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간이 MeganLee Sep 04. 2021

뭐니 뭐니 해도 비빔밥

바쁠 때 뭐 드세요?


세계에서 직장인 스트레스가 가장 큰 나라를 꼽자면 우리나라가 아마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한국과 유럽 두 곳 모두에서 직장생활을 해 본 내 의견으로는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나라가 이기고도 남는다. 스트레스가 큰 것에서 '이긴다'는 표현을 쓰기에 기분이 묘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럽 직장인이 바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당연히 야근도 있고 승진에 대한 욕심으로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떠맡다 보면 점심과 저녁을 모두 모니터 앞에서 수프와 샐러드로 때우는 경우도 허다하다. 특히나 우리 회사 같은 패션 업계는 야망 있는 젊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문화가 만연하다.


우리 회사 안에는 직원들을 위한 델리와 뷔페가 있다. 델리 안에는 수프 바, 샌드위치 바, 샐러드 바, 카페가 있고 이런저런 간식이나 과일 및 음료를 살 수 있다. 매점 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뷔페는 점심시간에만 여는데 셰프들이 직접 각국의 요리를 선보이고 그 퀄리티 또한 매우 높다. 보통 바쁠 때면 아침식사는 생략하고 출근해 델리에서 커피로 때우거나 스무디를 마시고, 점심은 자리에서 수프와 샌드위치로 간단히 먹는 편이다. 뷔페는 사실 팀원 중 생일자가 있거나 금요일 점심같이 여유로운 날, 혹은 그 외 조금 특별한 날에만 가는데 이유인즉 식사하는 데 한 시간은 기본으로 소요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워낙 젊고 익스팻(expat)의 비율이 높은 회사 특성상 많은 사람들이 암스테르담 시내에서 혼자 혹은 하우스메이트/파트너와 사는데, 그래서 저녁도 델리에서 미리 사 가지고 퇴근하거나 눌러앉아 저녁을 먹으며 업무를 마무리하고 퇴근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나 또한 다르지 않다. 코로나 때문에 뷔페는 임시적으로 문을 닫았을지언정 델리는 계속해서 운영해왔기 때문에 주 1회 출근하는 날이면 거의 항상 저녁으로 먹을 무언가를 사 가지고 왔던 것 같다. 그래서 출근날이 더 기다려지기도 했고 장보기와 요리, 뒷정리를 할 필요가 없어서 오히려 재택근무 날에 비해 출근날 저녁에 개인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주 1회 출근이라니. 그나마도 어느 팀에서 혹은 어느 층에서 확진자가 나왔다고 하면 사무실이 전면 출입 통제되었다. 현재 1,700만 인구 중 1,200만이 이미 1차 접종까지 되었거나 백신 접종 완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평균 2,500명이 코로나에 걸리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당연히 사무실은 거의 매주 닫혀 있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랩탑이 말썽을 부려 급히 IT 서포트를 방문해야 했던 경우들을 제외하고, 작년 여름 이후로 사무실 구경을 언제 했는지 생각해보면 참 까마득하다.


서두가 길어졌지만 아무튼 재택근무가 당연스러운 2020년, 2021년의 나에게 emergeny food는 참 중요하다. 한국어로 직역하면 응급 음식(?)이라는 이상한 단어가 되는데, 말 그대로 급히 준비해서 빨리 먹을 수 있는 그런 음식을 말한다.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모두 집에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보니, 밥 먹고 돌아서면 또 밥 준비할 시간이라던 엄마의 한탄이 갑자기 이해가 갔다. 배달음식이 한국만큼 다양하지 않고 비싸기도 정말 비싼 이곳에서 매일 시켜먹을 수도 없고. 매번 요리해야 하는 메뉴를 먹기에는 손에 물 마를 날이 없는 바쁜 나를 구원하기 위해 한 솥 가득 갖가지 국도 끓여보고 인도, 한국, 일본, 태국식 종류별로 카레도 끓여보고 다양한 노력을 했다. 그중에서도 시간 아끼기에 있어서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요리 중 하나가 바로 비빔밥이다.



한국 요리를 비롯한 아시아 요리를 할 때 가장 불편한 점 중 하나가 바로 아시안 식료품점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손바닥만 한 암스테르담이라 우리 집 반대편에 있는 차이나타운까지 가는 데 자전거로 10분밖에 안 걸리지만 그나마도 비 오고 추운 날이면 꺼려지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최대한 일반 슈퍼마켓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만 요리했다. 새싹채소, 콩나물 대신 숙주, 당근, 샐러드 잎, 애호박 모두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무의 아삭한 식감이 들어간 비빔밥을 정말 좋아하지만, 한국 무는 고사하고 중국 무 또한 아시아 마켓에 가야만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외하였다.


소스만 준비된다면 비빔밥은 그 어떤 것과 비벼도 맛있다. 정말 귀찮은 날은 샐러드 봉지(네덜란드에서는 다양한 잎채소를 씻고 잘라 섞어서 준비된 샐러드가 종류별로 마트 냉장고에 구비되어 있다)를 하나 뜯어 참치캔을 넣고 밥에 비벼 먹어도 편하고, 새싹채소만 넣어 채식으로 먹어도 맛있으며, 내가 영상에서 한 것처럼 소고기를 볶아 넣고 남는 고기로는 약고추장을 만들어 두고두고 먹어도 좋다. "한국음식 하나 추천해줘 봐"라는 유러피안 친구들의 말에 김밥, 불고기, 제육볶음, 떡볶이, 잡채 등 추천할 거리는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그중 누구나의 집밥 메뉴로 단숨에 등극할 수 있는 건, 역시 비빔밥뿐이다.




▼ 아래는 나의 비빔밥 레시피 영상 (제 목소리는 영어지만 한국어 자막을 켜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lk3adcZwxk&t=139s&ab_channel=%26SIZZLE






코로나 통계 출처:

https://coronadashboard.government.nl/landelijk/vaccinatie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