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일은 자격있는 사람이 해야죠
그리고 그것은 곧 입사 후 받게 될 처우는 물론 사회적인 대우와도 직결된다.
대기업, 공기업 취업이 하늘의 별따기라고 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누구도 대기업, 공기업에 아무나 또는 쉽게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복잡하고 세분화된 채용 절차와 최소 몇십 대에서 몇 백대 1에 달하는 높은 경쟁률은
주변에 아는 누군가가 그곳들 중 한 곳에 입사했다는 소식에 자동적으로 '오~'라는 감탄사를 내뱉게 만든다.
'좋은 회사에 들어갔으니 돈 많이 벌겠네'
'좋은 회사에 들어갔으니 안정적으로 근무하겠네'
'좋은 회사에 들어갔으니 결혼도 잘하겠네'
와 같은 부러움 가득한 추측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만큼 어렵고 중요한 일을 한다는 이미지를 생성시킨다.
'학력 무관' '경력무관'
채용 공고에 그 어떤 지원 자격을 두지 않는 위의 두 표현은 해당 직무의 가치를 폄하할 뿐 아니라,
해당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조금씩 전파시킨다.
내가 학생들에게도 '무조건 걸러야 하는 채용 공고' 1순위로 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옛말이 무색할 정도로 채용공고를 보면
명확한 귀함과 명확한 천함이 존재하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직업상담' 분야이다.
구인ㆍ구직ㆍ취업알선상담ㆍ진학상담ㆍ직업적응상담 등 노동법규 관련상담 노동시장ㆍ직 업세계 등과 관련된 직업정보의 수집, 분석하여 상담자에게 이들 정보를 제공 직업적성 검사, 흥미검사 실시 및 해석을 수행하는 업무. (직업상담사 수행직무 개요 - 출처 : 큐넷)
직업상담사에 대해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정의하는 수행직무의 개요는 위와 같다.
본 자격은 장기 경기 불황으로 인한 고용침체와 취업난 증가로 개개인의 직업적 발전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직업 상담 서비스 제공의 필요성'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응시 자격 제한이 없는 2급의 경우, 2000년 시행 이래로 매년 1만 4천 명이 응시하고,
2급 보유 또는 관련 경력 3년 이상이 응시할 수 있는 1급의 경우에는 매년 평균 260명이 응시하여,
약 30%만이 최종 합격하는 시험으로 발전해 왔다.
내가 방점을 찍고 싶은 대목은 '전문성'에 있다.
'전문'은 '어떤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즉, 직업상담 분야의 종사자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관련 채용공고는 그와 정반대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학력무관' '경력무관'
공공, 민간 할 것 없이 직업상담 분야의 채용공고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표현이다.
여기에는 이 일에 대한 전문성은커녕 최소한의 존중도 내포하고 있지 않다.
자칭 '청년 대상 취업 전문 컨설턴트'를 지향하는 나로서는 힘 빠지는 공고가 아닐 수 없다.
전문성 향상을 위한 다방면에 걸친 나의 노력과 보유 역량도 그야말로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이다.
결국 이 분야에서 전문성을 증명하는 방법은 스스로 살 길을 개척하는 것뿐이다.
나도 그래서 프리의 길로 들어섰다.
그럼에도 이러한 '허술하기 짝이 없는 공고'가 나를 분노하게 만드는 이유는 따로 있다.
최종적으로 피해를 입는 당사자는 그런 공고를 보고 취업에 성공한 상담사도 아닌 절박한 심정으로
'취업 상담'에 참여할 내담자들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취업 상담을 해주는 상대가 정작 한 번도 취업한 경력이 없다면?'
'대학생활을 조언하는 상대가 정작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면?'
'지원자격이 없는 일'은 제공받는 서비스의 질도 결코 담보할 수 없다.
이런 사실을 내담자들만 까맣게 모를 뿐이다.
결국 '열악한 처우'가 이 모든 문제의 시발점이다.
비정규직에 사회 초년생 수준의 낮은 연봉, 경력과 상관없이 동일한 대우를 해주는 포지션에
무턱대고 '지원 자격 기준'을 높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 누가 지원을 하겠는가..)
그럼에도 정부 기관은 고용 시장에 끊임없는 예산을 투입하고 '공공 직업 상담 서비스'를 늘릴 것을 주문한다. 돈이 풀리는 곳에 일자리가 넘쳐나는 것은 당연하다. 공공, 민간 할 것 없이 직업상담사를 새로 뽑기 바쁘지만,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처우 면에서는 동일한 열악함을 내세운다. 단 한 곳도 예외가 없다.
왜그럴까?
애초에 정부예산 사용에 대한 지원 기준이 그렇게 규정되어 있는 탓이다.
정부 지원금 사용 매뉴얼 안에는 채용 조건과 임금 수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있는데
그 수준이 작금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결국 직업상담사에 대한 사회적 편견 확산에 정부가 주도적으로 기여(?)한 바가 상당히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직업상담사들은 단 몇 십만 원 차이에도 일자리를 옮긴다.
어차피 오늘 그만둬도 내일부터 일할 수 있는 곳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직업 상담'이라는 직무에 대해 로열티는 고사하고 애시당초 전문성을 키울 수 없는 시스템이다 보니
'학력 무관, 경력 무관'의 악순환만 무한정 반복될 뿐이다.
상술했듯 직업상담은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직업적 발전과 삶의 질 향상'에 영향을 미치는 일'
이라고, 이 직업을 처음 만든 정부기관에서 자체 정의했다.
그렇게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에 그만한 대우를 해주지 않는 모순은 20년이 넘게 반복되고 있다.
'공익'을 앞세워 희생만을 강요하고, 정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는 시스템은 하루 빨리 개선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내담자들이 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하지만, 아무나 해도 되는 일' 따위는 없어야 한다.
중요한 일은 그만큼의 충분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