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에게 이 두 가지는 일생에서 가장 기나긴 시간을 차지하는 부분이기에 그만큼 얘깃거리가 많다. 나 역시도 다른 브런치 글을 기웃기웃하며 꽤 신중을 기해 '읽을거리'를 선별하려고 하는 편이지만 결국 홀린 듯이 클릭하는 대개의 글이 이 두 가지 영역을 넘지 못한다는 데 한 번씩 뜨끔할 때가 있다.
'좀, 다양하게 읽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싶으면서도 지금 당장 폭풍우 치는 머릿속을 잠재울 수 있는 가장 '점잖은' 방법이 나와 비슷한 경험 또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타인의 이야기를 보며 '공감'하는 것임을 알기에 멈출 수 없다.
새로운 조직에 입성한 직후에는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간은 '주인공'인 나를 둘러싼 주변 인물을 오감으로 느끼는 시간이 지속된다. 그리고 점차 팀의 진정한 '빌런'의 실체와 마주하게 되는데 그 순간은 늘 예상치 못한 순간에 허를 찌르듯이 일어난다. 영화와 같은 극에서야 빠른 전개와 시청자의 이해를 위해 '나쁜 놈'은 등장 씬부터 남다른 아우라를 자랑하기 마련이다. 어린아이가 본다면 단번에 울음을 터뜨릴 수 있을 만큼 옷차림에서부터 눈빛에 이르기까지 그 인물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요소가 빈틈없이 서늘하게 묘사되기 때문이다. 대놓고 '나는 악역입니다'라고 명찰을 달고 등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직장생활 즉, 현실에서 만나는 적은 그렇게 단순하고 쉽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차라리 그렇다면 애당초 피하면 되니까 좋을 법도 하겠다) 그들은 처음 얼마간은 우리와 다를 바 없이 말하고 행동하며 우리의 동태를 살핀다. 같이 밥 먹고, 차를 마시며 평범한 일상을 공유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행동이 결국 '눈속임'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또 다른 점이 있다면 극에서는 악인의 최후가 늘 속 시원하게 그려지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유사한 소재로 넘쳐나는 브런치의 글을 봐도 착한 사람이 나쁜 경험을 겪고 퇴사를 하거나, 마음의 병을 얻었거나, 특정 사건을 계기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 등의 결론은 있지만, 그 모든 원인 제공자가 어떻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씁쓸하게도 찾기 어렵다.
그렇게 그들은 또 어딘가에서 또 다른 누군가를 괴롭히며 살고 있을 것이 뻔하다.
내가 많이 부족하고,,, 미안해요... 내 진심은 그게 아니었는데..(흑흑)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악어의 눈물이었다.
사실 그녀의 사과가 내게 의미하는 바는 전혀 없었다.
그녀의 눈물이 거짓인 것도, 떨리는 음성에 한 스푼의 진심도 섞여있지 않다는 것쯤은 지난 1년 여간 직접겪어온 모습을 통해서도 간파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내가 고집스럽게 그녀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아야겠노라 결심했던 이유는 한 가지였다.
관행처럼 계속되어오던 그녀의 과오를 최소한 한 번쯤은 '자각'시켜주고 싶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그녀의 잘못을 문제 삼는 사람이 없다 보니, 그녀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던 악성 소문은 역설적이게도 그녀 자신만 까맣게 모르고 있는 것이었다. (모르는 척했던 걸까?)
그녀의 무뎌진 양심이 초래한 비상식적인 언행은 나비효과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수시로 괴롭히며 쑥대밭을 만들었지만, 놀랍게도 그녀 자신만큼은 한가한 오후 홀로 티타임을 즐기는 사람처럼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유리막이 외부세계로부터 그녀 자신을 완벽하게 보호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 유리막을 깨고 싶었다.
처음에는 우회적이고 완곡한 방식으로 그녀가 저지른 말도 안 되는 실수-일이 너무 커질 수 있어 상세하게 기술하지 못하는 점은 양해 바란다- 에 대해 사과를 촉구하는 시도를 했지만 예상대로 그녀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이런 방식은 과거에도 이미 수 차례 겪었을 것이 뻔하므로 일관된 무반응이 가장 효과적인 대응이라고 확신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점차 반복적으로 동일한 메시지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전달되자 그녀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내가 일부러 엿 먹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왜 사과를 해요!"
말 그대로 '꿈틀'이었다.
주말 한번 보내고 나면 별일 아닌 듯 넘어가려 했던 그녀의 일상에 스크래치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랬던 그녀가 어떻게 닭똥 같은 눈물까지 흘려가며 사과를 할 수 있었느냐는.. 스토리가 참 복잡하고 길다. 조마조마하며 설마설마했던 방식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바로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두 가지가 의도치 않게 제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소문'이었다.
숨 쉬듯이 타인에 대한 루머를 만들어 눈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이야기를 옮기던 그녀가 평소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은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이 자신에 대한 험담을 하지 않는지'였다. 실소가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지만 사실이다. 실제로 옆자리 동료가 점심 약속으로 자리를 비우기만 해도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혹시 상대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지"를 꼬치꼬치 캐물을 정도니 말해 뭐하겠는가.
다른 하나는 '위계'였다.
회사 생활에서 그녀의 세계는 그녀보다 하급자와 상급자,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었다.
전자는 그녀가 이야기를 날조하고, 소문을 내며 이간질하고, 업무를 전가하고, 비인격적인 대우를 해도 되는 무소불위의 세계이지만 후자는 정확히 반대였다. 그녀는 누구보다 간절하게 진급을 원하기 때문에 그런 권한을 가지고 있는 상급자의 눈에는 어떻게든 들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부당하게 겪은 일을 알고 지내던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공들여 세심하게 공유했다. 유의점은 그 과정에서 자칫 일방적인 '험담'처럼 비춰질 수 있는 비난조는 배제해야 했기에 이미 그녀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커질대로 커진 상태에서 담백하게 사실만을 전달하는 데에는 큰 절제력을 요했다.
다행히도 내 사연을 들은 이 중에는 사회 정의 구현에 거침이 없는 사람도 있었고, 조직 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게 그녀에 관한 이야기가 일파만파 '소문'이 났으며, 결국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최상위 상급자의 귀에까지도 들어가게 되었다. 그녀는 상급자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고 사과를 종용당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녀가 내 앞에서 앉게 된 연유였다.
그녀는 자신의 '진심'을 알아달라며 내 손을 잡았다.
세상에 어떤 '진심'이 그토록 지독하게 왜곡될 수 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는 그녀가 아니기에 그녀가 말하는 '진심'이 뭐였는지는 죽을 때까지 모를 일이다.
아무튼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사과에 진심 어린 피드백을 주기란 어렵지만 나 역시도 가면을 쓸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녀의 탁한 진심을 향해 말했다.
사람이 실수는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걸 자각한 순간 잘못을 인정하고 빠르게 사과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해요. 조금만 더 늦었으면 영영 돌이킬 수 없을 뻔했어요. 앞으로 진짜 그렇게 살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