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인 Aug 23. 2018

[서평]벨자, 만연한 우울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겠지만.

"몸이 깨끗하고 성스러워진 느낌이었다.

새로운 삶을 살 준비가 된 기분."


대학에 갓 입학한 미국의 20대 여성은 무엇이 그렇게 괴로웠을까.


벨자를 읽는 내내 그녀의 우울은 나로서는 복잡한 포장의 거대한 꾸러미같았다. 손에 쥐었기에 열어보기는 해야하나 포장을 풀다 멈추고 풀다 멈추기 일쑤였다.


작 중 에스더는 유년기때부터 온전하지 못했다. 죽음에 의한 아버지의 부재와 더불어 우수한 자식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과 자신을 억압하는 사회를 향한 반항심이 한데 섞여있는데 그것을 해소할 길이 없다. 만연한 우울은 여기서부터가 시작일 것이다. 그러다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글쓰기가 마음처럼 되지 않자 미쳐버린다. 결국 에스더는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다. 읽는 내내 에스더가 정말로 미쳐버린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의 우울을 방패삼아 모든 것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오랫동안 산책할 거예요."

ego가 강한 사람에게는 어설픈 위로가 독이듯, 어떤 것에도 위로받지 못한 에스더가 택할 수 있었던 길은 결국은 죽음이었을 것이다. 에스더는 불완전함과 동시에 강한 ego를 가졌기에 더더욱 좌절했을 것이다. 이는 실비아 플라스의 인생과 이어진다. 어쩌면 죽음으로 가는 길이 그녀에게는 평안을 가져다 주는 산책로였을지도.



"유럽에 가서 연인을 만날 때까지 소설 쓰는 일은 미루기로 했다... 여름 동안 [피네건의 경야]를 읽고 논문을 써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리 준비하면 새학기가 시작됐을 때 쩔쩔매지 않아도 되리라. 우등코스를 택한 졸업반은 졸업 논문을 마칠 때까지 정신없이 보내기 마련이지만, 난 마지막 해를 느긋이 즐길 수 있을 터였다. 문득 공부를 일 년 미루고 도자기를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났다. 아니면 독일에 가서 웨이트리스를 하면서 독일어를 완벽하게 익힐까. 이런저런 계획이 산토끼 가족처럼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다."


 구절은 마치 지금의 나 혹은 예전의 나와 같았다. 여러 계획들이 머리속을 휘젓고 그 계획에서 파생된 것들이 혼재되어 있다. 하지만 그 중에 실행하고 있는 것은 정작 없다는 점이 나를 힘들게 한다. 결국엔 머리속에서 뱅뱅 도는 것들은 하나의 잔해로 남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책의 내용이나 작가의 역사는 제쳐두고 이 작품의 최대의 오점은,

20세기 중반의 보수적인 미국의 사회를 조롱하고 여성으로서 평등을 주장하는 당찬 여성이 정작 인종차별주의 자라는 점이다.


<벨자>에는 중국사람을(아니, 아마도 중국으로 대변되는 아시아인을) 두번씩이나 비하한다.

공부도 잘하고 모범적인 우등생이, 많이 배워 평등이나 여성에 관한 시각이 깨어있는 이 여성은 자신이 인종차별주의자인지는 의식하고 있지도 않다. 편협하기 그지없다.



"도시에서 지내니 피부색이 옅어졌다. 난 중국 사람처럼 누렇게 떴다. 평소 같으면 드레스와 흉한 피부색이 신경쓰였겠지만..."


"크고 뿌연 눈으로 날 멍하게 바라보는 중국 여자가 보였다. 물론 거울에 비친 나였다."



흉한 자신의 모습을 표현할 때, 중국사람 혹은 중국여자라는 단어를 쓴다. 대체 이 표현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지도 모르겠고 손톱의 파편만치도 알고 싶은 마음도 없다. 벌레같다고 말하지 않은 것에 감사라도 해야할까. 물론 모든 작품은 시대성을 고려해야 한다지만, 그 시대에도 깨어있는 사람들은 늘 올바르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작가 실비아 플라스처럼 이름만으로 전설이 된 예술가, 작품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결국 자살로 세상을 떠난 뜨거운 사람, 여성작가라서 능력을 폄하당했던 여성이 결국엔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사실이 자꾸 내 발목을 잡는다.


결국 바닥까지 열어 나에게 쏟아져 버린 그녀의 우울을 나는 평생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 실비아플라스는 이 책을 읽는 어느 독자에게도 이해를 바라지 않겠지만.




 

작가의 이전글 <연인>,애잔한 에로티시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