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해도 싸다?

by 메가스포어 megaspore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면 나에게는 상처로 남겨질만한 사건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 사건들은 천성적으로 조용했던 나를 더욱 의기소침하게 만들었으며 세상을 회색빛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그 중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은 역시 뭐니 뭐니 해도 폭력적이었던 나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다.

초등학교 때 방학숙제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심하게 매를 맞았고 중학교 때는 아버지에게 맞아 시퍼렇게 멍든 종아리를 숨기기 위해 더운 날에 교복치마에 까만 스타킹을 신고 가기도 했다. 남들 다 가는 대학 MT도 나는 하룻밤을 자고 오는 것을 허락받지 못 해 밤 늦게 혼자 먼 길을 차 타고 오곤 했다.

또 한가지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같은 반 남자아이한테 괴롭힘을 당했던 기억이다.

말없이 얌전하고 조용하던 나를 '바보'(아마도 저학년인지라 그 아이도 딱히 날 더 크게 충격 줄만한 어휘를 찾지 못했으리라)라 부르며 내 손바닥을 연필로 찍어 연필심이 손바닥에 들어가기도 했고 그 자국은 아직도 내 손바닥에 남아 가끔 그것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옛날의 나를 떠올려 보기도 한다.

마지막 한가지는 졸업 후 작은 무역회사에 (중소기업 중에서도 소기업) 들어가 사장님과 친하셨던, 회사에 자주 찾아오시던 거래처 사장님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기억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성추행이란 뉴스에 나오는 남일인줄로만 알았고 (지옥철에서는 종종 알 수 없는 마수의 손길이 내 엉덩이를 왔다갔다 하는 것을 느끼긴 했지만서도) 내가 직접 그 일을 당하니 정말 너무나 황당해 그저 현실처럼 느껴지지가 않을 뿐이었다.

회식이 끝난 후,
그 자주 찾아오시던, 우리와 같이 회식에 참석해 술이 거나하게 취한 거래처 사장님과 회사에 다시 올라가기 위해 단 둘이 엘리베이터에 타게 되었는데,

갑자기 믿을 수 없는 일이 나에게..

평소에 친절하게 나에게 인사를 건넸던 (평소에도 느끼하게 느껴지긴 했었다..)그 사장님이 갑자기 두 손으로 내 가슴을 덥썩 주무르는(?) 것이 아닌가!!??!!

아 정말 이런 개 새 ........

너무나 황당했고 사람이 너무나 당황스러우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것인지
정말 식상하게도 나의 반응은.....

"왜 이러세요............!!!!"

ㅜ_ㅜ

마음 속으로는 '이 개 10 새 야 !!!!!!!'
라고 외쳤지만 겉으로는 저런 식상한 표현이라니........ㅡㅡ

그랬는데 그 뒤에 이어진 그 '개 새'의 반응이 더 가관이다.

'개 새' 왈:

"이럴 때는 그냥 가만히 있는거야....
(씩 하고 느끼한, 죽이고 싶은 그 느끼한 미소를 지으며)

아........

저런 10 새를 봤나.......
(너 인생 바로 하직하고 싶냐?)

다행히 우리 회사는 5층밖에 안 되서 금방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나는 비록 몇 초만에 발생한 일이지만 너무나 가슴이 쿵쾅거렸고 부들부들 떨며 이 일을 바로 나와 속내를 털어놓고 친하게 지냈던 여자 과장님께 털어놓았다.

여자 과장님은 그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하신 베테랑이었으며 사회생활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너무나 노련하신 분이었다.

과장님은 부장님께 이 일을 알렸으며 아마도 부장님이 사장님께 또 전달했으리라.

여자 과장님은 나를 진심으로 위로해주었고 앞으로는 절대 그 '개 새'가 내 옆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항상 본인이 내 옆에 있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xx씨(내 이름)가 너무 "예뻐서(?)" 사장님이 그랬나보다고 조금은 위로가 되는(?) 말을 해주셨다....

그 당시 나는 지금의 남편(예전 남편 없음)인 남친과 사귀는 중이었지만 이 일은 지금까지도 내 남편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런 일을 당한 내가 마치 더럽혀(?)진 것 같은 느낌에.. 마치 당한 내가 잘못인 것 같은 느낌에 나를 소중히 생각하는 남친에게 그 일을 털어놓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털어놓지 않을 생각이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보통 자신이 그런 피해를 당했으면서도 신고를 하길 꺼린다고 한다.

신고를 하면
"여자가 밤 늦게 다닌 게 문제다. 술 마신 게 문제다. 혹은 같이 호텔에 들어간 게 문제다.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게 문제다. 등등"
여자가 그렇게 성폭력을 불러 일으킬만한 행동을 했으니까 그런 일을 당했겠지 라는 잘못된 인식을 당할까봐서이다.
(그리고 그런 잘못된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다)

나 역시도 여자지만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것이 수치스러웠고 마치 내가 잘못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만약 당시 노출이 심한 옷을 입었거나 했다면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나를 자책했을 것이다. (왜냐면 그것은 그런 행동을 불러 일으킨 나의 잘못이니까)

다행히 나는 잘 꾸미지 않는 스타일이었고 노출이 심한 옷은 커녕 교복처럼 항상 같은 편한 옷차림에 겨울엔 춥다고 주위 아랑곳않고 하루종일 털목도리를 둘둘 두르고 있던 그런 스타일이었다.

그런 나에게 그런 욕망을 갑자기 느낀 그 '개 새'를 보면 술이란 것이 얼마나 사람을 환각 상태에(환각상태에 빠진 그 '개 새'는 그 순간 내가 섹시하게 보였을 수 있다..) 빠지게 만드는지, 충동적으로 만드는지 알 수 있다...

나중에 회사 다른 여직원에게 이 일을 털어놓았는데 알고보니 그 '개 새'는 상습범이었다.

다른 겨우 20대 초반밖에 안 되는 순수한 어린 여직원에게 고작 한다는 말이

"너 세상에서 가장 흥분되는 일이 뭔지 아냐?
서서 하는 일 중에서 제일 흥분되는 일은
'골프'고 누워서 하는 일 중에서 제일 흥분되는 일은 '섹스'야"

이런 미친......

그래서 어쩌라고 이 10 새야.......

암튼 인터넷에 나온 왕따 기사를 보니 예전에는 가해자들이 특히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아이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가해자들이 그냥 평범한 학생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가해를 할 만한' 행동을 하는 '피해를 당할 만한' 사람이 있으면 평범한 학생도 언제든 왕따 가해자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면 그 피해자는 그럴만한 '피해를 당할 만한'일을 자기가 자초했으니까...

인터넷 기사에서 본 '우리 아이 왕따 예방하기'란 강의를 보면 그 해결책으로
'깔끔한 옷을 입어야 한다'
'자기가 기가 죽지 않으면 아무도 건드릴 수 없다' 등의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나도 그것에는 동의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사람들을 죽일 때 가해자들은 자신의 죄책감을 줄이기 위해 피해자들에게 옷을 입히지 않거나 변을 아무데나 누게 한다거나 해서 그 피해자들이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게 해서 죽였다고 한다.

어떤 피해자는 모처럼 따뜻한 커피 한잔을 받으면 그것을 자신의 몸을 녹이는데 써버리지 않고 그 커피로 얼굴을 깨끗이 닦았다고 한다. 그러면 나중에 가해자들은 그 깨끗한 얼굴을 한 피해자를 쉽게 죽이지 못 했다고 한다. 왜냐면 죄책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토록 외모 지상주의가 된 것도 아마도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일 것이다.
딱 보기에 외모가 빛나고 깔끔한 사람을 우리는 함부로 대하지 못 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깔끔하지 못 한 사람은 마음 속으로 외모가 빛나는 사람들보다는 조금은 함부로 생각하는 경향은 누구에게나 조금씩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기죽지 않으면 아무도 건드리지 못 한다'는 데에도 백프로 동의한다.
누군가가 나를 계속 건드리는 데에는 내가 어딘지 모르게 기가 죽어 있기 때문이다. 기가 죽은 나를 주위에서도 그 기운을 느끼고 자신의 부족한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 그런 약해보이는 사람을 자꾸 건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왕따 예방법의 해결책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면 왕따를 당한 사람이 깔끔하지 못 한 옷을 입었다면 본인이 피해를 자초한 것인가?

누군가가 기가 죽어있고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면 그것 역시 피해를 자초한 것인가?

이런 의문에 휩싸이게 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어떤 범죄의 피해자들이 안타까운 건 사실이지만 그들이 '당해도 싸다'라는 마음을 알게 모르게 조금씩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해도 싼' 사람은 없다.

그가 노숙자처럼 옷을 입고 있든
기가 죽어 자신감이라곤 눈에 씻고 찾아봐도 없어보이든 상관없이 그건 그 사람의 어떠한 특성일 뿐이지 그것은 우리가 그의 인격을 어떻게 대해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존중 받아야 한다.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말이다.

그리고 가해자들 들으시라.

"당신도 언젠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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