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16일
올해는 적금하는 재미에 빠져 있다. 생각보다 적금 만기 이자가 쏠쏠하다는 걸 작년이 돼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요새는 앱으로도 적금을 쉽게 들 수 있다길래 야밤에 기업은행 앱을 보는데 이율이 더 좋아 보이는 상품이 있었다. 한 달밖에 안 된 적금이 있어 해지하고 갈아타 보기로 했다. 그런데 작게 적힌 글씨가 마음에 걸렸다. *예금자보호법 상 보호상품 아님.
금융이나 재테크 쪽은 제대로 아는 게 없는 나이지만 각 은행마다 5,000만 원까지 보호받을 수 있다는 정도는 알았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은행원 추천으로 들었던 '중금채' 상품도 예금자보호가 안 되는 상품이 아니지만 기업은행은 국책은행이기 때문에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괜찮다고 안내받았던 것 같다. 딱히 문제없었으니 괜찮겠거니. 나는 이번에도 12개월짜리 '중금채' 상품에 가입하려다 멈칫했다. '일 년 사이에 뭔 일이 생기겠어?'라는 자문에 영 속 시원한 답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로 나는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세상을 살고 있는 것 같다. 휴가와 의지만 있으면 어디든 여행을 떠날 수 있을 줄 알았던 나를 비웃듯이 전 세계에 창궐한 바이러스. 진짜로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 많이 오르진 않아도 떨어질 리는 없다는 생각에 샀다가 반토막도 더 난 우리 회사 주식. 한 방에 카카오톡, 멜론, 브런치 모두 쓸 수 없게 돼서 곤란해진 이번 주말. 작년만 해도 투자 소식이 이어지더니 갑자기 구조조정과 폐업이 이어지는 스타트업 시장까지. 당연히 내일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들이 보란 듯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자동으로 겸허해지는 것이다.
그중 제일은 집값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벼락 거지'가 된 듯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아무것도 안 한 나와 달리 주식, 코인, 부동산을 한 지인들은 전부 자산을 엄청난 속도로 불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기혼인 친구들은 결혼을 하면서 아파트를 매매한 것이 집값 폭등으로 굉장한 이득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집도 차도 없는 미혼의 캥거루족 어른이. 그 초조한 심경을 그대로 담아 나는 작년 한 해 동안 작가 학원을 다니며 '엄마 그 집 팔지 마'라는 미니시리즈 대본을 썼다.
'엄마 그 집 팔지 마'는 중요한 순간마다 잘못된 선택을 한 부모님의 인생을 자신도 닮는 것 같아 현타가 온 '벼락 거지' 소호가 천재 전 남자 친구의 프로젝트에 참여해 20대의 엄마가 깡패에게 협박받아 팔아버린 개포동 아파트를 지키러 1988년 여름으로 타임슬립 하는 내용이다. 작년에 처음 일지를 쓰면서 고민했던 내용들이 그대로 담긴 터라 우리 가족이 모델이고, 엄마의 실제 이야기에 판타지 요소를 넣은 것이다. 해서 나는 꼭 이 대본의 결말을 완성해 고단했던 나와 우리 부모님의 삶을 위로하고 싶었다. 매번 똥 같은 선택을 한다고 좌절하던 소호가 내가 만들어준 특별한 여름을 보내면서, 인생에 어떤 선택을 하든 옳고 그른 것은 없다고 확신하는 걸 보고 싶었다. 작년 말에 한 공모전에 대본을 제출하면서 저작권 등록도 시켜뒀다. 작가 학원 공모반을 다니며 더 개선해서 2022년 내내 여러 공모전에 내볼 계획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수업이 폐강하기도 했고, 올 한 해 작사 데뷔에 온 신경을 쏟느라 도저히 '엄마 그 집 팔지 마' 대본을 수정할 틈이 없었다. 이도 저도 아닌 삽질을 하는 거 아닌지 마음이 조급해졌지만, 나는 보통 어떤 일이 일어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지금 내가 작사에 집중해야 할 이유가 있어서겠지'라 믿으며 대본 작업은 미루게 됐다. 정말 그랬다. 고작 일 년 새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엄마 그 집 팔지 마'를 기획하고 쓸 때만 해도 소호는 전형적인 '보통의 벼락 거지'였다. 하지만 시장 상황이 반전되어 많은 이들을 부자로 만들어준 집값, 주식, 코인이 모두 폭락했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아 집과 주식도 없지만 빚도 없던 소호가 이 시국을 버티기 최적인 인간이 된 것이다. (물론 여전히 우리 엄마가 판 개포동 아파트는 비싸므로, 타임슬립을 해서라도 못 팔게 막아야 한다) 시대상에 맞게 대본을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올해 내내 계속 붙잡고 있었다면 너무 소중하고 아까워서 수정할 때 마음이 아팠을 것 같다. 덕분에 9월에 작사가로 데뷔도 했으니 역시 모든 삽질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래도 '엄마 그 집 팔지 마'는 꼭 극본 공모전이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조만간 다시 작업하고 싶다. 지금 생각으로는 시간만 여유가 생기면 바로 소설로 쓰려한다. 요즘 마음이 괜스레 헛헛해서 다 손에 안 잡히는 게 문제지만...
빛을 먹고사는 나는 날씨가 추워지니 득달같이 슬럼프가 왔다. 매해 계절에 맞춰 찾아오는 나의 고질병에 의사 선생님은 겨울이 오기 전에 '광치료'를 하는 걸 추천해주셨는데 선뜻 알아볼 여력이 안 난다. 나 같은 사람들은 나중에 사계절이 따뜻한 나라에 가서 살면 좋다고도 하셨다. 일단은 겨울이 추운 대한민국에 살고 있으니 이전에 쓴 일지를 읽고 새로 쓰면서 어수선한 마음을 다스려본다. 뭐든 계속하는 방법밖에 없다. 광고 효율이 안 나오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몇 번이고 끝까지 새로운 광고를 만들어 갈아 끼우던 주니어 마케터 시절을 생각해. 그때를 생각하면 나는 나를 믿어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