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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그레이 Jan 24. 2021

일본 회사가 외국계가 아닌 이유

일본 회사는 일본 회사

형형색색의 장난감으로 가득 찬 회의실에서는 관계자들이 게임과 벌칙을 통해 주요 안건을 하하호호 결정한다. 업무 확인차 담당 직원을 찾는 대표이사에게 아직 출근 전인 직원의 부재를 알리는 부하 직원의 표정에도 긴장감이라고는 엿보이지 않는다. 늦은 오후에는 전 직원이 사무실 로비에 모여 앉아 그 달의 우수 사원으로 선정된 동료를 향해 박수와 축하를 보내는 것으로 하루 일과가 정리된다. 정말 아름답다.


최근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 방송된 '레고코리아'의 근무 현장이다.


'수평적인 조직 문화', '자율 출퇴근제', '공정한 평가와 기회'로 대변되는 외국계 기업은 취준생에게는 꿈의 직장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내가 소속되어있는 대학에서 최근 진행한 '외국계 기업 입사'에 대한 설문에서도 자그마치 10명 중 9명의 재학생이 '외국계 기업에 입사를 희망한다'라고 응답했을 정도다.      




'나는 아마존에서 미래를 다녔다'를 쓴 저자는 아마존에서 자그마치 12년을 근무한 한국인 엔지니어다.  

'12년'이라는 기간이 한국에서는 여느 평범한 과장급 연차에 불과하지만 애플, 페이스북 등과 같은 유수의 글로벌 IT기업의 평균 근속연수가 1.5년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는 '기록'이 된다.

(역시.. 한국인의 근성..)  

또한, 국내에서 연속 11년째 구직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외국계 기업 1순위로 뽑힌 구글(Google)의 경우  직원의 50% 가까이가 구글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 한 장도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처럼 외국계 기업의 성원이 된다는 것은 한국 기업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가치들을 단순히 풀패키지로 누린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른 말로 한국 기업에서는 보장하는 다른 가치들 - 선후배 문화, 고용 안정, 승진제도 등- 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상하반기 '공채'를 통해 대규모 인재 채용을 하는 한국과 달리 선진국 대부분에서는 일찌감치 '수시 채용 문화'가 보편화되어 있다. (물론 한국도 최근 공채 채용 비중을 줄이고 수시채용을 확산하고 있는 추세다)  

필요에 따라 사람을 뽑다 보니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가 철저하게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상호 간 'benefit'만 명확하다면 앞서 언급한 매력적인 혜택들을 덤으로 누리며 장기적인 파트너십 유지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판단되면 입사 후 이제 갓 3개월이 지나 스스로는 '적응기'라고 위안 삼고 있는 순간에조차 'I am sorry to inform you that as of today you will be no longer employed  with us'로  시작하는 정중한 '해고 통지 이메일'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 외국계 기업에서 개인은 담당 직무에 대해 완벽한 '1인 기업가'로 빙의해야만 한다. 입사 후 책상을 배정받고 멀뚱히 모니터만 보며 기다린다고 해서 누군가 친절하게 다가와 할 일을 정리해주고, 방법까지 알려주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를 책임지지 않는' 이러한 문화적 특성을 공감하지 못하면 제 아무리 뛰어난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한들 보여줄 무대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럼 지금부터는 외국계 기업 중에서 '일본계 기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즉 일본에 본사를 둔 기업으로 일본도 엄연히 한국 입장에서는 '외국'이기 때문에 외국계 회사로 불리는 것이 맞을 테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산업자원 통상부에서 규정한 외투기업 관리 차원의 구분일 뿐, 결코 앞서 언급한 외국계 기업 특유의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아니다.


외국계 기업에 대한 선호는 다른 말로 한국 기업 문화에 대한 대대손손 구전된 깊은 불신에서 비롯된다.

상명하복, 잦은 야근과 주말 근무, 연공서열과 같은 숨 막히는 단어들을 굳이 나열하지 않더라도 주말 내내 소파에 젖은 빨래처럼 널려있거나, 퇴근 후 갑자기 걸려오는 회사 전화를 받고 다시 컴퓨터를 켜거나 혹은 예고 없는 회식에서 고주망태가 돼서 귀가한 가족이나 지인을 최소 여러 차례 이상 간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런 장면들을 보며 누구나 한 번쯤은 '한국 회사는 진짜 아닌 것 같아'라는 생각을 자동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일본 기업은 우리가 피하고자 했던 그 모든 것들의 사실상 '원산지'나 다름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도 입사할 때는 남보기 그럴듯한 '외국계 기업'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미주, 유럽권 내의 외국계 기업 문화를 직업 가치관으로 삼고 있다면 이제부터 열거하는 내가 직접 겪은 일본 기업 문화의 특성을 참고하여 희망기업 리스트에 일본 기업의 포함 여부를 다시 고민해봐야 한다.  




1. 연공서열

근무기간에 비례해 급여를 인상하는 사회적인 관행을 시스템화 시킨 비합리적인 문화는 연장자를 존중하는 일본문화에서 기인했다. 근무연한이 올라감에 따라 업무 능력과 조직에서의 기여도도 자연히 증가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됐다.  따라서 아무리 능력이 출중하더라도 기업에서 정하는 '적정 근무 연한'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승진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잘난 맛'에 사는 사람에게는 지옥행 열차를 타는 것과 다름없다.


2. 집단주의 문화

일본 조직에서 개인은 공동의 비전과 목표에 필요한 구성품의 성격이 강하다.  그만큼 기업에서 생산되는 모든 결과물은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회의'를 통해서 결정되기 때문에 업무적으로 개인이 주도적인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흔히, 미국은 '발명(invention)'에 능하고, 일본은 그 발명품을 '개혁(innovation)'하는 것에 능하다고 한다. 다른 말로 발명이 특정 개인의 역량에 기반한 결과라면, 개혁은 개인 간의 협업에 기반한 집단주의 문화의 산물인 것이다.


3. 네트워크 자본주의

일본 기업은 한 번 거래를 튼 이상은 웬만하면 장기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한다. 반면에 '첫 거래'를 '성사'시키기 까지는 상상 이상의 엄청난 수고로움이 요구된다. 그만큼 협력사를 비롯한 신규 직원을 채용함에 있어서도 그물망 같은 평가기준을 가지고 엄격하게 심사하기 때문에 그런 과정을 통해 맺은 관계를 쉽게 저버리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글로벌본부 근무 당시,  일본 최대 IT기업과의 파트너십을 포트폴리오에 추가하고자 하는 수많은 기업으로부터 협업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파트너십 결정을 위한 일본 본사 측의 끝도 없는 요청사항과 과도한 자료에 혀를 내두르고 중도 포기를 한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4. 한국보다 낮은 연봉

위의 네트워크 자본주의에서 기인하는 조직문화는 모두가 '공생관계'이다. 따라서 공동의 비전을 만들어감에 있어 누군가만 일방적인 이익을 취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한국은 제조사 마진이 가장 적고, 유통사 마진이 매우 높은 (이해하기 어려운)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일본 기업은 제조업, 유통업 모두 마진율이 매우 낮다. 그렇다 보니 직원들의 급여 수준이 한국과 일본의 물가 차이만큼 높을 것이라고 기대했다가 실망하기 쉽다.  (실제로 대기업 기준 한국의 대졸 초임이 일본보다 31%나 높다. "韓 대기업 초봉, 日의 1.3배… 중소기업은 엇비슷" (news1.kr))  과거 한 때 일본 청년의 20%가  '후리타(フリーター )'일 정도로 정식으로 입사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많았던 이유도 정규직으로 입사한다고 해서 경제적인 여건이 월등히 나아지지 않음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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