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한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옆자리의 한 여자 동료가 근무 중에 꽤 오랜 시간 자리를 비웠다. 업무상 해당 직원을 급하게 찾던 팀장님에게 화장실에 갔나 보다고 대충 둘러댄지도 30분을 경과한 시점이었다. 여러차례 보낸 독촉 메세지도 무용했다. 덩달아 나까지 긴장하고 있던 중에 드디어 해당 직원이 나타났다. 그녀는 거의 반 포복에 가까운 자세로 숨을 헐떡거리며오른손에는 엄청난 부피의 비닐 봉지를 들고있었다.
그것은 주말 대형마트에서나 볼법한 장거리가 잔뜩 담긴 종량제 봉투였다. 심지어 대파 한 단까지도 어쩌지 못하고 삐죽 나와있었다. "저희 집이 너무 멀다 보니 퇴근길에 장 볼 곳이 마땅치 않아서요.."라며 나름의 불가피한 사정을 어필하는 그녀의 한 마디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그 이후에도 사회생활 중에 스쳤던 일부 기혼 여성들은 "시부모님이 갑자기 올라오셔서요..", "남편이 출장을 가서요..", "아이 픽업을 해야 해서요"와 같은 저마다의 불가피한 사정으로 회사 내대외의 공식적인 행사는 물론 중요한 업무 미팅에조차 빈번하게 불참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아주 가끔이지만 그러한 특별한(?) 사정이 없이 경우는 예외없이 미혼이거나 아니면 딩크족이었다.
미혼이었던 나는 의아했다. 누구나 하는 '결혼'인데 왜 유독 여성에게만 저토록 사회생활을 가로막는 엄청난 '족쇄'가 되는 것일까 하고. 그것은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것일까 하고.
"결혼하면 너도 별 수 없을 거야"라는 확신에 찬 장담을 듣고 결혼한지도 어느덧 4년 차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직까지 그 예언이 증명되지 않았다면 내가 한 것은 과거 숱하게 보아왔던 그들이 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결혼인 걸까?
우리는 남편 있으니까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잖아요
최근업무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나를 향해 한 기혼 여성이 위로랍시고 던진 말이었다. 의미인즉슨, 우리와 같은 남편이 있는 여성 사회인은 (경제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있기 때문에 사회생활에 "덜" 절실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반사적으로 고개가 기울고 어금니가 깨물어지는 말이었다. 그 한마디에서 상대가 인식하고 있는 일과 사회생활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불쾌했던 것은 본인의 그런 일방적인 생각을 "우리 같은 기혼여성"이라는 말로 지금 이 순간에도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여성들까지도 도매급으로 일반화시켰다는 데에 있다. 단지,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말이다.
"여자들은 왜 저래", "유부녀들 다 그렇지 뭐"라는 불편한 평가의 현장에서 나 같은 프로 불편러가 선뜻 반박 할 수 없었던 이유도 같은 여자로서도 납득할 수 없는 그런 사례들을 - 즉, 사회생활에 불성실할 수 있는 이유를 '결혼'에서 찾는 사례들- 너무 많이 목격해 온 탓이다.
그러한 여성 사회인에 대한 조직 내부의 부정적인 시선을 자주 체감한 이후로는(아니 사실은 그 훨씬 전부터) 사회생활 중 내 입으로 나의 사생활 특히 결혼 생활과 관련한 일체의 내용을 언급하지 않는데 스스로 굳은 다짐을 할 수 있었다.
내가 결혼을 했건 안 했건, 설령 아이가 있건 없건 그건 회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만들고 싶었다.그래야 회사는 나를 여자도 남자도, 유부녀도 유부남도 아닌 '구성원'이라는 동등한 시선으로 봐주리라는 데에 기대를 걸었다. 할 일을 다했고, 대내외 공식 모임에 빠지지 않으며 그 어떤 핑계를 댈 일을 만들지 않아 왔음에도 정작 그러한 나의 숨은 노력을 '너나 나나 같은 유부녀'라는 프레임으로 한 순간에 초 치는 상대가 다름 아닌 같은 여자라는데에 더욱 씁쓸함이 컸다.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하나의 가정을 꾸리는 일, 일생의 가장 특별하고 소중한 이벤트인 결혼이 왜 어떤 여성들에게는 사회생활을 편안하게(?)할 수 있는 수단이자 이유가 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고 보니 미혼시절 소개팅을 한 이후 가장 첫 번째로 받는 질문이 있었다. "(상대는) 뭐 하는 사람이야?" 그 누구도 상대에게 얼마나 호감을 느끼고 있는지, 어떤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지, 서로 느낌은 통했는지를 묻지 않았다. 대부분은 (이제 갓 첫 만남을 했을뿐인데도) 결혼식장까지 이미 들어간 후를 계산하기에 바빴다. 스스로의 형편과 무관하게 오로지 상대가 자신을 편안하게 살게 해 줄 만큼의 경제적인 기반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데에 집중했다. 그런 모습이 같은 여자이지만 형편없다고 느꼈다.
나의 그러한 감정을 증폭시켜주는 사례들을 공교롭게도 나의 오래된 이성 친구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그들의 여자 친구들이 선사(?)한 '충격적인' 경험들 때문이다.
그녀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며, 주말마다 봉사활동을 하며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위해 손 내미는 것을 마다하지 않던 따뜻한 사람이라고 했다. 친구 A는 그녀와 5년 간 크게 다투는 일 한번 없이 만나오던 국내 모 대기업에 재직 중인 그녀의 남자 친구였다. 교제한 지 6년 차에 접어들 즈음 A는 일생에 그런 여자를 다시는 만나지 못할 거라는 확신으로 그녀에게 결혼에 대한 진심을 전달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둘은 헤어졌다. 나는 도무지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다. 친구에게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였다. 이별 사유는 너무 명료해서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같은 얼얼함을 주는 것이었다.
그녀가 말하길, "30평형 대의 강남의 모 아파트가 아니면 결혼을 할 수 없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 천사같이(?) 착하던 그녀는 브랜드 아파트를 준비해올 미래의 남자를 향해 떠나갔다.
또한 과거의 한 여자 친구는 남자의 부동산 자산과 프러포즈와 함께 선물 받았던 고가의 외제차에 눈이 멀어 연애 3개월 만에 성급하게 결혼을 저질러(?) 버리고 말았고, 결혼 후 남자의 재산 대부분이 은행빚이었다는 사실과 심지어 선물했던 외제차의 할부도 함께 갚아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후회를 했던 경우도 있었다.
결혼은 개인의 편안한 삶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그래서 나의 결혼관은 철저하게 '평등함'에 그 무게중심이 있다. 결혼으로 삶의 짐을 덜어버리는 것이 아닌 '함께' 나누는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사랑'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어야 하기에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경제활동에 기반한 가계 유지가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부모님 집에 살아도 생활비를 내야 하지 않던가) 어디까지나 같이 노력해야 한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한쪽이 잠시 경제활동을 쉬는 경우에도 그 주체가 반드시 여성일 필요는 없다.
필요하다면 남성도 얼마든지 휴식기를 가질 수 있어야 하며 남성이 여성보다 수입규모가 더 적은 일도 있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결혼 생활이 남성의 무한 책임으로만 점철된 고된 여정이 아닌 피곤할 때 쉬어갈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안식처로서의 본연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의 나의 결혼생활이 매우 성공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와 남편은 철저하게 각자의 주체적인 인생을 한 공간에서 살고 있다. 나는 내 일을 하고, 남편은 남편의 일을 한다. 필요하다면 서로에게 조언을 구할 뿐 어느 한쪽에게 일방적인 의지를 하거나 서로의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탓하는 법도 없다. 그러다 보니 각자가 자기 분야에 집중함으로 인해 더 성장할 수 있고, 그 결과가 쌓여 공동의 결혼생활 전체의 질을 향상해나가고 있다.
따라서 당신이 만약 사회생활을 하는 이유가 그저 남편의 경제적인 부담을 일부 덜어주기 위한 미봉책일 뿐이라면 미안하지만 그 사실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일은 삼가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런 불성실함의 이유로 결혼과 관련한 그 어떤 핑계도 대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 태도는 결혼한 여성 전체에 대한 사회 전체의 부정적인 인상만을 낙인할 뿐이며, 당신과는 전혀 다른 마인드로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커리어를 쌓고 있는 기혼 여성들에게도 막심한 피해를 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