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아마추어 팀 감독이라는 독 든 성배를 마시겠는가?"
16. 사회인축구팀 감독의 자격 : 누가 할 수 있는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가?
사회인축구팀 감독이라는 감투를 쓰고 난 뒤부터 필자는 포털 사이트 스포츠코너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선수만 하던 시절에는 좋아하는 팀의 소식이나 선수들의 이적소식, 지난밤의 경기결과와 기록들을 챙겨봤다면, 감독의 옷을 입고 난 뒤에는 경기 전 기자회견, 경기 후 감독 인터뷰라던가 경기전술분석 등이 더 눈에 들어왔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선수로만 뛸 때는 선수들의 이야기가 더 궁금했는데, 감독이 되고 보니 그들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말을 하며 어떤 표정을 짓는지 더 알고 싶어졌다. 알렉스 퍼거슨, 주제 무리뉴, 바르셀로나의 전술을 파헤쳐 놓은 책, 축구전문가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 길라잡이가 되는 책까지. 소설책이나 사 읽던 녀석이 이제 축구로 자기계발을 하는데 까지 이르렀다. 감투란 이렇게 그것을 얹어 놓은 그 사람의 머릿속까지도 바꾸어 놓는가보다.
자연스레 행동과 마음가짐 또한 선수보다는 감독의 것으로 바뀌어 갔다. 힘든 내색을 잘 하지 않고, 당근과 채찍을 언제 주어야 하는지를 판단하며 사소한 것에는 쉽게 흔들리지 않으려 노력해왔다. 그렇게 2년이 흐르고 나니 이제는 선수 겸 감독이 아닌 플레잉코치와 감독의 사이에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사회인축구팀 감독, 누가 할 수 있는가?
여러분이 생각하는 리더의 자질은 무엇인가? 카리스마? 리더십? 실력(능력)? 그것도 아니라면 따뜻한 마음씨? 사회인축구팀을 이끄는 리더의 자질은 앞서 말한 것들과는 조금 다르다. 무엇이냐고? 필자가 생각하는 아마추어 감독에게 필요한 덕목은 뻔뻔함이다. 왜 얼굴이 두꺼운 것이 감독을 하는데 꼭 필요한지 차근차근 살펴보자.
먼저 아마추어 팀인 만큼 프로에 비해 부족한 분야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첫 번째 이유가 되겠다. 전문적으로 축구만을 해온 이들에 비해 사회인으로 구성된 팀의 경우 높은 수준의 지식을 가진 감독들이 흔치 않다. 팀의 실력과 성격 뿐 아니라 해당분야에 대한 지식도 아마추어에 가까운 것이다. 전술을 짜고 포지션을 배치하는 것도, 팀의 감독으로써 마주 하는 모든 상황도 매번 처음에 가까운 일들이라는 이야기. 덕분에 팀원들의 인정과 이해를 온전히 사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며 때로는 선택과 판단이 틀려 경기를 그르치는 때도 있다. 좋지 못한 결과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은 무조건 감독에게로 돌아간다. 사회인축구팀 감독을 일컬어 잘해야 본전 못하면 독박이라는 말을 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다. 억울하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등가거래, 등가교환이라는 용어는 경제나 과학에서만 등장하는 이야기다. 뻔뻔함을 가지고 오늘날의 이 수치스러움과 어려움이 훗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줄 것이라고 굳게 믿어야 한다.
두 번째는 인간으로서의 감독 본인을 위해서다. 감독도 사람이고,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마음이 여린 동물인지라 여러 개의 화살이 동시에 자신을 향해 날아오게 되면 그것을 피하기 바쁜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감독은 이런 비난 여론까지도 수용하고 잠재울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모두의 인정이 아닌 역정을 정면으로 받게 될 것이다. 방패 뒤로 숨기만 하는 장군을 따를 병사들은 아무도 없다. 결국 더 담대히 마음을 먹고 경기장에 나서야 한다는 이야기다. 아군을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다. 코치, 총무와 같은 임원진들은 감독의 입장을 이해하고 감독의 입장에서 생각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다. 평소 그들과 돈독한 친목을 유지하고 팔 안쪽에 두는 것은 감독이 두꺼운 얼굴로 이야기하고 행동하게 해줄 것이다.
사회인축구팀 감독이라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프로팀의 감독은 팀의 조직력과 실력을 가지고 있는 최대치 아니 그 이상으로 끌어올려 성적과 목표를 달성하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하지만 사회인축구팀 감독은 그것과는 다른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해야 하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 또한 그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바로 책임감이다. 어찌보면 뻔한 소리 같지만 이것은 감독으로서 맡은바 소임을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아니라, 팀을 위해 경기장에 나온 모든 사람들의 주말을 즐겁게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말하는 것이다. 어느 강사가 연단에 올라 강의를 시작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저에게는 오늘 이 강의가 매우 중요하고 또 위험한 임무입니다. 그것은 저에게는 어쩌면 이것이 단 두 시간짜리 강의일지 모르지만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저의 말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고 계시는 수십 수백 명의 두 시간을 합하면 그것은 수백 수천 시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여러분께 떨리는 손과 마음을 다잡고 최선을 다해, 또 아주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준비해온 한마디 한마디를 뱉으려 합니다.”
강사의 진심어린 이 이야기에 참가자들의 평가가 훌륭했음은 물론이고 이후에도 그 강사를 섭외하려는 이들의 연락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사회인축구팀 감독이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도 이와 같아야 한다. 금쪽같은 주말을 오직 축구를 하기 위해 나온 팀원들에게 균등한 출전시간과 재미를 보장해주어야 하는 것은 단지 책임감을 느끼고 노력해야 할 성격의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의무이기 때문이다. 2015년으로 사회인축구팀 감독 3년차를 맞는 필자 역시, 매주 일요일에 벌어질 경기를 앞두고 출전시간을 균등하게 분배하기 위해 엑셀에 팀원들의 이름을 두드리는 일은 언제나 신중하고 조심스럽다.
두 번째는 셀프리더십이다. 감독을 맡는다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 동기부여를 계속해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그 누구도 도와줄 위치에 있는 사람이 없는 외로운 길을 걷는 것과 같다. 쉽게 생각해보자. 1명의 감독과 그를 포함한 20명의 팀원으로 구성된 팀, 나머지 19명 중에 하나가 급작스럽게 동기가 떨어져 몇 주간 축구를 쉬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감독이 동기를 잃어 경기장에 몇 주간 나서지 않는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스스로 재미를 찾고 동인을 느끼지 못하면 팀을 절벽으로 밀기 가장 쉬운 것이 감독의 숙명, 필자 역시 수 많은 위기를 거치며 지난 시간을 보내왔다. 주말 하루를 온전히 반납해야 하기에 이성친구와 수 없이 다퉜던 일들,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부족해 고민했던 나날들, 월요일이면 퉁퉁 부어 무거운 다리로 출근했던 일. 누구보다 강력하게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더라면 견디기 힘들었을 일들이다. 현시대 최고의 감독이라 불리는 주제 무리뉴는 이렇게 말했다.
“승리하지 못한다면 특별할 수 없다. 하지만 난 승리한다. 특별해지기 위해선 가진 능력의 최대치로 일해야 하고 스스로 확실하게 동기부여가 되어 있어야 한다.”
평범함과 특별함, 성공과 실패, 좌절과 극복의 차이는 어쩌면 동기부여 한마디로 설명될 수 있지 않을까? 모름지기 감독이라면, 자신이 하는 일과 맡은 사명이 얼마나 무겁고 중요한 것인지 깨닫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