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2년 전 10월에 돌아가셨다. 루게릭병이었다.
그 사실은 그대로 남아 있다. 시간만 조용히 흘렀다.
엄마 옷을 정리하게 된 건 계획 때문은 아니었다. 동생 꿈에 엄마가 나와서 춥다고 했다. 비슷한 시기에 동생 시어머니 꿈에도 엄마가 나와서 춥다고 했다.
그럴 수 있겠다 생각했다. 엄마 겨울 코트들을 우리 세 자매가 모조리 나눠 입고 다니고 있으므로. 네 자매 중 막내를 제외하고 우리는 좋은 옷을 나눠 가졌다.
엄마는 물건을 고를 때 신중했다. 하나를 고르더라도 견고하고, 편리하고, 그리고 가능하면 예쁜 것으로. 그래서 엄마 옷은 대부분 상태가 좋았다.
엄마와 2년을 함께 살았던 내 집에는 엄마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 옷뿐 아니라 모자, 양산, 작은 소품들까지. 나는 그걸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엄마 옷을 입고,
엄마 모자를 쓰고,
엄마 양산을 들었다.
체중이 늘면서 예전엔 컸던 엄마 옷이 어느새 잘 맞았다.
외출할 때도,
집에 있을 때도
나는 엄마 옷을 입고 있었다.
입을 때마다
“우리 엄마, 참 물건 잘 골랐어”
하고 생각했다.
이번에 전부 정리했다. 상태가 아주 좋은 것들은 굿윌스토어에 기부했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의류수거함에 넣었다.
옷장이 비었다. 옷장 문을 열어놓고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당장 입을 옷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쇼핑을 했다.
생각보다 많이 사야 했다.
베개도 새로 샀다. 사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것도 엄마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건이 바뀌자 집 안의 공기가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미세하게.
지난 금요일, 수서역에서 오전 9시 출발 기차를 타고 고향인 대전에 내려갔다. 둘째 동생과 함께 엄마의 세례증서를 앞에 두고 기도를 했다. 슬픔이 먼저 나오지는 않았다. 대신 고맙다는 말이 나왔다.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집안을 잘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오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많이 감사합니다.
세례증서를 태웠다. 불꽃은 작았고, 종이는 빠르게 사라졌다.
근처 굿윌스토어에 가서 남은 옷을 기부했다. 물건이 열 개가 넘는다며 20퍼센트 할인 쿠폰을 받았다.
오후 5시 20분, 대전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니 저녁 8시였다. 피곤해서 바로 잠들었다.
꿈을 꿨다.
나는 결혼을 했다. 상대는 탤런트 지진희였다. 그는 자녀 셋을 데리고 우리 집에 왔다. 집 안에는 갑자기 물건이 많아졌고, 해야 할 일도 늘어났다. 삼시세끼를 준비해야 했고, 정리할 것들이 끝없이 생겼다.
꿈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아, 당분간 내 일은 못 하겠구나.'
싫지도 않았고, 두렵지도 않았다. 괜히 기분이 좋았다.
아침에 눈을 뜨고 잠시 천장을 바라봤다. 왜 그런 꿈을 꿨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했던 일들은 분명했다. 엄마의 옷을 모두 정리했고, 엄마의 물건들을 보냈고, 내 물건을 새로 들였고, 기차를 타고 다녀왔고, 잠을 잤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꿈은 생겨났을 것이다.
결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지진희가 왜 등장했는지, 아이들이 왜 셋이었는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삶이 갑자기 조금 많아졌는데도 그게 부담스럽지 않았다는 점.
그건 예전의 나와는 조금 다른 상태였다.
엄마 옷을 정리한 날, 나는 결혼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로 산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세상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걸음은 아주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