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크리스마스에 내게 사랑이가 왔다. 2개월이 갓 지난 말티푸 사랑이는 세상 깨발랄하고, 사람을 좋아했다. 팔뚝만한 크기의 사랑이가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고, 배변 실수를 하고, 입질을 그렇게도 해댔지만 그래도 내 눈에는 그렇게 사랑스러웠다.
사랑이가 객관적으로 이쁜 강아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처음 든 건 막내 동생네 집에 갔을 때였다. 동생네 식구들이 사랑이를 보고 한 말은 "어머, 정말 작다."였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맥주 몇 잔을 해서 알딸딸한데, 동생이 말했다.
"언니, 사랑이 이름을 바꿔, 메주로."
"뭔 말이야?"
"못 생겼잖아. 사진으로 봤을 때는 귀여웠는데 직접 보니 못 생겼네."
"아니 그게 이제 3개월도 안 된 강아지한테 할 소리야?"
둘 다 술기운을 빌려하고 아무 말이나 했고, 급기야 소리를 치기에 이르렀다.
"메주가 아니면 된장은 어때?"
"야, 솔직히 OO (막내네 첫째 아들)도 못 생겼거든. 생각해서 말 안 하고 있었는데, 너는 말도 못 하는 불쌍한 짐승한테 어쩜 그렇게 말하냐?"
그 자리에 계셨던 부모님께서 아무리 말리셔도 우린 계속 말싸움을 이어갔고, 한 시간이 지나서야 다툼을 멈췄다. 내가 자리를 박차고 내가 잘 방으로 갔기에.
그때부터였다. 사랑이가 객관적으로 이쁜 강아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고, 객관적으로 이쁘지 않다는 게 어떤 대우를 받는 일인지 생각해 보게 된 건.
내 눈에는 너무 이쁜 사랑이를 안고 걸어가면 말 거는 사람도 별로 없고, 말을 걸어도 "진짜 작네요."가 다였다. 그전에 동생네 강아지 하루를 키울 때와의 반응과 너무 달랐다. 그때는 멀리서부터 "끼약, 너무 귀엽다." 였는데...
사랑이가 사람들에게 받는 대우에 괜히 마음 아팠고, 사랑이가 안쓰러웠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도통 모르는 사랑이는 이름 따라가는지 사람을 그렇게 좋아했다. 집에 오신 커튼 기사님을 보자마자 배를 보이며 눕고, 에어컨 기사님들한테도 배를 보이며 눕고.
"사랑아, 넌 자존심도 없냐?"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태어난 걸 어쩌랴.
'그래, 객관적으로 이쁘지 못해 원하는 만큼 못 받는 사랑, 이 엄마가 넘치게 줄게'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 신기한 일이 있었다. 미용을 마치고 나온 사랑이가 너무너무 예쁜 것이다. 사람도 옷빨, 머리빨이 있듯 강아지의 미용빨도 대단했다. 혹시 내 눈에만 이쁜 건가?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처음 본 미모(?)였다. 신기해서 사랑이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고 또 보고 또 했다. 사랑이는 속으로 '저 여자가 왜 여태 보지 못한 눈으로 자꾸 나를 보는가?'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신기한 일이 또 벌어졌다. 사랑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니, 만나는 사람마다 '어머머, 너 정말 이쁘다.'를 연발하는 것이다. 그동안 사랑이는 산책을 나가면,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사람이 보이면 가던 길을 멈추고 가만히 앉아 기다렸었다. 혹시 자기를 이뻐해 줄까 해서. 하지만, 그동안 사랑이의 그 간절함은 번번이 무시됐었다. 가만히 앉아서 혹시 나를 예뻐해 줄까 하다 실망하고 다시 갈 길을 가는 사랑이를 보며 괜히 안쓰럽기도 했었는데. 근데 이게 무슨 일인가? 사랑이가 앉을 필요도 없이 만나는 사람마다 이쁘다와 귀엽다를 남발하는 게 아닌가? 사랑이가 정말 행복해 보였다.
고민이 생긴다. 평소 나는 이쁘게 미용을 하고 이쁜 옷을 입고 있는 강아지들을 보며, 저 주인들은 강아지를 위해 미용을 하는 건지, 주인 보기 좋으라고 하는 건지라며 주인들을 욕했었다. 사랑이가 편해야 한다며 털도 짧게 깎고, 사랑이가 아파하니까 빗질도 잘하지 않고, 주인 잘 못 만나 미용빨과 옷빨을 즐기지 못했던 사랑이가 사람들을 향한 외사랑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었다. '사랑아, 남들한테 못 받는 사랑, 엄마가 더 많이 줄게.'
이번 미용 사건을 겪으며 마음이 바뀐다. 옷도 이쁜 걸 입히고, 미용도 이쁘게 해야겠다고. 그래야 사랑받고 싶어 기다리다 헛걸음치는 일이 줄어들겠다 싶어서. 그런데 사랑아, 평소 주인인 나도 외모에 신경을 안 쓰는데, 너에 대한 이 결심이 얼마나 오래갈까 걱정이다. 그래, 일단 이쁜 옷들을 질러보자.
외모지상주의를 극도로 싫어했던 내가 사랑이 외모에 신경을 써야 되는 때가 오다니.
사랑아, 이 고슴도치 엄마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노력해 볼게.
엄마 눈엔 니가 세상에서 젤 이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