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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영준 Dec 04. 2020

글쓰기법칙

24_스피치라이팅

기업체는 비서실이나 홍보실에 스피치라이터를 둡니다. 스피치라이터는 CEO를 대신해서 글을 쓰는 역할을 합니다. 고스트라이터ghostwriter라는 직책도 비슷한 일을 합니다.  고스트라이터는 책을 출판하기 위한 원고를 쓰지만 정작 자기 이름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책이 출판됩니다.


총선이나 지방선거를 앞두면 정치인들은 너도 나도 출판기념회를 열어 지지자들에게 책을 팝니다. 전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정치인의 책은 회고록대부분 그런 식으로 만듭니다. 고스트라이터도 회고록을 내는 것이 여러 모로 편리합니다. 그리 많은 고민을 하지 않고도 한 달이면 뚝딱 원고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죠. 어차피 정치인의 회고록 따위는 읽게 되지도 않으니 글 속에 문채를 담기 위해 애쓸 것도 없지요. 그냥 쓰면 될 뿐입니다.     


대부분 정치인들의 책은  자기 말이 아닌 타인의 말을 쓰는 것이 스피치라이터의 업무인데,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글을 쓰는 것은 꽤나 부담스럽습니다. 일반적으로 글에는 ‘작가의 생각’이 담기게 마련인데, 스피치라이터는 남의 입장을 담아야 한다는 점에서 신경이 거슬리는 일인 것이죠.

    

우리나라 기업이나 공기관만 스피치라이터에게 글을 맡기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 대통령도 연설문을 담당하는 비서관이 따로 있고, 각 기업체들도 스피치라이터를 고용합니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연설문 담당 비서관을 두고 있습니다. 연설문 담당 비서관은 대통령의 뜻을 잘 알고 있어야 하지요. 대통령의 통치철학을 글 속에 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미사여구美辭麗句만 가득한, 회칠한 무덤처럼 겉은 번드르르하지만 알맹이는 공갈빵처럼 텅 빈 글이 만들어질 뿐입니다.     


스피치라이터의 글은 조심스럽습니다. 자기 것이 아닌 글을 쓰기 때문입니다. 스피치라이터가 쓴 글은 CEO나 회사의 이름으로 발행됩니다. 신문에 나오는 투고는 거의 모두 스피치라이터가 쓴 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스피치라이터 개인의 생각이 조직이나 CEO의 비전과 다를 때는 글을 쓰는 스피치라이터의 정신적 피로감이 큽니다. 스피치라이터가 스스로 극복해야 할 문제입니다. 스피치라이터의 글은 회사의 입장이나 CEO의 생각을 대변합니다. 조직의 생각을 적절한 표현으로 나타내기 위해 스피치라이터는 조직이 추구하는 비전, 현재 추진하는 핵심사업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어야 하고, 개별사업에 대해서도 늘 조직의 비전을 적용하여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유능한 스피치라이터는 CEO의 평소 생각이나 언어습관, 글 습관 등도 적절한 범위 내에서 구현해 냅니다. 물론 CEO의 글 습관을 흉내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은 아니지만 그것까지 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라고 할 수 있겠죠. 스피치라이터는 자신이 누구의 이름으로 글을 쓰고 있는지 늘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전에 그 사람의 이름으로 발간된 글을 구해서 읽어 두어야 하는데, 그 독서를 통해 글의 특징, 관심사를 확인해야 하고, 그 사람에 대해 특히 기억할만한 것은 무엇인지, 나중에라도 인용할 수 있는 구절이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스피치라이터 중에는 사전 독서를 통해 알아낸 것을 기록해 두는 노트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피치라이터의 ‘글쓰기’는 어디까지나 ‘일’입니다. 일은 취미처럼 해서는 안 되지요.

      

스피치라이터의 실수는 개인이 아니라 조직과 CEO의 책임이 됩니다. 스피치라이터는 글을 쓸 때마다 자잘한 실수도 없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실수 없는 글을 쓰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면 기교보다는 설명 위주의 글을 쓰게 됩니다. 내용에 특별한 철학을 담지 못하기 되기도 하죠. 아무래도 건조한 글쓰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스피치라이터의 글쓰기는 절대로 쉽지 않고, 재미도 없습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일은 원래 재미없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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