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이 갑이 될 때 : 프로듀스X

2019년 5월 17일

by 제인

아버지께서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틀어놓은 프로듀스 X를 보게 되어버렸다. 이 마약 같은 프로그램. 다신 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이 프로그램이야말로 공식적으로 "갑질 한번 해봐라, 을들아"라고 외치며 기획의 산물이지 않을까 싶다.


미친 듯한 경쟁사회를 살아내며 동시에 나만 죽을 수는 없으니 경쟁을 부추기면서, 이 세계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 우리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버려버리고 좋아하는 것을 골라 담을 수 있는 선택권을 줌으로써 이 경쟁사화에 동조하게 하여, 죄의식을 느끼게 됨과 동시에 누군가의 목숨을 손에 쥐고 있다는 가져보지 못한 갑의 쾌감을 선사해 극도의 모순적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이 마약 같은 방송을 어떤 식으로 소비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담당 프로듀서의 전작에서 보이는 스타일인 악마의 편집은 사실 프로듀스 X에서는 크게 의미가 없다. 잠깐의 안주거리일 뿐, 연습생들의 외모, 실력 그리고 끼가 중요하다. 이슈를 일으킬 범죄나 사고만 아니라면 웬만한 과거는 잘생기고 실력 좋으면 넘어가 주는 분위기이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바로, '상대적 박탈감'. 못하는 친구들은 아예 논외로 치고 노래를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심지어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하는 친구가 있다. 그리고 노래도 춤도 못하지 않는 정도의 수준이고 실력 부족을 알고 노력을 하는 친구가 있다. 하지만 후자가 미친 듯이 잘생겼다면? 당신은 누구에게 투표를 할 것인가. 후자다. 더러운 세상이지만 후자다. 여기서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연습생들을 물론이고 그렇게 투표하는 우리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죄의식을 가지게 됨과 동시에 갑의 쾌감을 느끼게 해주는 아이러니함. 인간의 양가적 감정을 제대로 파악한 천재적 프로그램. 아마 난 오늘도 이걸 보게 되겠지. 죄의식으로 둘러싸인 채로 꿈을 향해 달려가는 친구들을 쉽게도 버려버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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