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_누구의 입장에서 쓸 것인가?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은 ‘설득’입니다. 화려한 영상이나 디자인을 이용했더라도 그것을 보는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하면 그 커뮤니케이션은 ‘실패’입니다. 설득은 쉽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의 형편과 처지에 따라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고 늘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만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입장은 그 처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논리나 명분에 의해 합리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2019년 6월 어느 아침 A가 35개월 된 딸을 데리고 아파트 승강기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아랫집에서 키우는 폭스테리어가 어디선가 튀어나와 갑자기 딸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딸은 개에게 목을 물린 채 쓰러졌다. 개 주인이 당황해서 개 줄을 잡아끌었지만 개는 딸의 목을 놓지 않았다. 아이가 개에게 물린 채로 2미터쯤 끌려갔다. A의 딸은 출동한 119 대원에 의해 병원으로 실려 갔고 수술 끝에 겨우 목숨을 건졌다. A는 화가 나서 아파트 주인을 찾아가 싸움을 벌였다. 그는 개를 안락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개 주인은 “우리 개는 원래 사람을 안 무는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럼 그날 그 개가 문 것은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사람이 상했는데도 개 주인이 계속 자기 개만을 감싸자 더욱 화가 난 A는 개 주인을 상대로 50억 원을 손해배상금으로 내어 놓으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언론도 이 사태에 관심을 가지고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동물보호론자들과 일반 시민 간에 설전이 벌어졌다. 입마개를 하지 않은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어느 소도시에서 일어난 사건이 이제는 사회문제가 되었다. 누군가는 이 사건에 대해 말을 해야 한다.
이 사건에 대한 의견을 쓰라는 투고 의뢰를 받았다고 생각해 봅시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요? 당신은 어떤 입장에서 글을 쓸 것인지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글의 형식과 논리도 그것에 따라 달리 결정됩니다. 글에는 방향성이 있어야 하니까요. 한 번은 개 주인 편을 들고, 뒤에 가서는 피해자 아버지의 편을 든다면 그 글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말은 누구라도 할 수 있습니다. 아무것에도 책임지기 싫거은 사람은 글 속에 자기 생각을 담지 못합니다. 논리적인 글은 논지가 분명해야 합니다. 무엇에 대해서 쓸 것인지를 확실히 밝혀야 합니다. 세상에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석가모니나 예수조차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작가는 자신이 쓴 글에 대해 욕하는 사람이 생길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자기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못하고 우물쭈물해서는 안 됩니다. 작가는 글을 쓰기 전에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를 분명하게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글을 마무리할 때까지 그 입장은 확고해야 합니다.
나는 ‘입장’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누구의 어떤 ‘시각視角’에서 이 사건을 바라볼 것인가를 정해야 합니다. 작가가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글의 결론이 달라집니다. 위의 예를 두고 글을 쓴다면 우선 ‘개 주인의 입장’과 피해자 A 씨의 입장이 있겠지요. 그럼 단 두 개의 입장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걸까요? 아닙니다. 이 사건과 관련된 다른 사람, 즉 이해관계인의 입장을 고려해야 합니다. 당사자 외에 제삼자의 시각도 있습니다. 아파트 주민의 시선도 있을 수 있고, 합리적인 동물보호론자의 시선도 있습니다. 동물행동전문가나 사회 통합론자의 시선으로 본다면 또 다른 이야기를 쓸 수도 있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좋은 글은 여러 사람의 말을 들어보고 균형 잡힌 시각을 확보한 다음에 써야 합니다. 적어도 공적公的인 글이라면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글을 쓰기 전에 공부하고 취재取材부터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쓴 글은 한 사람의 왜곡된 입장만을 드러낼 뿐이지요. 그렇게 공부하고 취재하는 것은 단지 글쓰기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지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글쓰기 기술만 갖춘 테크니션technician도 적지 않지만 제대로 된 글쓰기를 하는 사람의 지적 수준은 일반적으로 일반인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작가의 지적 능력이 평범한 수준을 넘어서는 것은 단지 글을 쓰기 때문이 아니라, 글쓰기 전에 하는 취재와 공부 덕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글쓰기가 결론을 내놓고 그것을 강화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정직하고 합리적인 결론을 말하기 위한 것이라면, 작가의 공부는 선입견을 부정하고 진실로 모든 것을 처음으로 가져가서 파악하는 것이라야 합니다. 좋은 글은 그것과 관련된 여러 사람의 입장을 성실하게 검토하고 합리적인 결론을 찾아 나아가는 구도의 길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