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직업이 되면

완도살롱 폐업기 - 13

by 이종인


긴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그 때문인지 몸도 무겁고 피곤합니다. 요 며칠은 뉴스에서 장마다 뭐다 하도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손님도 적었습니다. 모름지기 장사라는 건 손님이 많을 때보다 적을 때 더 피곤하고 힘이 드는 일이지요.


그나마 요즘 읽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재미있어 다행입니다. 한중망의 삶을 꾹꾹 채워주는 샐린저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요 며칠은 하소연을 늘어놓는 손님도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세상이 어지러운 탓일 겁니다. 바텐더의 운명이겠거니 하면서도 덩달아 기분이 내려앉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여기 완도살롱에서 아름답고 행복한 사람과 뉴스를 절찬리 모집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분들도 두 팔 벌려 환영합니다. 행복은 함께 하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는데, 손익분기점을 잘 계산해서 받고 나누다 보면 균형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우선 저부터 내어줄 에너지가 많기를 바라고요. 위로나 공감을 평생 직업으로 삼기에는 커다란 무리가 있음을 깨닫는 요즘입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에 앞서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었습니다.(쿤데라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두 책 모두 완도살롱 서가에 있으니 사러 오시는 분들이 있었으면 좋겠고요.)


쿤데라와 샐린저의 이야기를 읽으며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시대를 관통하는 감정은 어쩌면 행복이 아니라 슬픔이나 비관 일지 모른다고. 무거운 테레자와 가벼운 토마시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홀든 콜필드까지.


책의 주인공과 그들의 이야기가 마치 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진정으로 하소연이 하고 싶은 건 고객이 아닌지도 모릅니다.


떠나보낸 것과 기다리는 것, 그 사이 어디쯤에 완도살롱이 있습니다. 이방인의 섬에서 징검다리를 놓겠다던 최초의 마음도 아직 어디쯤에 있을 것입니다.


아직 긴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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