개를 갸웃한다. 말차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며, 차와 커피에 우유를 섞은 이런 끔찍한 혼종의 음료를 왜 만들어 마시는지 궁금해한다. 이들에게 티란 자고로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나 얼 그레이 같은 블랙 티를 말하기에 이 진한 연둣빛 티는 당연히 낯설다. '녹차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나?' 싶지만 사실 우려낸 녹차는 초록보다 맑은 노랑에 가까운 빛을 띠고, 이끼 같은 색감의 말차에 비해 시각적인 거부감이 덜하다. 맛 또한 훨씬 연하고 부드럽다. 같은 찻잎을 사용하되 말려 우리면 녹차가 되고 다른 공정을 거쳐 분말로 만들어 마시면 말차가 되니, 참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암스테르담에서도 여전히 티 베이스 음료는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메뉴가 아니다.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건 차이 티 라테이고, 여기에는 당연히 커피가 들어가지 않는다. 따라서 화이트 티(White tea: 차에 우유를 넣어 마시는 영국 문화)에 좀 더 근접하며, 그렇기 때문에 실험적인 카페 메뉴에 열광하지 않는 유러피안의 성향에도 불구하고 메뉴 한 자리를 안정적으로 꿰찬 게 아닌가 하는 것이 나의 짐작이다. 차에도 우유를 넣고 커피에도 우유를 넣는데, 차와 커피와 우유는 한데 넣을 수 없다니 이게 왠 21세기 유러피안적 유교 사상인가. 


서울에 살 때 스타벅스에서 종종 주문하던, 에스프레소 샷을 추가하고 휩 크림을 잔뜩 올린 그린티 프라푸치노가 그리운 날이다.




▼ 아래는 내가 말차를 즐겨 마시는 4가지 방법을 소개한 유튜브 영상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xiLAd_GvhQ4&t=13s




출처: 

https://www.justonecookbook.com/how-to-make-matcha-japanese-green-t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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