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가해자였던 야만의 시대
"자, 가방 및 소지품 전부 책상 위에!!"
도덕 선생님의 지시에 여기저기서 나지막한 육두문자와 깊은 한숨이 뒤섞였다.
조용했던 교실 안이 별안간 도떼기시장처럼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유독 당혹감을 표출했던 건 내 짝꿍이었다.
그녀는 학교에서 '일진'으로 통하던 아이였다. '일진'이라고 하니 무슨 학폭 가해자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당시 우리 중학교에서는 '공부에는 특별히 취미가 없지만, 외적으로 예쁘거나 잘생긴 친구들'을 그렇게 불렀다. 조금 유치하지만 '인기남녀'였다.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었지만, 그들의 부모님이 속상해할 만한 행동을 일삼는 정도였달까? 이를테면 술과 담배가 그랬다.
나는 그녀의 예쁜 외모와 쿨한 태도가 부러웠고, 그녀는 공부를 잘하는 나를 부러워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의외의 조합'이라는 시선 하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런 그녀의 잔스포츠 가방 앞주머니에는 버젓이 담뱃갑과 라이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아씨, x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x 됐다"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손바닥 몇 대 맞고 넘어갈까? 정도의 생각을 하던 찰나였다. 그녀의 가방의 모든 지퍼를 열고 과격하게 뒤집던 선생의 눈에 문제의 그것들이 당혹스러운 자태를 드러냈다. 그 길로 그녀는 선생의 손에 머리채를 휘어 잡힌 채 칠판 앞으로 내던져졌다. 체격이 유난히 컸던 선생에게 또래보다 여리한 그녀는 그야말로 한 주먹거리였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선생은 그녀의 머리통과 뺨을 수차례 때리고, 다시 일어서려는 그녀의 복부에 발길질을 해서 다시 넘어뜨렸다.
나를 포함, 50명에 달하던 반 친구들은 하릴없이 그 순간을 지켜봐야 했다.
그것이 내가 살면서 처음 접했던 교사 폭력의 실체였다.
가엾은 내 짝꿍은 그 이후로 급격히 말 수가 줄었고, 내게 배워보겠다고 하던 공부도 그만뒀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나 역시도 교사 폭력의 또 다른 피해자가 되었다.
마흔이 넘은 지금 생각해도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폭력이었다.
고등학교 진학 후, 첫 등교일이었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고, 반장으로 선출되었고, 학급 대청소 이후에 바로 귀가하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기분이 째지던 날이었다. 그런데 그날이 내 인생 악몽으로 손꼽히는 날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반장, 소각장에서 수위 아저씨 좀 모셔올래요?"
새 담임선생님께 받은 첫 심부름이었다.
"네!!"
아직 학교 시설과 위치에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물어 물어 소각장까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마침 소각장 안에서는 뭔가가 불타고 있는 모양새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 앞에 폐종이 더미 위에 앉아서 멍하니 담배를 태우고 있는 아저씨가 보였다.
허름한 트레이닝 복 세트에 색 바랜 캡을 대충 머리에 올려둔 행색이었다.
"저, 안녕하세요. 혹시 수위아저씨세요?"
아저씨는 무심한 표정으로 나를 한번 스윽 보더니, 피던 담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따라오라는 손 제스처를 보였다.
'아, 수위 아저씨가 계신 곳으로 데려가주실 모양인가 보다!'
라는 순진한 생각이었다.
도착한 곳은 교직원 숙직실이었다.
아저씨는 신발을 벗고 들어오라고 했다.
16년 인생사로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고분고분 신발을 벗고 따뜻한 장판 위에 발이 닿자, 갑자기 '퍽!'하고 아저씨의 주먹이 내 얼굴에 날아와 꽂혔다. 나는 얼굴을 감싼 채 주저앉았다. 머리가 핑 돌아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런 뒤 아저씨는 한 마디도 남기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눈물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아저씨가 나간 뒤에야 비로소 내가 'x 같은 일'을 당했다는 것을 인지했다.
이유를 몰랐지만 이유가 있다 해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눈물범벅으로 담임선생님께 자초지종을 말했다.
어떻게든 나의 억울함을 풀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내가 당한 일보다 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답변이었다.
"아.. 그분이 체육선생님인데 사람들이 수위아저씨로 착각을 많이 해서 그러신 거야"
huh?? 그렇다면 담임선생도 가해자나 다름없었다.
그런 일이 이미 반복됐다면 내게 수위 아저씨를 모셔오라는 지시를 할 때 '주의를 줬어야 하는 게' 마땅했다. 그런데 마치 '예견된 일이라는 듯'이 등교 첫날 신입생이 겪은 폭력에 누구보다 침착하고, 태연했다.
이 일은 당시 16살이던 나 자신을 제외하고는 선생도, 부모도, 학교도 나를 둘러싼 그 누구에게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를 문제 삼지 않으므로 인해 그날의 기억은 내 평생 지울 수 없는 악몽이 되었다.
모두가 가해자였던 야만의 시대였다.
최근 '더 글로리'가 쏘아 올린'학교폭력'에 이어, '교사 폭력'에 대한 간증들도 이어지고 있다.
나만의 상처인 줄 알았는데 오히려 80-9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냈던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은 일이라는 데 지난 20여 년 간의 아물지 않았던 상처가 조금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짓들을 해놓고 어딘가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가해자들에게 '더 글로리'처럼 통쾌하게 복수를 할 수 있는 방법은 '도무지' 없다. (분하다...) 하지만 과거의 피해자들이 연대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한 목소리'를 낸다면 적어도 '잠재적 가해자'들의 행동에 큰 제동을 거는 효과는 있지 않을까?
#교사폭력 metoo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