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고시생의 스타트업 적응기 #1
재앙의 시작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내 또래 아이들이 방송반 활동을 하는 다큐를 본 것이 화근이었다. 이것이 내 소듕한 20대 청춘을 뿌리째 흔들 줄이야. 나도 쟤들처럼 방송반이 되고 싶다는 단순한 소망은 다음해 전학 간 학교에 마침 걸출한 방송반이 있는 바람에 현실이 되었다. 많은 6학년들이 아나운서에 지원했지만,
"너는 혀가 짧으니 아나운서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는 엄마의 팩트폭행에 나는 PD를 지원했다. 사실 기자는 하기 싫고 카메라 감독은 작고 말라서 안 시켜줄 것 같길래 뭔지도 모르는 PD가 되겠다고 체크한 것이다. 논술 시험은 제법 진지했다. 오늘 읽은 기사 내용을 쓰라는 문항에는 재미교포 피겨선수 남나리가 은메달 딴 이야기를, IMF가 무엇인지 서술하라는 문항에는 직장인들이 I aM Free라고 외치게 되는 것이라고 쓴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나는 학교의 아침방송을 기획하는 어린이가 되었고 뭔지도 몰랐던 PD는 어느새 내 꿈이 되어버렸다.
그 뒤는 악착같고 애잔한 뭐 그런 이야기다. 예능PD라는 꿈을 좇느라 고단했던 나의 인생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말하도록 하겠다. 마지막이라 생각했던 KBS 시험에 떨어지고 좌절하던 스물여덟의 12월, 아버지가 은퇴하셨다. 시험 준비 비용을 벌 요량으로 이 회사 저 회사 옮겨다니던 나는 이제 진짜 정착할 직장을 구해야 할 때임을 직감했다. 절반은 방송국에, 절반은 일반 회사에 지원서를 냈다. 그 중 합격하는 곳이 앞으로 나의 운명이리라. 지원서만 50개쯤 뿌린 만큼 면접을 보러 다니느라 바빴다. 종종 면접관 중에 PD 최종면접에서 나와 같은 조였던 사람들이 있어 나를 서럽게 했다. 언론고시의 신이 나를 농락하는 게 분명하다며 절규하던 어느 날, 처음으로 방송국이 아닌 곳에서 서류전형을 통과하였으니 역량평가서를 작성하라는 메일이 왔다. 언론고시 카페에 채용공고가 올라왔길래 지원서를 냈던 스타트업이었다.
처음엔 역량평가서 쓰기가 귀찮아서 이 회사는 스킵하겠다며 드러누웠다. 하지만 슬쩍 훑은 역량평가서 질문들의 답이 이상하게도 자꾸
떠올랐다. 정말 운명이었던 건지도 모르지. 결국, 다시 일어나 빠른 손놀림으로 답변을 채웠고 놀랍게도 바로 다음 날 합격했으니 1차 인터뷰 일정을 잡자는 연락이 왔다.
'뭐야 왜 이렇게 빠르고 쉬워? 이상한 회사 아니야?'
오랜 기간 방송국들에 까이느라 제정신이 아니었던 나는 너무 잘해주는 이 회사가 오히려 의심스러웠다. 안 되도 그만이라는 생각에 면접을 보러 갔더니 파티션도 없는 사무실에 외국인이 슉슉 지나다니고 몇몇은 소파에 널브러져 일하고 있었다. "일찍 오셨네요."라며 나를 맞이한 HR 담당자는 수염 단 꽁지머리에 츄리닝 차림이었다. 옴마야 이거슨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꿈의 기업 아닌가요. 내래 남조선에 이리 자유분방한 회사가 있을 줄 몰랐잖소? 게다가 면접관들은 친절한 눈을 하고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빵빵 터져서 나를 어리둥절케 했다. 나중에 듣자 하니 아이라인을 언더까지 그리고 나타나서 뭘 시켜도 "안되는 데요"라고 말하는 내가 너무 또라이같았다고 한다.
그리고 2주쯤 지나도 연락이 없길래 떨어진 줄 알고 금세 잊었다. 그사이에도 나는 많은 방송국 조연출 면접들을 보러 다니느라 너갱이가 나가 있었기 때문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매번 잔인한 면접관들에게 탈탈 털린 채 집에 가느라 멍하니 버스에 앉아있던 터였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그 스타트업이었다. HR 담당자는 내게 면접관 중 한 분이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셨다며 한 번 더 시간 괜찮냐고 물었다.
'이제 와서? 그사이 뽑은 애가 도망이라도 간 건가?'
일전에도 나를 제치고 합격한 조연출이 4일 만에 도망가서 내게 입사 제안이 온 적이 있었다. 이 바닥에서 꽤 흔한 일인데 보통 대타로 들어가 보면 전임자가 도망가야 마땅했던 이유를 곧 알게 된다. 이번에도 그럴 각이다 싶어 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HR 담당자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공손하여 알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정말 운명이었던 건지도 모르지. 그렇게 나는 몇 번이고 안 갈 이유가 많았던 그 스타트업에 또다시 인터뷰를 보러 갔다. 면접관 중 가장 포스 있었던 여자분이 2층 커피숍에서 나를 반겼다. 그녀는 명함을 건네주며 나의 능력을 높이 사 경력직으로 채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편집 기자 같은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나만 원한다면 마지막으로 대표님 인터뷰를 봤으면 한다고. 세상에 나한테 왜 이렇게 다정하세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면접 일정이 정해지면 미리 알려주겠다던 HR 담당자는 다음날 오전 또 아주 공손한 목소리로 몇 시간 뒤에 대표님 면접을 보러 올 수 있냐고 전화 했다. 그는 첫 번째 인터뷰 때도 일정 메일을 실수로 보내지 않아 당일에 지금 와주면 안 되냐고 전화한 바 있었다. 나는 경기도민이라 기본 한 시간은 걸리는데! 잠시 분노했지만 내 죄를 나도 안다는 듯한 HR 담당자의 공손한 목소리에 이번에도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자다 말고 준비해서 간 세 번째 면접. 대표님은 내 이력서를 읽더니 한마디 하셨다.
"고생을 많이 했네요"
잡히지 않는 꿈 때문에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수백 번 기워입고 여기까지 온 언시생에게 아무도 해준 적 없는 말이었다. 펑펑 울기 시작한 나는 속으로 '이제야 겨우 이 회사에 들어오고 싶어졌는데 망했어'하고 좌절했다. 어떻게든 망해버린 이 판을 다시 살려보고자 노력했지만 한 번 나오기 시작한 눈물은 끝도 없었다. (언론고시생의 한이 이렇게나 깊습니다. 방송국 놈들아.) 그래도 울면서 꽤 오래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면접이 끝나자 대표님은 왜인지 내게 그냥 가지 말고 꼭 HR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눈 뒤 가야 한다고 하셨다. 휴지를 들고 온 HR 담당자의 말은 황당했다.
"저희가 원래 며칠 지나고 발표하는데 대표님이 지금 하라고 하셔서 바로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네?...지원자 앞에서 육성으로 결과 발표라니 무슨 슈퍼스타K인줄. 다행히 합격이라 서로 민망한 광경은 벌어지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대표님이 HR 담당자에게 쟤 합격인데 너무 우니까 지금 바로 얘기해주라고 하셨단다.
울고 있는 나에게 함께 일하게 되서 기쁘다며 손 내밀어 준 이 날의 기억은 훗날 큰 위력을 발휘한다. 이처럼 가지가지 했지만 따뜻했던 채용전형 끝에 나는 스타트업 마케터가 되었다. 오래전부터 준비된 운명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