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페셔널 스포츠의 세계는 냉혹합니다. 오로지 실력만으로 평가받기 때문입니다. 경험이 일천한 선수라도 실력이 뛰어나다면 주전을 꿰찰 수 있으며, 아무리 팀에서 오랜 시간을 헌신한 베테랑이라 하더라도 실력이 떨어지면 재계약조차 쉽지 않습니다. 혹여 팀으로부터 재계약 제안을 받더라도 베테랑의 계약 규모는 1년 또는 1+1년(1년 동안 활약을 지켜보고 재계약)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지난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리오넬 메시와 루카 모드리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라스트 댄스가 유독 기쁘고 또 슬펐는지 모르겠습니다. 세 선수 모두 나이 듦으로 인해 신체 능력이 저하되는 과정에서도 최고 수준의 실력을 유지했던 선수들이기 때문입니다. 과정과 결과에 상관없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던 베테랑의 모습에서 우리는 많은 걸 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편 우리가 스포츠를 사랑하는 또 다른 이유는 심장과 눈시울을 뜨겁게 만드는 낭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로맨틱 스토리는 '원 클럽 맨(One Club Man)'들의 이야기입니다.
레알 마드리드와 같은 거대 클럽의 구애를 뿌리치고 선수 경력 전부(25시즌)를 이탈리아 프로축구팀 AS 로마에서 보낸 프란체스코 토티(Francesco Totti), 팀이 파산해 4부 리그로 강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적하지 않고 팀을 다시 1부 리그에 올려놓은 파르마의 영원한 주장 알레산드로 루카렐리(Alessandro Lucarelli), 그리고 마찬가지로 소속팀 유벤투스가 2부 리그로 강등되었음에도 "신사는 숙녀가 필요로 할 때 떠나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기며 끝까지 팀을 지킨 알레산드로 델피에로(Alessandro Del Piero)까지. 요즘처럼 이직(?)이 잦고 쉬운 세상에서 이들의 이야기는 경외심마저 들게 합니다.
처음 완도살롱을 열었던 2018년 당시 약 5만 1500명이었던 완도의 인구는 2022년 12월 현재 약 4만 7500명으로 4000명가량 감소했습니다. 여전히 오려는 이보다 떠나려는 이가 많은 이 섬 완도에서 '지방 소멸 위기'는 경고 아닌 현실입니다. 수년간 코로나를 겪으며 내수 경제 또한 좋지 못합니다. 이대로라면 팀이 아니라 리그 자체가 강등이 돼버릴지도 모릅니다.
이 리그에서 잇몸으로 어떻게든 버텨온 완도살롱도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왔음을 매년, 아니 매일 실감합니다. 최근 3년 동안 임대 계약은 1년 싹만 연장해 왔습니다. 좋게 말하면 배수의 진을 쳐 놓고서 가게 문을 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1년 재계약은 '무슨 일'이 생기면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도록 몸과 짐을 가벼이 하고 싶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안 좋은 일이 벌어지기를 바란 건 아닙니다. 무릇 장사하는 사람의 마음이란 항상 가게가 손님으로 북적이길 바라니까요. 저도 같은 마음이었고, 매일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이야기를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완도살롱의 문을 열었습니다.
2022년 12월 31일 오늘은 완도살롱의 세 번째 재계약이 마무리되는 날입니다. 팀이 아닌 리그가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는 걸 머리로 알고 피부로 느꼈기에 다음 행보에 대한 결정이 더 어려웠다는 걸 여러분께 먼저 고백합니다. 마지막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신사와 숙녀, 아니 심사와 숙고를 하고 내린 결정이니 여러분 모두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2022년 12월 30일, 완도살롱은 임대 계약을 2년 연장했습니다.(2024년 12월 31일까지) 처음 완도에 와서 여기 '장보고대로248번길 48'에 자리 잡은 그때처럼 2년 계약에 서명한 겁니다. 숙녀가 필요로 할 때 떠나지 않는 신사처럼, 3부 리그, 아니 4부 리그에서 뛰게 되더라도 경기장을 찾아와 주는 팬들과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언제까지 이 섬에 머무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먼저 저버리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재계약을 결정했습니다. 2023년 1월 1일, 완도살롱은 새로운 마음가짐과 몸가짐으로 새해를 맞이합니다. 안재모가 김영철이 되고 강식당이 강핏자가 되었던 것처럼 말이죠.
프로페셔널 스포츠의 세계에서 팬들을 경기장으로 불러들이는 건 오로지 실력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다음 페이즈(Phase)의 완도살롱에서는 홈 팬과 어웨이 팬을 가리지 않고 많은 분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껏 아껴주신 완도살롱을 앞으로도 열심히, 그리고 재밌게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보내주시는 관심과 사랑에 늘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여러분 모두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합니다.
PS. 2023년 1월 1일, 브런치 매거진 완도살롱 폐업기의 제목을 다시 '완도살롱 창업기'로 변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