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기 위해 6시에 집을 나섰다. 덕소에서 시청역까지 가야 하고, 초행길이라 차는 두고 가기로 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지하철 안은 한산 했다. 회기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탄 후 시청역에 내리니 7시 10분. 7시 30분까지 시험장으로 오라고 했으니 20여분 정도 시간이 있다. 코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베이글을 주문했다. 시험에 대한 부담인지 베이글이 넘어가지 않는다. 나는 오늘 코치 자격증 시험을 위해 무교동에 왔다.
국제코치연맹 (International Coach Federation)에서 인증하는 코치 자격은 총 세 가지다.
- Associated Certified Coach (ACC): 코칭 100시간 + Coach Knowledge Assessment (CKA) 통과
- Professional Certified Coach (PCC): 코칭 500시간 + CKA 통과
- Master Certified Coach (MCC): 코칭 2500시간
CKA는 딱 한 번만 보면 되는 시스템이었는데, 올해 7월 말 새로운 CKA가 도입되었고, 앞으로 자격인증을 위해서는 무조건 새로운 CKA를 통과해야 했다.
지난주 PCC 자격을 위한 모든 절차를 통과하고, 드디어 마지막 단계 CKA를 치르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기쁜 마음에 CKA 시험 절차를 보니 이게 너무 까다로워졌다. 당연히 온라인 시험을 치를 생각이었는데, 내 컴퓨터로 온라인 시험을 치르려면 확인해야 되는 것들이 많았다. 절차를 읽다 포기하고 오프라인 시험을 보기로 하고, 예약을 하려 하니 11/8일 오늘 오전 8시에 자리가 있었다.
드디어 시험장. 나이 오십이 다 돼서 GMAT 시험을 보는 기분이었다. 좁은 시험장에서 번호표를 받고 작은 의자에 다닥다닥 붙어 앉았다. 이삼십 대 유학생이나 준비생 같아 보이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나이 든 내가 정장 입고 앉아 있으니 참 이상했다. 그래도 온라인으로 봤어야 하나, 새로운 시험이 어떤 건지 아무에게도 묻지 않고 이렇게 겁 없이 시험을 보러 와도 되나? 걱정이 되다가, 나이 듦의 장점 중 하나가 또 발동한다.
'떨어지면 또 오지 뭐, 별거 아니잖아.'
드디어 8시 10분경 컴퓨터 앞에 않았다. 나만 방에 혼자 있는 컴퓨터 앞에 배정돼서 괜히 기분이 좋았다가, 1번 문제를 마주하고 무척이나 당황했다. 올해 7월에 바뀐 문제 유형은 사지선다에서 Best Option과 Worst Option을 고르는 것인데, Best는 알겠는데, Worst가 헷갈렸다. 영어 지문 덕에 더더욱 20대 후반에 봤던 GMAT의 악몽이 떠 올랐다. 내가 왜 영어로 본다고 했을까 후회하며 겨우겨우 20문제를 풀었는데 한 시간이 지났다. 총 4시간에 81문제인데, 이대로는 다 못 풀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원래 3시간짜리 시험인데, 영어가 제 2 외국어인 사람들에게만 4시간이 할애됐고, 1번 문제를 보기 전에는 두 시간 안에 풀고 나갈 생각을 했었다. 자만 자만 또 자만.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10개를 겨우겨우 풀고, 다시 리뷰하겠다고 flag 계속하고, 20개 풀기가 그렇게 어려웠다. 이러다 30개는 어찌 풀고, 80개는 어찌 풀까 싶었다.
다행히 또 나이 듦과 이번에는 그동안 배운 코칭 짬밥이 나온다. 오케이, 10개 풀 때마다 잘했다고 칭찬하자. 80개를 10개씩으로 나눈다. 30개를 풀었을 때, 제공된 페이퍼에 "Great! 30 passed"라고 적고, 10개를 풀 때마다 계속 적어나갔다. 그때마다 잠시 한숨을 돌리기를 다섯 번 정도 하니 70번 문제를 지났다.
"아싸, 이제 11개만 남았다."
그런데 이제 시간도 한 시간밖에 안 남았다. 11개도 풀고, 깃발 달아놓은 문제들도 다시 봐야 하는데.
마음을 다시 잡았다. 할 수 있다. 드디어 81개를 다 풀었다. 이제 35분 남았다. 새로운 갈등에 봉착한다. 그만하고 집에 가고 싶다. 깃발단 애들 다시 안 봐도 패스하지 않을까? 웬만하면 패스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려놓고, 깃발 단 문제들을 다시 하나하나 리뷰했다. 결국 리뷰를 다 마치고, 시험을 끝낸 시간은 시험 종료 5분전.
시험장을 나오니, 센터 직원이 "Pass"했다는 문서를 준다. 날아갈 것 같이 기뻤지만, 속으로만 야호를 부르고 코치의 진지한 얼굴을 장착하고 센터를 나왔다.
야호 야호!!! 나는,
첫째, 시험을 통과했고,
둘째, 시험을 다시 안 봐도 되고,
셋째, 화장실도 안 가고, 쉬지도 않고 4시간을 그렇게 집중했다.
사실 시험에 통과한 것보다, 어떻게 아무 생각 없이 4시간을 집중할 수 있었지에 스스로 감탄(?)했다.
시험장 건물을 나오니, 점심 식사를 하러 나온 직장인들이 길에 많이 있었지만,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내가 대견할 뿐이었다. 어떻게 4시간을 그렇게 집중할 수 있었지? 지금도 신기하다. 예전 같았으면 중간에 화장실도 가고, 모르는 문제는 그냥 넘어도 가고, 어떻게든 빨리 풀고, Pass만 하자고 빌었을 텐데 ㅎㅎ.
이 글을 쓰던 내내 마음속에 자랑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는데, 글을 써 내려가면서 깨달았다. 4시간 집중이 가능하다는 걸. 그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오늘 아침 시험 볼 때 집중의 느낌을 지금 다시 불러 본다. 그리고 다시 깨닫는다. 가능하다. 이제 앞으로 나는 4시간을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하하, 이게 웬일인가? 오늘도 나는 레벨 업한 기분이다.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