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의금 지로용지가 도착했습니다

축의금 안주고 안받기 챌린지

by 미그레이
'10월 24일 00팀 000 씨가 결혼합니다.'



공식적인 '축의금 지로용지'가 또 도착했다.

다른 팀 사람이면 가뿐히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이번 건은 같은 팀 동료라 '애매하다'.

애매하다고 표현한 건 같은 팀에서 함께 일한 지는 1년 여가 되지만 그렇다고 결혼식에 갈 만큼의 사적인 친분은 1도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축의금을 내야 한다고??????


매번 이런 상황과 맞닥뜨릴 때면 세 가지 내키지 않는 선택지 안에서 끝도 없는 내적 갈등이 시작된다.


선택지 1. 결혼식에 가고 축의금도 낸다

(동료애란 이런 건가??)

선택지 2. 결혼식에는 안 가고 축의금만 낸다

(그래도 동료니까?)

선택지 3. 결혼식에도 안 가고 축의금도 안 낸다

(안 친하니까!!)


마음은 고민 없이 3번이다.

나 또한 과거에는 1,2번의 선택지를 널뛰기를 하며 하며 자그마치 소형차 한 대 값을 -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 회사 동료들의 경조사비로 '자동납부'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책상 위에 놓인 정갈하게 포장된 '답례떡' 한 상자 를 보며 '할 일은 했다'라는 위안을 삼는 것이 한 시즌당

최소 십 수번은 반복되었다.


안 친한데 축의금을 꼭 내야 해?

하지만 전혀 친분이 없는 사이에 단지 같은 회사에 근무한다는 이유만으로 축의금을 요구 받는 사내 문화는

마치 벌금을 '부과' 당하는 것만 같아서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직원수가 최소 수 백명 이상인 조직이라면 아마 평생을 근무해도 모르고 지낼 사람이 태반일게 뻔한 상황에서 결혼이라는 개인의 아주 사적인(private) 이벤트가 굳이 전사적으로 공지되어야 할 일인가?에 대한 의구심은 지우기 어렵다.






아주 오래전 일본인 친구의 현지 결혼식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 때 가장 인상 깊었던 두 가지가 하객을 대하는 태도와 축의금 전달 방식이었다.


무엇보다 하객은 가족, 친인척을 포함한 예비부부와 각별히 친한 관계만을 엄선(?)한다. 그리고 명단에 포함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일히 결혼식 참석여부를 사전에 꼼꼼히 확인한 후 참석이 확정되면 식장에서는 여느 호텔 결혼식에나 볼법한 내 이름 석자가 세련되게 인쇄된 테이블 명찰이 있는 곳으로 안내된다. 그 순간 왠지모를 으쓱함과 함께 나는 이미 결혼식의 방관자가 아닌 완벽한 참석자로서

의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결혼식 하객 테이블 명찰 예시 (출처 : 야후재팬)


축의금 준비는 결혼식 하루 전에 한다. 우선 신권을 준비한다. (참고로 일본은 최소 30만 원부터 시작이다) 그리고 준비된 속봉투에 지폐의 전면이 봉투의 전면을 향하도록 지폐의 방향을 맞춰 넣는다. 그런 후 준비된 화려한 색감의 오색 겉봉투에 갓난아이를 감싸듯이 다시 한번 정성스럽게 포장한다. (지폐를 봉투에만 넣어 주는 것은 매우 실례라고 생각한다.) 그 수고스러운 과정에서 화폐라는 자본주의 산물이 이내 영혼이 듬뿍 담긴 결혼 선물로 완벽하게 재탄생하는듯해서 나도 모르게 경건해 졌다.


확실한 것은 우리처럼 결혼식 당일이 돼서야 부랴부랴 인출한 현금을 비치된 봉투에 넣고, 수성 사인펜으로 갈기듯 이름 석자를 적어 데스크에 '접수'하던 풍경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일본의 축의금 포장 순서 및 봉투 예시 (출처: 야후 재팬)


이러니 때마다 꼬박꼬박 배달되어 오는 이메일 청첩장이 공과금 지로용지처럼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청첩창을 주는 쪽도 '어쩔 수 없기'는 매한가지일 테지만..


축의금 얼마 할 거야??


나와 비슷한 입장에 처한 동료들은 암암리 축의금 적정 가격 매기기에 바쁘다. 나는 그런 복잡한 고민으로 더 이상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기에 친분 정도에 따른 자체적인 '축의금 테이블'을 만들어 둔 바가 있다.

1도 안 친하면 3만 원, 밥 한 끼라도 따로 했으면 5만 원, 밥도 먹고 술도 마셨다면 10만 원이다.

이 기준대로라면 이번 건은 '3만 원'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어떤 호감도 없는 동료의 경사 비용 일부를 부담해야 하는 모양새가 도무지 내키지 않는다. 차라리 10만 원이 든 지갑을 잃어버리는 편이 마음이 훨씬 편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돈봉투 절대 사절입니다.

그래서 나는, 과거 나의 결혼식에서 회사 동료 누구로부터도 축의금을 받지 않는 데에 성공한 적이 있다. 이런 시도가 가능했던 가장 큰 배경에는 내가 조직에 합류한 지 몇 개월도 되지 않은 신입 구성원이라는 데에 있었다. 모두의 편의를 위해 축의금은 물론 그 어떤 선물도 받지 않을 계획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하자 설익은 관계에 대뜸 청첩장을 받게 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지는 않을까를 내심 우려하던 동료들은 쾌재를 불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떻게 같은 팀인데 아무것도 안 해요??"
"걱정 마세요. 저도 앞으로 안 할 생각이에요~"


그렇게 용기를 발휘해 '조금 특이한(?) 사람'으로 인식이 되고 가장 좋은 점은 그 후부터는 진심이 동하는 대상에 한해 '선택적' 그리고 '자발적'인 경조사 챙기기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런 가식 없는 삶의 원칙은 공교롭게도 환경이 바뀔 때마다 공개 선언을 필요로한다.

이번도 다르지 않다. 현재 몸 담고 있는 조직에서 그런 신박한(?) 룰을 새로이 적용해야만 하는 실험대 위에 다시 올라서있는 것이다. 이 실험이 또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나는 또 앞장서 조금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을 자처할 수밖에 없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소신대로 사는 삶이 여간 피곤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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