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4일
오늘은 가장 마음에 드는 내 모습이 무엇인지 고민 중이다. 예전에는 오뚝이처럼 회복 탄력성이 좋은 점을 자신 있게 들이댔을 텐데, 지금의 나와는 묘하게 들어맞지 않는다. 최근 나는 벌떡 다시 일어나기보다는 누운 김에 꼼지락거리는 발가락에 가까우므로...
다른 장점을 찾아야 한다.
난 외성적인데 내향적이다. 친구를 사귀는 것도, 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것도 어려워하지 않지만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외로움은 잘 타지 않는 성격. 집 밖을 안 나가고도 한 달은 거뜬히 살 수 있는 나의 이런 부분이 좋다. 어른의 삶은 복잡한 것이어서 본디 나이를 먹을수록 멀어지는 인연은 늘어나고, 새로운 사랑과 우정을 쌓는 데는 더 큰 결심과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해서 혼자서도 잘 노는 나는 갈수록 생존에 유리할 것이다. 물론, 이건 지구가 평화로울 때의 가정이고, 아포칼립스 상황이 오면 제일 먼저...
“재능이 있으면 모를 수가 없어요. 어떻게든 재능이 비집고 나와요. ‘너는 이걸 잘해’ 이런 얘길 백번도 넘게 들어봤어야 해요” 김은숙 작가님의 인터뷰를 보고 나는 내심 기분이 좋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글을 잘 쓴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엄마가 촌지를 주지 않아 잔뜩 뿔이 나 있던 담임도 내가 쓴 글을 보고는 “너는 꼭 작가가 돼라”며 칭찬했고, 매년 글짓기로 상을 받았다. 당시 나는 피아노에 빠져서 독서나 글쓰기에는 영 관심이 없었지만, 주위에서 다들 글을 잘 쓴다고 칭찬하니 ’이게 내 특기이구나‘ 하고 주워 담아뒀다.
내가 진짜 글을 쓰고 싶어진 건 그로부터 한참 뒤인 2017년쯤이다. 회사를 벗어나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자 글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해결할 수 없는 막막한 마음과 두려움을 글로 써서 형체를 만들어주고 싶다. 무수한 의문에 대한 답이 되어줄 세계관과 서사를 창작해 위로하고 위로받고 싶다. 아직 에세이 한 권을 냈을 뿐이고, 채택된 가사도 하나인 작사가, 여전히 이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장인이지만 왠지 미래에는 작가를 본업으로 삼게 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있다.
무엇보다도 작가가 되고 싶다는 고백에, 그건 너무 어려운 길이라고 나를 말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렇지, 너는 글을 써야지” 신기하게도 모두가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나는 적어도 작가라는 꿈을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그 정도의 소질이 있는 내가 좋다. 내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운명이 어느 방향으로 향할지 전부 오리무중이지만, 사람들에게 작가라는 정체성으로 보이는 내가 좋다.
얼마 전 무서운 꿈을 꾼 뒤로 줄곧 방문을 열고 자고 있을 정도로 나는 쫄보다. 놀이기구, 귀신, 밤길, 치안 나쁜 도시 등등 나는 무서워하는 게 정말 많아서 위험에 노출될 만한 짓은 전부 차단하고 안전한 삶을 추구하고 있다. 경험의 폭이 좁아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호모 사피엔스든 호모 에렉투스든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내 유전자가 살아남은 비결은 겁쟁이 지분이 클 것이다. 제법 마음에 든다.
반면 겁이 없어도 너무 없는 면도 있다. 나는 사람을 대할 때 겁이 없고, 무언가를 시작하고 도전할 때도 겁이 없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냅다 하는 나의 근성과 과감함을 좋아한다. 키도 작고 풋살 초보 주제에 다른 장신 팀과의 경기에서 하나도 떨지 않는 기개가 좋달까 (골키퍼는 예외다. 떨린다.)
이들은 가장 초라할 때도 의심한 적 없는, 내가 발 뻗고 믿는 구석이다. 나는 무수히 변하지만,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외로워하지 말고, 재능을 의심하지 말고, 나를 지키며 두려움 없이 나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