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보다 방향과 컨셉을 잡는 것이 우선
11. 이기는 축구? 즐기는 축구? : 승부에 앞서 방향과 컨셉을 잡아라.
무슨 일을 하는데 앞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 중 하나는 방향과 컨셉을 잡는 것이다. 기업에서 어떤 사업을 할 때에도 예산이나 절차에 앞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바로 컨셉을 잡는 것이다. 블로그를 만들거나, 어떤 모임을 조직할 때에도 역시 나아가야 할 방향과 컨셉이 없다면 당장의 성과는 물론, 롱런은 꿈도 꿀 수 없다. 축구 역시 마찬가지다. 전술에 우선하는 것이 컨셉이며 컨셉을 통해 선수들은 경기에서의 목표를 알고 이를 위한 방법을 찾는다. 같은 4-4-2와 4-3-3이라도 감독이 요구하는 컨셉에 따라 선수들의 움직임과 전술적 포인트가 확연히 달라지며 결과도 뒤집어 진다.
프로에서의 컨셉은 크게 공격, 밸런스, 수비 등으로 나눌 수 있겠다. 프로의 목표는 오직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뿐이기에 상대에 따라 또 본인들의 컨디션에 따라 앞에서 나열한 방향으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달린다. 약팀을 상대로 점유율을 높게 가져가며 최대한 많은 골을 넣는 것, 객관적 전력이 우세한 팀을 상대로는 최대한 수비를 안정화시키고 역습을 통해 득점을 노리는 것이 바로 승리를 위한 컨셉과 방향이다. 하지만 프로와 달리 사회인축구의 목적은 ‘무조건적인 승리’가 아니다. 목적과 목표가 다르기에 컨셉 또한 다르게 가져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사회인축구에서 팀이 추구하는 방향은 크게 즐기는 축구와 이기는 축구의 두 가지로 나뉜다. 즐기는 축구는 말 그대로 경기에 나온 모든 팀원이 동등한 출전시간을 부여 받고 즐겁게 운동을 하는 것이며 이기는 축구는 프로와 마찬가지로 무슨 수와 방법을 써서라도 승리를 위해 운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실제로 경기를 치르게 되면 두 가지 컨셉을 깍두기 자르듯 나누어 플레이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왜 그럴까?
먼저 ‘즐기는 축구’가 팀의 모토이자 컨셉일 경우를 살펴보자. 즐기는 축구를 하기 위한 커다란 전제는 모든 팀원이 동등하게 경기에 나서서 운동을 하는 것이다. 이 경우 불가피하게 주전과 비주전급(굳이 실력을 나누고 싶지는 않지만)이 스쿼드에 섞이게 되는데, 본의 아니게 고르지 못한 기량의 선수로 인해 경기력에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다. 아무리 오랜 시간 동안 호흡을 맞춰온 팀이라도 매 게임(25분)마다 계속해서 바뀌는 스쿼드에 적응하며 동시에 경기력까지 끌어올리기란 어려운 일이다. 혹여 스쿼드에 구멍과도 같은 존재가 포함되어 계속해서 실수를 범하고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다면 어떨까? 승부욕이 강한 팀원들의 질타 섞인 목소리가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창단한지 10년이 넘었거나 허허실실 정말 재미를 위해 운동을 하는 팀이 아니고서야 이런 상황을 오래 견딜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팀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상황이 펼쳐지려면 성적도 따라와야 하는데 쉽지가 않은 것이다. 즐기기 위해 축구를 하는데 계속해서 경기력이 나쁘고 패배한다면 즐거울 수 있을까?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한편 ‘이기는 축구’가 컨셉일 경우에는 비교적 실력이 더 좋은 선수들이 그렇지 못한 선수들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출전시간을 보장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패배할 경우 그 상실감은 더욱 크다. 이기기 위해 내린 냉정한 선택이 실패로 돌아가는 경우다. 같은 회비를 내고 같은 시간과 열정을 팀에 투자하는데 선수별 출전시간에서 차이가 나게 되면 팀 전체의 케미스트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뛰지 못하는 선수들의 볼멘소리와 불평은 늘어갈 것이며, 축구를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으로 계급이 나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승리라는 미명 아래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더 커지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출전시간을 편파적으로 구성하고서도 승리하지 못한다면 즐기는 축구에 비해 패배의 상실감은 훨씬 더 클 것이다. 여러모로 위험한 도박이 아닐 수 없다.
‘아니 그러면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사회인축구의 컨셉이 두 가지 있다고 했는데 앞서 살펴본 두 가지 모두 해피엔딩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 이렇게 해도 문제가 생기고 저렇게 해도 문제가 생긴다면 과연 어떤 컨셉이 옳은 것일까? 사회인축구팀 감독으로써 필자가 내린 결론은 이를 위해 감독의 역량과 임기응변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주말 사회인축구 친선경기를 예로 들어 살펴보자.
‘오늘 경기는 총 대관시간이 4시간이며 3파전이 치러진다. 두 팀 모두 일면식이 있고 한 팀은 한 수 아래라 평가할 수 있으나, 다른 한 팀은 이전 경기에서 치열하게 공방을 다퉜던 백중세의 실력을 가진 팀이다. 여러분이 감독이라면 어떻게 컨셉을 가져갈 것인가?’
위 상황에서 쉽게 생각해볼 수 있는 방법은, 백중세의 팀에는 ‘이기는 축구’를 위해 실력이 좋은 소위 1군 선수들을 내보내 승부를 보는 것이고 한 수 아래의 팀에는 로테이션을 활용해 1군이 아닌 선수들의 출전시간을 보장하며 ‘즐거운 축구’를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일반적인 방법이지 최선의 답이 아니다. 필자가 경험을 통해 터득한 최고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사회인축구도 마찬가지로 3파전에서 한 팀이 한 수 아래고 한 팀이 백중세라 할지라도 매주 상대팀의 스쿼드, 우리팀의 스쿼드에 따라 경기력이 천차만별이다. 최소 서너 번 이상 경기를 치르지 않았다면 그 팀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옳고, 때문에 첫 25분에는 1군과 2군을 적절히 섞어 상대와 우리의 컨디션을 점검해야 한다. 각 팀과의 첫 쿼터가 평가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4시간을 경기한다면 최소 5게임 이상을 치르게 되고 한 팀과는 2~3게임을 치러야 한다. 긴 호흡의 첫 번째를 80% 정도의 전력으로 상대 하는 것은 장기적인 투자라고 볼 수 있다. 1군이 아닌 선수 중에서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 선수도 있을 테고, 1군이라고 평가받던 선수 중에서도 폼이 좋지 못한 선수가 있을 것이다. 첫 쿼터는 과감하게 ‘MIX’ 하되 수비 조직력은 갖추고 탐색에 치중하자. 실점을 최소화 하고 상대를 파악하면 남은 1~2쿼터가 더욱 여유로워질 것이다.
경기가 막바지로 치닫게 되면 현재까지의 스코어를 고려하여 스쿼드를 구성할 수 있게 된다. 한 팀과의 경기에서 비기거나 지고 있을 경우 그 팀과의 경기에 좀 더 기량이 출중한 선수들을 투입하고 상대적으로 스코어에서 여유가 있는 팀과의 경기에서는 로테이션을 돌리는 방법을 사용하여 출전시간과 결과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감독의 중요성과 임기응변의 묘는 여기서 나타나는데 두 경기를 모두 잡을 것인가, 한 경기를 잡고 다른 한 경기는 과감히 포기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바로 감독의 몫이기 때문이다. 감독의 판단에 의해 즐거운 축구와 이기는 축구를 동시에 추구할 수도, 토끼를 모두 놓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팀원 모두가 오늘 경기와 다음 쿼터의 목적과 방향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면 모두에게 합리적이고 즐거운 축구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컨셉이 중요하다. 축구팀의 리더인 감독은 공동의 목표에 팀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컨셉을 제대로 잡고 전파하는 것이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