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스를사지 마오
저녁에 친구들이 놀러 오는데 식사를 준비할 시간이 고작 한 시간 남짓밖에 없다. 나를 포함한 식사 인원이 4명을 넘어가면 보통 오븐요리를 생각하는 편인데, 2월 새 집에 이사한 이후로 오븐요리는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오븐과 전자레인지를 겸용한 콤비네이션 오븐이라 그런지 가스 오븐만큼 온도를 맞춰주지 않기 때문이다. 오븐 베이크드 채소, 심지어 게으름의 대명사인 오븐용 냉동 피자조차, 몇 번이나 시원하게 망치고 나서 당연히 베이킹은 생각지도 않고 있다. 이 정도 인원이면 파스타나 리조토도 거의 하지 않는 편인데, 파스타를 한꺼번에 정성껏 만테까레하기에는 4인분이 너무 많고 호스트로써 리조토를 내내 저으며 스토브 옆에만 있기에도 애매하기 때문이다.
역시 만만한 것은 밥솥이 다 해주는 밥을 곁들인, 한 그릇 음식이다. 내가 즐겨하는 한 그릇 음식 중 빠른 것을 꼽자면 바로 데리야끼 치킨인데 일단 데리야끼 소스는 그 쓰임이 정말 다양하다. 묽게 만들어서 연어요리에 써도 좋고, 꿀을 넉넉히 넣고 묵직하게 만들어 재료를 글레이징 해도 좋고, 온갖 종류의 고기나 웬만한 채소에 다 잘 어울린다.
데리야끼 소스는 보통 간장, 사케(혹은 미린), 설탕, 생강의 4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사케는 이미 다 마셔버리고 부엌 선반에 '남아' 있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미린을 쓰는 경우가 많았고, 미린이 없다면 굳이 사 와서 쓰지는 않았다. 생강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생강을 좋아하지 않아서 감기가 들어 차에 쓰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편이다. 간혹 요리에 필요할 때면 신선한 생강에 비해 당연하게도 향이 훨씬 덜한 생강가루를 쓰는데, 데리야끼 치킨 또한 그 정도로도 충분하고 아예 넣지 않아도 좋다. 데리야끼 소스의 진수는 그 단짠의 매력에 있기 때문에 그 부분만 잘 살려준다면 충분히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다. 그러니까 내 말은 간장과 설탕/꿀/올리고당 없는 집이 아니고서야 데리야끼 소스를 따로 사지 말라는 거다. 사케나 생강도 사지 말라는 거다. 우리가 집에서 요리하고 싶은 건 빠르고 맛있는 음식이지, 28가지 재료가 들어가 그 안에서 느껴지는 고오급 풍미를 한입 한입 음미해야 하는 테이스팅 메뉴가 아니다.
모둠 채소를 팬에 재빨리 볶아준다. 완전히 익어야 하지만 너무 푹 익어 오독하게 씹는 식감이 사라질 만큼 오래 볶지는 않도록 한다. 당근, 콜리플라워, 브로콜리처럼 큼직하게 썰 수 있는 채소가 좋다. 후추로만 약하게 간을 하고 옆에 치워둔다. 닭을 사용한다면 부위는 기름진 허벅지살을 쓰도록 한다. 밀가루를 살짝 뿌린 허벅지살을 달군 팬에 올린다. 맛있게 갈색을 띨 때까지 앞뒤로 잘 굽고, 미리 섞어둔 데리야끼 소스를 붓는다. 소스가 진하게 졸아들면서 부엌이 온통 달고 짠 맛있는 냄새로 가득하다. 중간중간 고기 위에 소스를 끼얹어가며 촉촉하게 익힌다. 약간 끈적함이 느껴질 때 팬을 불에서 내린다. 넓은 접시에 채소와 밥을 담고 야들하게 조리된 닭 허벅지살을 잘라 얹는다. 그 위에 소스를 한두 번 끼얹어 주면 완성이다.
▼ 아래는 나의 데리야끼 치킨 레시피 영상 (제 목소리는 영어지만 한국어 자막을 켜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7GdOITMiIM&t=29s&ab_channel=%26SIZZ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