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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Jul 24. 2018

<연인>,애잔한 에로티시즘

장자크아노의 연인 (1992)



<연인>, 이토록 애잔한 에로티시즘






시끄럽지만 조용한 그들의 교감

영화의 배경인 식민지 치하의 베트남 사이공은, 시종일관 시끄럽다. 까마귀 소리, 차 경적소리, 바닥에 앉아 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시끄러운 대화와 인력거 소리. 귀를 막고 싶을 만치 시끄러운 이 배경 속에서 두 연인은 첫만남부터 헤어지는 순간까지 해야하는 말만 주고 받으며 모든 행동이 조용하고 정적이다. 이들이 무엇인가에 열중하고 동적일 때는 오직 육체적 관계를 가질 때 뿐이다. 그런데 한 프레임에 이 두사람이 보일 때면 주변의 잡음이 페이드아웃되며 두 사람의 대화, 눈빛, 교감에만 집중하게 되는 신기한 현상이 발생한다. 한정된 장소의 정적인 움직임 속에서 서로의 육체를 탐하는 두 연인의 동적임이 이질적이면서 조화롭다. 




모든것이 다르다

15살의 소녀와 32살의 남자

가난한 프랑스 소녀, 부유한 중국인 부호 남자

국적, 인종, 나이, 빈부의 차


모든 것이 다르다. 다르기 때문에 처음부터 서로에게 육체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들은 이름조차 나누지 않는다. 그 이상의 것을 기대했다간 모든 것이 무너진다고 생각한다. 소녀에게 남자는 돈만 많을 뿐인 동양 남자이고 남자에게 소녀는 돈으로도 끝내 가질 수 없는 어린 서양 여자이다. 1920년대 말의 인종차별적 시대상과 식민지 지배 아래의 허무한 인간상이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이 남자가 항구에서 첫 눈에 반한 소녀에게 담배를 권하며 처음으로 말을 걸 때, 남자의 손은 파르르 떨린다. 이 장면 하나로 관객들은 그와 그녀의 관계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모든 조건을 무시하게 된다. 이 남자는 소녀와 사랑에 빠졌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인 남자가 건네는 말들을 자연스럽게 무시하던 소녀는 남자가 자신의 모자를 칭찬하자 그제서야 관심을 보인다. 소녀에게 모자란, 형편없고 불완전한 가족과 집에서는 얻을 수 없는 울타리이자 그 모자란 부분을 채워 자신을 완전하게 만들어주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소녀가 남자 모자를 쓰고 다니는 것을 익숙하지 않게 받아들이던 환경에서 자신의 모자를 독창적이라며 칭찬해주는 남자에게 어린 소녀는 마음이 이끌린다. 남자가 자신의 울타리와도 같은 모자의 중요성을 인식해주는 순간, 이 남자는 국적, 인종, 나이를 떠나 '경계를 풀어도 될 남자'로 변모한 것이다. 그래서 기숙학교까지 태워주겠다는 제안을 소녀는 받아들인다. 




이토록 애잔한, 에로티시즘 

아찔하다. 너무 아찔해서 보던 내가 눈이 감겼다. 흔들리는 차 안, 남자가 소녀의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더듬기 시작한다. 소녀도 눈을 감는다. 차의 흔들림은 그들의 요동치는 마음과 같음을 암시한다. 


마치 절정에 다다른 듯한 깍지낀 손은 그 어떠한 베드신, 섹스신보다 에로틱하다 못해 본능적인 아름다움까지 느껴진다. 남자는 순순히 자신의 방으로 따라들어오는 소녀가 경험이 많아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지만, 소녀는 순수하며 궁금할 뿐이다. 그들은 이해타산적인 관계라고 자위했지만 이미 그들의 사랑은 시작된 것이었다. 


소녀가 가족들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소녀의 가족들은 그를 대놓고 무시한다. 심지어 소녀조차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는다. 가족들은 두 사람이 사랑으로 묶인 관계라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인종적인 차별도 있겠다. 그들의 눈에 남자는 어린 여자를 돈으로 유혹하는 하찮은 '중국남자'일 뿐이다. 남자와 소녀는 몸을 최대한 떨어뜨려 춤을 춘다. 


그들은 오직 '방'에서만 연인이다. 방에서의 그들은 마음과 몸이 가장 친밀한 사람이다. 방이 아닌 곳에서 남자는 마음 놓고 키스할 수 없고 껴안을 수 조차 없다. 소녀가 남동생과 몸을 밀착하여 춤을 추는 모습을 보는 남자의 눈에는 눈물이 맺힌다. 그는 좌절했을 것이다. 그날 밤, 방으로 돌아온 남자는 소녀를 강압적으로 가지고 소녀는 반항하듯 500피아스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남자에게 소녀는 돈으로도 가질 수 없는 것이어서, 아버지의 돈을 상속하는 일 외에는 아무 능력이 없는 자신이 그 돈 마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된 것이 허무하다. 소녀에게 이 모든 것은 격정적이고 너무나 새로운 것이어서, 새로운 것이 주는 황홀경에 빠져 오직 그것에만 탐닉하고 자신의 마음의 동요가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베트남을 떠나 프랑스로 향하는 배에 올라 그녀는 무엇인지 알 수 없었던 마음의 근원을 찾는다. 




불편함은 잠시 접어둘게요

"예술과 외설은 한 끗 차이라던데", "결국 이는 소아성애자의 이야기가 아닌가?", "30대 남자가 돈을 미끼로 다 자라지도 않은 10대 여자아이를 탐하다니"와 같은 불편함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연인은, 철자 그대로 연인에 관한 이야기이며 인연이었지만 연인이 되지 못한 두 사람의 이야기다. 


온갖 불편한 관계는 여기서 다 찾아볼 수 있다. 나쁘게 보자면 충분히 최악일 수 있는 조건은 다 갖춘 작품이다. 원작자인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자전적 이야기라고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돈만 많은 삼십대 남자와 십대 여자아이라는 캐릭터 설정이나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화풀이를 하는 강간신 등 용서할 수 없는 장면이 투성이지만 이 영화의 완벽함은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불편함 속에서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보았다. 이토록 애잔한 에로티시즘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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