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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가스포어 megaspore Mar 01. 2023

이걸 계속 꽉 붙잡아야 할지 이젠 놓아야 할지

유튜브에서 집에 책이 만권이 있고 (한국책이 아니라 외서라 다 사는데 거의 오억정도가 들거라고 했다)외출할 때도 캐리어에 열권 정도를 들고다니시며 계속 책만 읽는 67세 할아버지가 나오셨다. 3년전에 부도가 나고 그뒤부터 더 책에만 파고 드신 것 같았다.


집은 청소가 되어있지 않았다. 옷은 걸려있지 않았고 밥은 라면에 밥 말아드시는데 싱크대가 많이 지저분했다.


유튜브 영상 맨 윗 댓글에 “책 읽으시는건 본받을만하지만 책 읽으신 좋은 내용을 생활에도 적용하셨으면 좋겠다”는 댓글이 있었다.


당연히 그 댓글 쓰신 분이 맞는 말이긴 한데, 나는 그 할아버지가 이해가 됐다. 바로 내가 그런 식으로 생활을 했었다. 특히 코로나 때는 , 아이들이 있어 나는 좀 더 바쁘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지, 나도 그런 식으로 생활을 포기한 사람처럼, 집이 거의 그 할아버지 수준이었고 그저 책만 읽었다.


내가 그런 생활을 해보았으니 그 할아버지가 좋아보이진 않았지만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책만 파고 드시는지 이해는 됐다. 제삼자의 눈으로 보니 조금 더 알 것 같다. 그러면서 내 자신도 왜 그렇게 엉망으로 생활했는지 왜 미친듯이 책만 사들이고 책에 의지했는지 나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책이 좋은 것도 있지만 외로운 것이다. 책이 아니면 위로 받을 곳이 없고 사랑을 나눌 사람도 없는 것이다. 책 읽을 때가 가장 행복해요 하시는 것은 책 외에 다른 곳에서는 위안을 얻을 수 없다는 말이다.


부도가 나고 가족도 해체가 됐다고 하셨는데, 책 없으면 큰일날 사람처럼 열권씩 가지고 다니신다. 남들 눈치도 안 보시는 것 같고 책의 드넓은 세계에서만 편안함을 느끼는.


나도 그런데. 좀 나아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나도 비슷한데. 그래서 그 할아버지가 그렇게 행복을 추구하시는 걸 보고 나는 당당하게 책에서 읽은 걸 생활에 적용하셔야 하지 않겠냐고 댓글을 달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저렇게 되기 전에 이제 멈추고 방향을 틀어야 하나 위기의식을 느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 행복이라도 꼭 잡고 사세요 하면서 남몰래 응원(?)하는 마음이 되기도 했다.


67세가 되었을 때 나는 어떤 모습일까.

이 행복이라도 꽉 붙잡고 살아야 하는건지(나의 현재를 응원해줘야 할지) 아니면 더 늦기 전에 이제라도 방향을 틀어야 할지(하루라도 젊을 때) 생각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행복했다. 책만이 나를 이해해주는 것 같았다. 공허해서 책을 읽었는데 책만 읽어서 더 이렇게 됐을까. 책을 읽을 때 제일 행복하다던 할아버지의 미소처럼 나도 이게 진짜 행복인건지 내가 진짜 행복을 모르고 사는건지 아직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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