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인생

<픽션>

by 메가스포어 megaspore


또 눈을 떴다.

하루는 언제나 그렇게 시작된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아무런 희망도 없이.

언제나 그렇듯 말라비틀어진 식빵을 토스트기에 넣고 언제나 그렇듯 까맣게 태워버린다.
마치 내 마음처럼.


길거리에 나선다.

언제나 그렇듯 내 눈은 바닥을 향하고 언제나 그렇듯 내 발은 종종걸음을 친다. 누군가를 피하기라도 하듯이, 여기를 빠져나가고 싶다는 듯이.


내가 언제 당당하게 앞을 보며 걸었었는지. 언제 배꼽을 잡으며 웃어봤는지. 내 인생에 과연 그런 찬란한 날이 있었었는지 기억조차 가물하다.


사람들에게 기대를 버린지 오래다. 기대는 언제나 실망을 동반한다. 기대를 버리면 상처 받지 않는다는 보물같은 인생의 비밀을 알게 된 후부터 나는 그저 이렇게 삶을 살아간다. 아주 무덤덤하게. 언제나 이래왔던 것처럼.

먹기 위해 사는 것인가 살기 위해 먹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누군가가 던지던데 먹기 위해 사는 사람도, 또 살기 위해 먹는 사람도 모두 그 목적이 있기에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그저 살아있으니 산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사무실에 들어선다.

언제나처럼 사람들은 마치 앞에 있는 모니터에 귀신이라도 들린냥 텅 빈 눈으로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고 서로를 지나치는 사람들의 인사는 공중에 붕붕 떠오르듯이 한없이 공허하다.

사람들의 공허한 눈. 하지만 올라가 있는 경직된 그들의 입꼬리.

서로가 서로를 안다고 자신하지만 그 누구도 누구를 알지 못 한다.

인간이 인간을 안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이토록 다행스러울 수가 없다. 누군가가 누군가의 마음을 스캔하듯이 다 알아버린다면 우리는 지금 이 정도도 그들과 가까워질 수 없을 것이다. 아무런 비밀이 없다는 것은 그토록 끔찍한 것이다.


9시 땡. 먼지가 소복히 내려앉은 컴퓨터 앞에 앉는다.

6시 땡.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어색하게 있는 힘껏 올린 후 최대한 비굴한 티를 내며 오늘은 일찍 가봐야 한다고 말한다. 내 옆에서 한시도 쉬지 않고 나를 위아래로 감시하던 그는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전철 안에 있는 그들을 바라본다. 졸고 있는 사람, 그 작은 기계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사람, 번들거리는 화장을 고치는 사람, 언제부터 마셔댄건지 알싸한 술냄새와 함께 안주 냄새까지 풍기는 중년남자. 노약자석에서 당당하게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는 젊은이를 향해 레이저를 발사하는 등산가방을 맨 정정한 할아버지.


서로 다른 듯 보이는 이 사람들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을까.

나처럼, 나처럼 보냈을까. 나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아니면 다 나같은 것일까.


뒷굽이 다 닳아 끽끽소리를 내는 뾰족한 구두를 벗어던지고 쇼파에 털썩 드러눕는다. 등이 왜 이리도 차가운지. 차가운 게 등인지 심장인지 구분이 안 간다.


속이 허하다.

냉장고에는 유통기한 지난 딱딱해진 치즈와 먹다 남은 게맛살, 그리고 공허한 나의 우주를 다 채워버리기라도 작정한 듯한 칸마다 꽉꽉 채워진 맥주들.


언제나처럼 5개들이 라면을 뜯어 반동강 낸 라면이 익어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오늘은 면이 통통한 너구리를 먹을 것인가 실패할 확률이 없는 신라면을 먹을 것인가이다.



무언가가 늘러붙어 잘 떨어지지도 않는 식탁에 오늘도 물양 조절에 실패한 신라면을 냄비째 올려놓은 채 냉장고에서 사놓은 김치를 내놓는다.

언젠가 사먹는 김치는 맛이 없다고 불평을 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잘 먹기만 한다.

인생이 이렇다. 어떻게든 적응해가는 게 인생이다.
행복이든, 불행이든.


가장 무서운 지옥은 견딜만한 지옥이라고 누군가가 그랬던가. 절대 빠져나올 생각을 안 할테니까. 사람은 견딜 수 없어야 그 곳에서 돌파구를 찾는 법이다. 그리고 인생은 언제나 견딜만하게 괴롭다.


어떤 중견 탤런트가 자기는 다이어트를 위해서 면만 먹고 국물은 남긴다는 말을 했다. 아직도 뚱뚱한 그를 떠올리며 구름처럼 흐트러진 계란이 동동 떠다니는 국물을 원샷한다. 국물은 언제나처럼 짜고 인생은 언제나처럼 쓰다.


번들거리는 얼굴을 대충 씻는둥 마는둥 하고 땀에 젖은 발을 샤워기로 쉬이 훑어내고 언제 빨았는지 알 수 없는 꿉꿉해진, 뒤집어진 잠옷을 주섬주섬 입고 침대에 눕는다.

어디서 바람이 들어오는 것일까. 차가운 것이 참을 수 없어 이불을 몇겹을 싸매어 보지만 나의 몸은 스르르 떨린다. 차갑고 또 시리다.

움츠린 몸을 이불로 더 움츠린 채 오늘 하루를 회상해본다.

나도 달라질 수 있을까.

내 인생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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