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들은 이들을 '자유의사에 따라 창을 든 사람'이라는 의미로 '프리랜서'라고 일컬었다고 한다.
즉, '프리랜서'는 특정 권력자에게 속하지 않고 한 전투가 끝나면 다른 전투를 하기 위해 유유히 전쟁터를 떠나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프로 이직러'라고 불릴 만큼 잦은 이직을 했던 이유는 나의 노동력을 '직장'이라고 하는 '장소'에 귀속시키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철저하게 내가 가진 '역량'에 집중했고, 그것은 마치 천둥의 신 토르의 '망치'와 같이 나를 다른 사람과 구별시키는 무기가 되었다.
어디에서 그 무기를 쓸 것인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떻게' 활용하고, '얼마만큼 연마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관심사였다.
'정규직'이라고 하는 산업화 시대가 낳은 황금 둥지에 그다지 동요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정규직은 어디까지나 고용주의 관리 편의에 따른 근로계약의 한 형태일 뿐, 나의 노동력을 통제하는 장치가 되지는 못했다.
마치 개인의 노동력이 조직이라는 거대한 기계의 '수명이 정해진 소모품'처럼 인식되는 게 일반적인 사고라면
내가 생각하는 개인의 노동력은 '호텔 투숙객'같은 개념이었다. 적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그에 상응하는 적당한 서비스를 등가 교환하지만 언제라도 호텔 서비스에 매력을 잃게 되면 짐을 챙겨서 홀가분하게 체크아웃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매년 조금씩 오르는 연봉과 정년이 보장되는 '평생직장'은 지식과 기술이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와는 명백히 상충하는 직업관임에도 나와 인연이 닿은 취준생들의 '공기업 선호현상'이 오히려 예년보다 훨씬 더 늘어났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대목일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변화'를 '두려움'으로만 인식하기 때문이 가장 큰 이유인 듯 같다. 제아무리 자기표현에 충실한 디지털 세대라고 해도 그러한 인식 변화와 관련한 어떤 교육도 받지 못했다면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불확실한 미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 뿐인 '변화의 바람'은 그저 '내 다음 세대의 몫'으로 서둘러 토스해 버리고 싶은 계주 바통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마치 '통일은 우리의 소원'이라고 제창하면서도 내심 '나 죽고 나거든~'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그런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개인 사업자'로 빙의해 자기일의 정체성을 향상시키기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른 말로 회사가 망해도 없어지지 않을 고유의 컨텐츠(biz model)를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회사는 내 사업(=내 일)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적당한 장소와 인프라를 패키지로 제공해주며 사업성을 검증해 볼 수 있도록 돕는 시험무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게 된다.
이런 마인드로 일을 하게 되면 필요 이상으로 조직 문화나 시스템에 얽매이는 일을 예방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눈에 띄는 성과로 조직의 다른 구성원들도 자연스럽게 당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 말은 당신이 아닌, 오히려 조직이 당신과 오랜 파트너십을 유지하기 위해 눈치를 보는 일이 생긴다는 뜻이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여덟 번째 직장인 지금의 회사도 결국 내게는 다음 역으로 가기 위한 직전 정류장에 불과하며
궁극적인 종착지가 어디가 될지는 나 역시도 미지수이다. 분명한 것은 나의 노동력에 제 값을 쳐주고 성장기회가 보장되는 곳이라면 앞으로 여덟 번 더 회사를 옮기게 되더라도 난 미련 없이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그것이 내가 직장과 일을 대하는 태도이다.
「잡노마드」
새로는 기회가 있다면 국가, 장소, 시간 그리고 역할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일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일(job) +유목민(nomad)의 합성어로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