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15년만에 이혼한 아빠를 전철역에서 우연히 만났다. 쿵쾅거리는 마음으로(무서워서)아빠가 본인을 볼 새라 재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피했다고 한다.
아빠를 그날 우연히 본 얘기를 하시면서, 아빠에 대한 화제로 옮겨갔는데, 엄마가 갑자기 혼잣말처럼 하시는 말씀.
"물 안 떠왔다고 따귀를 때리고. 애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
지금 누구 말씀하시는 거?
나는 ??? 하는 마음이었지만 엄마에게 묻지 않았다. 그 기억은 엄마에게 아픈 기억일 것이므로.
게다가 엄마가 말하는 그 비련의(?) 주인공이 나라면, 그 주인공이 뭐라고라? 내가 물 안 떠왔다고 맞았다고라? 라고 말하는건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내가 그러면 엄마가 '우리 딸 이상=더 슬픔' 이렇게 엄마 사고가 전개될 것 같아 그냥 의문을 남긴 채로 그 대화를 종료했다.
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엄마가 이러저러한 얘기를 했는데 혹시 나 얘기 하는거야?"
언니는 한동안 답이 없었다.
까톡~
"너 얘기 하는거 맞아."
헐.........
이거 해리기억상실증인가 뭔가 하는 그거??? ....
"내가 그때 몇살이었지?"
"너 중학교 때 였을거야. 너가 약수터에서 물 안 떠왔다고 아빠가 살짝 (언니는 내가 분노 유발할까 걱정됐는지 세게는 아니고 '살짝' 때렸다는 것을 강조했다) 너 따귀를 때렸어. 내가 봤어. 엄마는 없었던 거 같은데, 엄마는 아마 얘기로만 들으셨을 거야."
음...... 중학교 때라니.... 완전 어릴 때라 기억 못하는 것도 아니고....
난 중학교 복장검사 때 내가 학교 뱃지를 달지 않았다고 내 안경을 벗게 하고 아주 거세게 따귀를 때렸던 기술 선생님을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 그때의 선생님의 분노 어린 표정까지도. 선생님의 안경 쓴 얼굴과 머리 스타일, 작았던 키까지도.
그런데 왜 우리 아빠한테 따귀를 맞았던 일은 아무 기억도 안 나는 것인가. 기억이 1도 나지 않는다. 어찌 된 일인가. 나의 머릿속은....
아빠한테 맞았던 일은 잊고 싶었던 일이었을까. 선생님한테 맞았던 일은 기억할만큼의 상처였지만, 아빠한테 맞았던 일은 기억하기 버거울만큼의 상처였을까.
아니면 그 정도 일은 나에겐 흔한 일이었기에 나에게 아무런 뇌의 자극도 주지 못했던 것일까. 선생님한테 그렇게 맞은 적은 아마 처음이었던 것 같고(그래서 기억이 강렬했을 것이다)
아빠한테 맞은 적은 그것이 처음이 아니어서 기억이 강렬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아예 나의 머릿속에 희미한 인상조차 남기지 않았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