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25일
공교롭게도 나와 엄마의 쉬는 날이 겹쳤다. 아침 일찍부터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고 엄마가 예약한 샵에 꼽사리 껴서 머리를 했다. 나이 서른에,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고 엄마가 내 미용비를 계산해준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나, 싶다가도 내가 회사원일 때는 맨날 내가 맛있는 거 사주고 비싼 샵도 모시고 갔었다고 말하며 엄마를 위로했다. "엄마, 조금만 기다려. 내가 지금 이렇게 한 푼도 내놓지 못하는 건 다 잘돼서 엄마 좋은 거 많이 해주고 싶어서야". 지금은 말뿐인 다짐이지만 꼭 현실화를 시켜야만 한다. 최소한 3년 안에는 말이다.
아무튼 엄마랑 일찍 머리를 하고 전시를 보러 용산으로 향했다. 얼마 전 보고 온 코코 카피탄의 전시의 영향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우리 전통 산수화를 본 탓인지 크게 와 닿았다. 아무것도 없이 붓과 필만 있던 시절의 예술은 너무도 사실적이면서 환상적이라 황홀했다. 꾸며내지 않고 자연과 사람 그대로의 모습을 담은 김홍도의 초기 풍속화와 후기 산수화까지 치밀하고도 정이 가득한 그의 그림에 푹 빠졌다.
게다가 이번 전시는 그의 그림을 3D로도 구현하여 디지털이 접목되어 마치 지금 내 눈 앞에 규장각과 백두산이 있는 느낌까지 받았다.
"천 이랑의 노을 진 바다
만 이랑의 푸른 물결
푸를 때는 푸른색이 사람을 녹이고
붉을 때는 광채가 반짝반짝하네
저 절경이 환상 같다 한들 안 될게 뭔가
숲이며 집들이 내 책 속에 들어왔으니"
열심히 또 즐겁게 전시를 보고 나니 둘 다 배가 고파왔다. 맛없는 점심을 하고 싶지 않아서 이리저리 찾아보았는데 역시 낮 3시에 이태원에서 장사하는 집을 찾기란 참 어려운 일이었다. 작은 키친들은 거의 브레이크 타임이거나 콧대 높은 집들은 점심장사를 또 안 한다네. 결국 선택권은 없었고 이태원 메인에 유일하게 식사가 가능했던 마이치치스에 들어갔다. 개인적으로 연예인이 하는 가게, 거기다 유명하기까지 한 곳은 절대 가지 않는다. 대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눠지기 때문이다. 맛이 있고 싸가지가 없거나, 맛이 없고 싸가지가 없거나. 아, 이렇게 말하면 너무한가. 불친절하다로 정정하겠다. 사실 나도 그리 친절한 사람이 못돼서 손님으로서 직원들의 과한 친절 혹은 손님이 갑인 친절은 바라지도 않고 싫다. 그래도 적어도 돈을 지불하는 사람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 간에는 인간으로서의 예의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 한 마디로 '인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어서 오세요, 혹은 맛있게 드세요, 혹은 안녕히 가세요. 이 세 문장이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난 분명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라고 말했지만 상대로부터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 하다못해 화장실에 휴지가 없다고 말했는데 그냥 쳐다만 보는 표정이라니. 내가 지금 들어오지 말라고 한 남의 집에 쳐들어가서 무료로 화장실을 쓰고는 휴지 없다고 했나? 그나마 엄마와 나 모두 이런 거에 기분 나빠지지 않으려 하는 타입이라 저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지만 정말 예의라는 것이 없었다. 난 나중에 장사하면 직원 못쓸 거야. 사장 마음 직원 마음 참 다르다.
그래도 배가 고파 맛은 없었지만 그릇을 싹 비우고 파치드 서울로 향했다. 엄마가 신기해한 곳에 위치해있는 카페. 말도 안 되는 골목의 건물의 지하에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찾아가는 것을 보며 엄마는 놀라 했고 컵 세 개를 겨우 올리면 꽉 차는 작은 스툴을 보고 두 번 놀랐다. 요즘 애들은 이런 곳을 좋아하는구나. 하며 재밌어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일은 즐겁다. 낮 타임을 그녀와의 데이트로 보낸 후, 그녀는 집으로 나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카페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