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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축구하자

절대 가볍지 않은 1/30, 감투의 무게

'사회인축구팀의 감독은 30:1의 경쟁률을 뚫고 살아난 사람이다.'

by 이종인

동네축구 무리뉴 : 감독의 눈으로 사회인축구 바라보기


15. 사회인축구 감독이라는 감투의 무게 : 절대 가볍지 않은 숫자 1/30


물이 끓기 시작해 기화가 시작되는 100도를 가리켜 임계점이라고 한다. 과학에서 사용하는 용어이지만 최근에 이 개념은 축구게임 만큼이나 일반화되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베이비붐 세대를 가리키기도 하고 아론 램지, 손흥민과 같은 유망한 축구선수가 내재되어 있던 포텐(잠재력)을 터뜨려 한 단계 위로 성장하는 것도 ‘선수생활의 임계점을 넘었다.’라 표현한다. 또 체력이 좋은 선수가 다른 선수들의 체력이 고갈된 후에 더 훌륭한 경기력을 펼치는 것을 가리켜 ‘체력의 임계점’이라 부르기도 한다. 필자는 지난 축구인생에서 두 차례의 임계점을 겪었는데, 첫 번째는 고등학교 축구부로 활동하면서 국가대표 상비군 골키퍼 출신 체육선생님을 만나 골키퍼 능력이 눈에 띄게 향상된 것이고, 두 번째는 사회인축구팀에 들어와 선수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역할이 늘어나면서 축구를 보는 시야와 시각 자체가 바뀐 것이다. 이 장에서는 필자가 사회인축구팀 감독이라는 롤을 맡게 되면서 겪었던 변화와 느낀 바를 이야기하려 한다.


선수에서 감독으로, 번데기가 나비로


처음 선수로 팀에 들어왔을 때 나는 그저 공을 차는 것이 너무 좋은 사람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기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고,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건강을 챙길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정말 공만을 열심히 따라다녔고 내 플레이 이외에 다른 것들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낯부끄럽지만 그때의 나는 나 스스로가 컨디션이 좋고 플레이가 잘되면 그 게임을 좋았다 평가했고, 다른 팀원들과의 호흡을 맞추는 것 보다는 ‘최전방에서 마무리를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하는 것에 더 치중했다. 최전방에서 전방을 바라보고 경기를 하다 보니 수비와 미드필더의 고충에 대해 공감하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선수로서의 나는 꽤나 이기적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감독의 롤을 맡아서 선수와 겸하다보니 그 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시야가 너무나 편협한 것이었다는 것을 단 한경기만에 깨닫게 되었다. 나는 감독 데뷔전에서 ‘이제야말로 경기 전체를 바라보아야 겠다.’는 생각으로 골키퍼 장갑을 끼고 경기에 출전했는데 최후방에서 경기를 지켜본 후에야 비로소 수비와 미드필더가 얼마나 힘들게 전방으로 볼을 전달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 후 공격으로 출전한 경기에서는 볼 간수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되었고, 개인기를 앞세우기보다 최소한 볼터치를 줄여가며 마무리를 지을 수 있도록 스타일도 바꾸어 갔다. 단 한 차례 다른 시각과 시야로 경기를 바라봤을 뿐인데 참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경기장에서 직접 몸으로 체험하니 그 동안 수많은 경기를 공만 따라다니며 지켜봐왔던 프리미어리그 중계도 이제 사람의 움직임을 쫓게 되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철이 들어 성인이 된 것처럼 선수로서의 나와 감독으로서의 필자는 많은 부분이 달라져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1/30


필자는 자신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항상 사회인축구팀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빼놓지 않는다. 혹자는 ‘그거 해서 무엇 하냐?’며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그 정도로는 필자의 자부심에 흠집하나 내기 힘들 것이다. 앞으로 이야기할 것들은 여러분이 한 팀의 감독이라면 반드시 가져야 할 자부심과 자신감에 대한 이야기다.


사회인축구팀은 보통 15~30여명으로 구성된다. 사회인축구팀은 출신성분, 학력과 배경이 모두 각각 다른 선수들로 구성된 데다가 강제성이 부족하고 확실한 동기가 프로에 비해 부족하기에 팀원들 각자의 생각도 뚜렷하고 볼멘소리도 많다. 이런 배경 덕분에 감독이라는 자리는 굉장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위치이며, 항상 서번트의 자세로 팀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필자는 26세의 나이에 처음 사회인축구팀의 감독이 되었다. 다른 팀에서 감독 비슷한 것을 해본 적이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어느 조직과 단체의 리더라고는 초등학교 2학년 때 해본 반장이 전부다. 팀에서는 거의 막내에 가까운 나이였고, 실력으로나 인성으로나 나보다 더 훌륭한 자질을 갖춘 선수들도 많았다. 이런 초짜가 감독이 되었으니 헤맬 것은 분명했다. 처음에는 근거 없는 전술을 짜 와서 모두를 당황시켰고 나중에는 로테이션에 실패해서 소중한 팀원들의 시간을 빼앗기도 했다. 시간과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던가? 이후에는 조금씩 좋아졌지만 처음에는 정말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이 감투는 뭐 이리 무거워서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 원망이 들 정도로.


1/30, 서른 명의 팀 중에서 단 한 사람. 그것이 바로 감독의 쓴 감투의 무게다. 때로는 본인의 감정과 욕구를 억누르고 팀을 위해 웃을 줄도 알아야 하며, 물질적인 보상보다는 정신적인 보상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특히 사회인축구팀 감독이라면 진정으로 축구를 사랑해야만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그저 남자들이 모여 땀 흘리는 모임에서 더 많은 땀을 흘리는 사람이 아니라 더 가치 있는 땀을 흘리는 사람이며, 그들의 소중한 주말을 더 재밌게 만들어 줘야 하는 사명을 가진 사람이다. 필자는 사회인축구팀 감독이 얼마나 배울 것이 많은 자리인지 이야기해주고 싶다. 서른 명이 넘는 팀원들의 의견을 조율해야 하고, 매주 만나는 팀과 외교 아닌 외교를 펼쳐 관계도 유지해야 한다. 축구경기가 없는 평일에도 항상 그들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하며, 필자와 같은 선수 겸 감독이라면 본인의 플레이에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도 바쁜 덕분에 실전에서 리더십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며, 한 팀의 리더로 모든 권한을 이양 받아 팀의 얼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회인축구팀에서의 1/30은 절대로 가볍거나 적은 숫자가 아니다. 물론 그 감투의 무게를 나누어 들어줄 코치, 총무와 같은 이들의 도움과 뒤에서 묵묵히 지원해주는 단장, 고문급 팀원들의 역할을 간과할 수는 없다. 축구가 절대 혼자서 할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기에 축구팀 감독 역시 스스로의 능력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 할 수 없다. 자 이제 팀워크와 협업도 배울 수 있는 자리가 되었다. 여러분이 만약 한 팀의 리더로 활약하고 있거나 필자와 마찬가지로 사회인축구팀의 감독이라면 이제 ‘뭣 하러 그 피곤한 걸 해?’라고 묻는 이들에게 대답해줄 이유가 십 수 가지는 생겼다. 가볍지 않은 만큼 얻을 것도 많은 역할, 바로 사회인축구팀의 감독이다.

이종인 커리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출간작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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