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기도권 대학을 다녔는데 시외버스를 타고 다녔다.
내가 자주 타는 시간대의 시외버스 기사 아저씨께서 대부분의 기사님들처럼 무뚝뚝하신 분이었고,
나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인사를 하고 집으로 가는 그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십오년쯤 흐른 일이라 자세히 기억은 안나지만, 그 아저씨께서 어느날 버스 요금을 받지 않으셨다..!
요금을 내고 들어가려던 나에게 그냥 들어가라고 했고, 나는 어리둥절하여 네?왜요? 하고 근처 자리에 앉았는데 괜찮다며 그냥 들어가라고만 했다.
그리고 우연히도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아저씨 왈: 학생이 밝아서 버스를 타면 기분이 좋아져.
오.........
무뚝뚝하시던 기사님께서 저런 말씀을.....
그런데, 나중에 내 전화번호까지 물어보셔서(...)여기까진 아니다 싶어 그건 커트했지만,
어찌됐건 나로서는 기분 좋은 일이었다.
무뚝뚝하던 누군가에게 웃음을 줬다는 사실이.
나로 인해 누군가가 웃었다면, 나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잘 태어난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당신을 위해 태어났어요. 라고 내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으니.
내가 온전히 내 자신을 위해서 살 수 있을까. 사람은 그런 존재가 아닌 것 같다.
사람은 뼛속 깊이 사회적 동물이라서, 나처럼 내성적인 사람이든 사람을 좋아하는 외향적인 사람이든 다 사람과 연결되고 사람과 함께 웃고 울 수 있기를 꿈꾼다.
사람과 연결되어 사랑 받고 사랑 하며 살려면, 우선은 내 가면부터 벗고 순수하게 다가가야 한다.
가면을 썼다는 것 자체가 물론 존중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는 상대를 불신한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나를 불신하는 상대에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랑에는 한계가 있다.
내가 나를 보여줘야 상대도 자신을 보여줄 용기를 낼 것이다.
진짜 서로의 모습이,
화장으로 예쁘게 꾸민, 사실은 까져서 아픈 내 하이힐 속 발 같은 모습보다 더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