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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켈리황 Aug 02. 2021

어느 나라에서 은퇴할까?


고백하자면, 난 한국이 싫었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5천만이 산다는 게 그렇게 부대꼈다. 직장도 사람으로 꽉 테헤란로로 다녔기에 늘 답답했다.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그리고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은퇴 장소 찾기를 시작했다.


꿈은 이루어져 MBA를 위해 30살에 미국 미시간 앤아버로 갔다. 앤아버는 캠퍼스 타운 느낌으로, 작은 도시에 University of Michigan과 Michigan State University 두 대학이 있었다. 회사라고는 화이자, 바이오 스타트업 정도였다. 겨울엔 영하 20도 이하로 내려가는 추위가 있었지만, 여름은 세상 천국이었다. 한여름에도 많이 덥지 않아 여름 루틴 중 하나는 야외에서 수제 맥주를 마시는 것이었다. 하지만, 앤아버는 내게 딱 2년만 살기에 적당한 도시였다. 새로운 걸 좋아하는 내게 2년 후 더 이상 새로울 게 없으니. 앤아버는 은퇴 장소로 X.


졸업 후 회사가 있는 필라델피아로 이주했다. 처음 미국에 살기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흑인들로 꽉 찬 흑인 버스를 타고 게토 같은 지역을 지나 사무실로 갈 때는 '이러다 죽을 수도 있구나' 싶었다. 두려움을 숨기고 차분한 척 앉아있었다. 몇 달 후 백인 할머니도 타서, 그 할머니는 모르는 묘한 유대감을 나 혼자 느끼며 적응해갔다. 1년 후 회사가 있는 다운타운으로 이사한 후에는 회사까지 걸어서 10분 걸렸다. 역시 사는 곳이 중요하다 싶었다. 시내에 있으니 퇴근 후 저녁마다 놀러 다녔다. 종종 무료 공연이 열리는 음악 학교에 가서 실험적인 클래식을 들었고, 2-3만 원을 내고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연주도 자주 즐겼다. 음식값도 비싸지 않아 괜찮다는 레스토랑은 다 찾아다녔다. 이 도시에 평생 살 수 있겠다 싶었다. 단점은 곳곳에 게토가 있고, 총격 사건이 심심찮게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한인 슈퍼 주인이 총상으로 사망한 일도 있다.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도 위험한 구역을 마주치기 쉬워서 피해 다녀야 하는 곳을 인지하고 살아야 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여러 개의 식당이 생각나고 그립다. 이 도시에 평생 살 수 있을까? 뭐 100%는 아니지만, 필라델피아 은퇴 장소로 합격.


그러다 스위스에서 살게 됐다. 세상에나! 현실에 존재하는 천국이 있다니. 스위스가 딱 그랬다. 눈을 어디로 돌려도 천국 같은 풍경이었고, 공기는 또 왜 그리 좋은지. 안전하고, 사람들은 약속도 반드시 지키고. 여기서 은퇴를 해야겠다 싶었다. 평생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평생 살고 싶었다. 물론 안 좋은 것도 있었는데 첫째, 겨울이 길다. 긴 겨울 동안 해는 또 왜 그리 짧은 지. 해가 9시는 돼야 뜨고, 오후 4시면 이미 깜깜해졌다. 저녁이면 내가 사는 곳은 칠흑이 됐다. 겨울 내내 밤이 그렇게 길었다. 거기서 만난 한 한국분은 겨울만 되면 너무 우울해져서, 겨울마다 한국에 와서 사시기도 했다. 둘째, 스위스는 많이 심심하다. 한국처럼 24시간 할 거리가 있지 않다. 사람들은 말하는 '심심한 천국'이라는 말이 딱 맞다. 그래도, 스위스는 은퇴 장소로 합격, 합격, 또 합격!!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을 때 스위스로 돌아가고 싶었다. 깨끗한 공기와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나라가 그리웠다. 한국에서 5년을 살고 이번에는 싱가포르로 파견근무를 가게 됐다.

싱가포르도 나름 괜찮았다. 어딜 가도 깨끗하고, 회사에서 구해준 아파트도 한없이 쾌적했다. 안타깝게 싱가포르에는 4개월만 살게 됐다. 다시 미국으로 파견됐기 때문에. 4개월뿐이었지만 싱가포르는 은퇴 국에서 제외. 왕복 1시간이면 끝나는 섬나라가 갑갑하게 느껴졌고, 정부가 개인의 자유까지 컨트롤하는 느낌이었다. 싱가포르는 여전히 태형이 존재하고, 이런저런 규칙이 많다. 한 번은 인도인들이 모여 사는 구역에서 밤에 인도인들이 술 먹고 싸움을 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10시 이후 술 판매 금지를 시행했다. 정부가 세운 여러 법안의 테두리에서 완벽하게 움직이는 나라. 내겐 그랬다. 싱가포르는 은퇴 장소로 불합격!


다시 미국으로 왔을 때 이번엔 중부도, 동부도 아닌 멕시코와 가까운 텍사스 휴스턴으로 왔다. 텍사스 하면 카우보이가 생각나는 데 딱 그랬다. 왠지 촌스러운 것 같고, 날씨는 또 엄청 덥고, 여름도 길고. 여기서 은퇴할 수 있을까? 일단 더 살아봐야겠다 싶었다.


휴스턴에서 살며 정말 감사한 일 중 하나는 로라(가명)를 만난 일이다. 부모님은 레바논 출신이지만, 본인은 미국에서 태어난 로라는 미국인 남자 친구와 동거를 하고 있었다. 챠이니스 샤페이 한 마리를 키우면서. 로라는 주말마다 그렇게 일을 만들었다. 휴스턴에 새로 생긴 액티비티 활동을, 맛집을 찾아다녔고, 정 할 게 없으면 영화라도 봤다. 주중엔 일을 하느라, 주말에는 집에서 이틀 내내 누워있는 나를 주말마다, 저녁마다 불러냈다. 처음엔 귀찮기도 했지만, 일단 거절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나갔는데, 시간이 지나니 그게 루틴이 되기 시작했다.


로라와 다니다 보니, 로라가 원래 활동적인 것보다 일이 아닌 삶 또한 제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일로만 성공한 삶이 아닌 일과 가정 둘 다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일에 쏟는 에너지만큼, 일 외의 시간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거였다. 어느 날 로라에게 물어보니,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 삶이 또 보였다. 이제 예전처럼 일이 내 전부는 아니었지만, 이외의 삶 또한 원하는 대로 만들기 위한 노력은 별로 하지 않았다. 변하고 싶던 차 Events & Adventures라는 싱글클럽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 클럽은 가입을 위해 면접을 봐야 했고, 연회비가 있었다. 장점은 싱글 클럽 하면 생각하는 남녀 만남이 아니라는 거. 매월 15일 다음 달 일정이 나왔다. 독서모임, 캠핑, 하이킹, 그림 배우기, 사진 배우기, 콘서트, 종류가 다양했다. 그 클럽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이성과의 만남에 목매지 않는 사람들끼리 만나니 부담도 없었다. 그렇게 일 년을 보냈다.


그러다 깨달았다. 내가 그동안 헛된 걸 쫓고 있었다는 걸. 어디서 사는 지보다 어떻게 사는지가 더 중요했는데. 세상 어딘가에 반드시 완벽한 장소가 있을 거라는. 다른 데보다 좋은 곳이 있을 거라는 마음에 은퇴 장소를 계속 찾아다녔지만. 완벽한 장소는 어디에도 없었다. 내게 중요한 질문은 어디서가 아닌 어떻게 살까였던 거다. 


어디에서든 나한테 가장 좋은 삶을 만들면 되는 거였는데. 갑자기 한국에서 평생 살 수 있겠다 싶었다. 가족이 있고, 사람이 많은 곳은 피해 다녀도 되고, 즐길 것은 골라서 즐기고. 나한테 좋은 삶으로 만들면 되는 것이다.


휴스턴에서 퇴사를 하고 2년 전 한국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이번엔 언제까지 한국에 있을 거예요?"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한다. "쭉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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