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적인 사람이 회의를 준비하는 태도
저 사람, 진짜 말 많네~
3시간의 릴레이 회의 끝에 꽤 오랜 시간 발언을 한 사람을 두고 누군가 볼멘소리를 한다.
그 사람 때문에 1시간 안에 끝날 회의가 지나치게 길어졌다는 게 이유였다. 내 머리 위에는 어김없이 습관성 물음표가 떠오른다. 이 사람은 좀 전의 회의가 안 해도 그만인 점심시간 티타임 정도라고 생각하는 걸까?
'어째서 회의 시간에 말을 많이 하는 게 비난받을 일이지??'
'여럿이 모여 의논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회의'는 정의 그대로 어떤 사안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런 과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거나 개선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어떤 회의에 초대가 되었다면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참석자로서의 당연한 태도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회의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마디도 보태지 않는 구성원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일부는 묵묵히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거나, 일부는 의견은 있어도 차마 나서서 말할 용기가 없거나, 또 일부는 특별한 생각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발언을 하지 않는 속 사정이야 저마다이겠지만 반대로 발언을 하는 사람의 속 사정은 분명하다.
뭐가 됐건 '미리 고민'을 해 온다는 것이다.
의견 자체에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는 부차적이다. 어차피 회의는 가장 효과적인 결론 한 두 가지를 얻기 위해 무의미한 백 가지를 토의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놓는 사람들을 단순하게 말이 많은 사람이거나 나서는 것을 몹시 즐기는 성향이라고 치부해서는 안된다.
그들조차도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함에 있어
마뜩잖은 주변의 반응이나 예상치 못한 반론, 심지어 아이디어를 냈다는 이유로 추가 업무를 떠맡아야 하는 위험 부담까지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적극적으로 말을 쏟아낸다.
말을 하라고 대놓고 만들어진 자리에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코 다른 사람보다 아이디어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오로지 그 자리에 대한 순도 100%의 '책임감'에 기인한다.
회의 참석 요청 메일이 도착하면 가장 먼저 어젠다와 관련된 자료를 살펴보며 고민하는 시간을 가진다.
다행히 그 과정에서 번뜩이지는 않지만 꽤 쓸모 있어 보이는 아이디어를 모을 수가 있다.
생각의 힘이 대단한 이유다.)
그리고 주장에 설득력을 더해줄 통계 데이터나 핵심 키워드를 커닝 페이퍼 만들듯이 다이어리 모퉁이에 살짝 메모해 둔다. 그 다이어리 하나만 있으면 나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자신감을 장착하게 된다.
이게 바로 내성적인 기질을 타고 난 내가 회의에서 누구보다 말을 많이 할 수 있는 근거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회의에서 당당하게 말을 하고 싶지만 용기가 부족했다면
나와 같은 방법을 활용해보기를 추천한다.
바로 '회의 전에 충분히 고민하는 것'이다. 다른 묘안은 없다.
생각이 정리되면 타고난 성향과는 무관하게 스스로도 놀랄 만큼 입이 근질거리는 것을 느끼게 될 뿐이다.
이에 더해 내가 애용하는 아주 강력한 내면의 주문도 각인시키기를 바란다.
혹시라도 자신의 의견에 회의 참석자들의 심드렁한 반응이 두렵다면 "아님 말고요!!"라고 해버리면 된다.
누구도 나의 생각이 기발하지 않다고(누군들 기발할까) 그 자리에서 면박을 주거나, 책임을 묻지도 않는다.
생각보다 별거 아니다.
중요한 것은 회의에서 말하는 양이 많아지면 그만큼 업무 관여도가 높아지고, 내 일에 대한 주인의식이 생긴다.
달리 말해, 일에 끌려다니지 않고 오히려 컨트롤할 수 있으며 이는 조직 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재차 강조하자면 회의에서는 말을 많이 해야 한다.
백 번 이야기해서 단 한 번만 통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나머지 아흔아홉 번에 대해서는 기꺼이 묵살당해도 상관없다는 약간(?)의 뻔뻔함만 준비되어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입을 떼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