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른일기

배고프면 예민하다

2019년 8월 12일

by 제인

퇴근 후 저녁 약속. 정말 오래전부터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대한옥의 꼬리찜. 퇴근 후, 식당에서 모이기로 했다. 꼬리찜에 소주 한잔, 이 얼마나 맛있게요? 걸어가기 애매한 곳이라 역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 탔다. 이미 가족들은 다 식당에 도착해 있어 마음이 급했다. 구글맵이 차로 2분 거리라고 해서 기사님께 "차로 2분 거리라고 나오는데 제가 초행이라 길을 모르니 네비를 찍고 가주세요."라고 했다. 여느 기사님이 그렇듯 이 기사님도 연세가 있으신 분이라 네비 찍는 게 익숙하지 않으신지 그냥 지도 켜고 있으면 안내해달라고 하시길래 알겠다고 하고 출발했다. 길을 잘 모르다 보니 좌회전해야 하는데 길이 다른 곳이라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했다. 거기까진 이해했다. 근데 너무 이상한 길로 가고 있는 것 같아서 길을 잘 모르겠으니 지금이라도 내비를 찍어달라고 했더니 난데없이 아가씨가 길 안다고 하지 않았냐며 귀찮은 듯한 말투로 책임전가를 하시길래 어이가 없어서 "아까 초행길이라고 했고 잘 모르니까 주소 찍고 가달라고 분명히 말씀드렸잖아요."라고 딱딱하게 말했더니 할 말이 없으셨는지 누그러진 말투로 이쯤인 것 같은데... 하시며 말끝을 흐리셨다. 사실 평소 같았으면 웃으면서 넘겼을 텐데 더운 데다 배도 고프고 이미 메뉴가 나와있다는 말에 짜증이 일었다. 가족 이외의 누구한테도 예민하게 굴지 못하는 성격인데 유독 그랬던 날이었다. 그래도 속은 시원해. 이래서 할 말 하고 살아야 하나보다. 사람 좋자고 웃어넘겼으면 분명 계속 속으로 짜증 났을 거다.


날 반기던 꼬리찜과 가족들. 도착한 나를 보고 난데없이 동생이 짜증을 낸다. 이 새낀 또 왜 이래? 내가 지금 일부러 늦은 것도 아니고 택시기사가 돌아와서 늦은 건데! 내가 늦고 싶어서 늦었냐고! 다다다 쏟아냈더니 황당한 동생은 알고 보니 내가 자기가 개시도 안 한 티셔츠 훔쳐 입고 나가서 화낸 거였다. 오해해서 미안. 화낼만하지. 근데 엄마가 내가 입으니까 더 이쁘대. 꼬리찜에 소주 한잔은 모든 짜증을 날리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기분 좋게 지갑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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