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현상

이런 저런 책들과 이런 저런 영화들 속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나 자신을 제 삼자를 바라보는 것처럼 하나씩 이해해 나가기 시작하고,

너무나 뿌얬던, 그래서 한치 앞도 어디로 나아갈지 몰랐던, 한발만 디뎌도 넘어질 것 같았던 나의 미래는 아주 조금씩 선명해져가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아주 좋은 현상이 생겼다.

내가 예전만큼 '더 좋은 것'을 자꾸 자꾸 갈구하게 되지 않는다는 것.

더 좋은 것이 생기면, 더 나은 곳에 도달하면 나의 공허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문학작품을 통해서, 글쓰기를 통해서, 사람들 사이의 자신을 가감없이 드러낼 수 있는 진실한 소통을 통해서, 나는 이해할 수 없던 나 자신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나 자신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마찬가지로 나 자신만큼이나 이해할 수 없었던 타인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다른 듯 아주 닮았다.

나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타인을 이해하는 눈이 열린다는 것이며,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을 낸다는 것은 곧 나 자신의 받아들일 수 없던 면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심을 키운다는 뜻이다.

분노할만큼 분노해야 그 시기를 지날 수 있다.

내 인생에 대해 억울하다고, 원망할만큼 원망해야 그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

무얼 해도 어디에서도 의미를 찾지 못해 공허하고,

나는 영원히 저들처럼 순수하게 행복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마치 행복의 불구자로 태어난 것 같아 절망스러울 때도 분명 있다.

그런 시기를 온전히 넘겨야 그 다음 단계를 맞이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 다음 단계는 조금은 더 편안하고, 조금은 더 성숙한, 그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단계이다.

우리를 가로막는 것은, 너는 슬퍼하면 안돼, 너는 이래야 돼, 저래야 돼, 등등 마음껏 슬퍼하거나 마음껏 고뇌하지도 못하게 만드는 내 자신이다.

그럴 만하니까 그러지 않겠는가.

슬퍼할 만하니까 그리 슬픈 것이다.
분노할 만하니까 그리 분노했던 것이다.

우리는 각자 인생의 단계를 거치고 있고,

그 다음이 있다는 생각이 온전히 이 단계를 거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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