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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축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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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인 Nov 24. 2015

파워게임에서 승리하라

'승리하지 못한다면, 반품당한다.'


20. 파워게임에서 승리하라 : 승리하지 못하는 감독은 반품당한다.


 선수들을 평가하는 잣대는 다양하다. 스피드가 좋은 타입, 체력이 좋은 타입, 기술이 좋은 타입, 천부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타입 등 선수의 신체능력과 축구실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있는가 하면 사생활이 깔끔한 타입, 불륜을 즐기는 타입, 음주를 좋아하는 타입, 남 몰래 선행을 베푸는 타입과 같이 축구 외적인 부분도 대중이 선수를 평가하는 요소가 된다. 그렇다면 감독의 경우는 어떨까? 대중들에게 감독은 선수경력이 화려했는가? 선수출신이 아닌가? 하는 성분에 대한 기준부터 감독으로의 성적이 어땠나? 추구하는 전술의 스타일이 어떤가하는 축구 그 자체에 대한 기준으로 비추어진다. 하지만 감독에게는 팬들보다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팀의 선수들이다. 감독에게 선수란 자신이 연출하는 축구를 연기하는 연기자이며 배의 각 파트를 맡고 있는 선원이다. 이들에게 높게 평가받지 못한다는 것은 곧 흥행작을 연출할 수 없고, 선장실의 폭신한 의자에서 바다로 내던져진다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는 선수와 감독의 관계가 수직적이고 권위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선수와 감독은 공생관계의 동업자라고 보는 것이 맞다.


 때문에 처음 부임한 감독이 가장 먼저 살피는 것도 선수단의 리더가 누구이며, 누가 라커룸에서 가장 목소리를 크게 내는가 하는 것이다. 마치 이제 막 부대에 배치 받은 소위가 분대장을 포섭하여 부대원들을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장악하는 것처럼 감독들에게도 선수단을 장악하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단이 군림하던 당시 프랑스 대표팀의 리더는 감독이 아닌 ‘선수’ 지단이었다. 지단의 황태자로 불렸던 패트릭 비에이라와 티에리 앙리가 그를 보좌했고 프랑스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등에 업은 지단의 앞에서 감독은 오히려 구색을 맞추기 위한 수단으로 비쳐지기까지 했다. 선수들의 신뢰를 잃고 대표팀의 지휘봉을 내려놓아야 했던 전 프랑스 감독 레이몽 도메네크의 이야기다.


 이처럼 감독이 선수단 장악에 실패하면 자신의 임기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논리다. 감독의 수족처럼 움직여야 할 이들이 이를 거부한 채 멋대로 플레이한다면 감독이 있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축구판의 감독은 전술적으로 해박한 지식과 자신만의 고집이 있어야 하지만 선수 혹은 협회와의 파워게임에서 반드시 승리해 자신만의 고유한 목소리를 낼 권리 역시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가운데 스승이 있다는 말도 있지만 두 명 이상이 모이면 반드시 위아래가 생긴다는 말도 있다.


 사회인축구에도 파워게임은 존재한다. 그리고 프로보다 더욱 빈번하게 발생한다. 사회인축구에서 감독과 선수 사이에 적용되는 힘의 논리는 프로에 비하면 우스운 수준이다. 우선 ‘나이가 깡패고, 나이가 깡패이며, 나이가 깡패인지라’ 한 살이라도 어린 팀원이 감독을 맡을 경우 연장자가 감독의 말을 귓등으로 듣는 경우가 파다하고, 감독 한 사람이 절대 권력을 가질 수 없는 구조적인 한계 때문에 자신감 있게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축구와 감독에 대한 지식과 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쉬운데 이처럼 팀원들을 통솔하지 못하고 팀원들이 감독을 따라주지 않는다면 팀은 바다가 아닌 산으로 노를 젓게 될 것이다. 여러분이 감독으로 있는 팀이, 그리고 여러분이 뛰고 있는 지금의 팀이 파워게임으로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보라. 그리고 무엇이 여러분의 팀을 위해 더 발전적인 방향인지 생각해보라. 파워게임에서 이기는 감독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팀을 위해 모두가 한 걸음 물러서서 감독의 말을 경청해주는 것이다. 좋든 싫든 간에, 여러분의 의견이 반영된 감독이 아닌가?


파워게임, 어떻게 하면 승리할 수 있는가?


 필자 역시 감독 초기에 마치 악의 세력이 시꺼먼 먹구름 떼를 몰고 달려드는 것 같은 파워게임을 경험했다. 이십대 중반의 나이에 감독이 되어 팀에 형들도 수두룩했고, 각자 자신만의 세력을 구축하여 입김을 불어넣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 팀이 악당들만 모여 있는 팀이라서가 아니라 어느 팀이든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감독으로 경기에 임하는 것도 머리 아파 죽겠는데 이들과의 관계까지 생각하며 일요일을 맞이하려니 부담감이 점점 커졌다. 두 가지를 모두 신경 쓰다 자칫 두 가지 모두 놓칠 수 있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해결책이 필요했고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 야심차게 준비했던 많은 것들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었다.


 처음으로 들었던 생각은 이에는 이, 힘에는 힘으로 맞붙어 보자는 것이었다. 어쨌든 팀의 실세들이 지지하고 있는 감독이란 자리였고 1년이라는 임기가 보장되어 있었기에 완력으로 붙는다 해도 승산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마찰도 마찰이거니와 팀원들이 이탈과 같은 대출혈이 생길 수 있는 위험한 방법이기도 했다. 두 번째는 그들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종합하는 ‘공존의 리더십을 펼쳐보자’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 방법은 겉으로는 그럴싸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방법일지 모르나 자칫 줏대가 없고 그저 사람 좋은 연기를 하려하는 감독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는 리스크가 있었다. 선택이 늦어질수록 팀은 더욱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스스로도 이상한 사람으로 비추어질 수 있었다. 결단의 순간, 필자가 내린 결론은 세 번째 방법이었다.


 각 팀에는 커다란 하나의 팀 아래에 작고 조직적인 그룹이 형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데려온 b, c, d라는 무리가 하나를, E라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f, g, h라는 라인이 하나를 형성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 경우 b, c, d와 f, g, h에게 실질적인 입김을 불어넣는 사람은 A와 E인데 이렇게 잔가지(라고 표현하기엔 너무 소중한 팀원들이라 쓰고 이해를 돕기 위해라고 읽어주세요.)가 아닌 줄기와 소통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다. 게다가 A와 E는 팀에 라인과 그룹을 만들 정도로 오래 있었으니 팀에 대한 애정과 마인드도 더 크고 탄탄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을 비롯한 팀원들과의 관계는 게임이 있는 날의 경기장 안과 밖에서만 이루어지면 안 된다. 발전하겠다는 욕심이 있고 더 잘해보겠다는 꿈이 있다면 여러분의 팀원들, 그 대소사까지도 모두 챙기고 알아야 한다. 낯이 적잖이 간지럽겠지만 예상치 못한 생일 선물을 챙겨준다거나 남자들에게는 보약보다 좋고 선물보다 효과가 좋다는 소개팅을 해준다거나 하는 방법을 병행한다면 그들의 환심 아닌 환심을 더욱 살 수 있을 것이다.


 축구는 정치가 아니지만 정치적 요소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는 스포츠다. 감독이 파워게임에서 패배한다면 마치 사이즈가 맞지 않는 옷처럼 소정의 수고비(그동안 수고했어~)와 함께 반품될 가능성이 높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시간을 투자하고 열정을 쏟아 부었다면 성과를 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얻어가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주 한주가 피 튀기는 싸움이겠지만 파워게임은 그 중에서도 가장 우선적으로 매조지해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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