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6일
“5년 전 내가 기대했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할 때 나아진 점이 있다면?”
오늘의 질문 글도 만만치 않다. 어떻게 Y는 매일 내 인생의 난제만 던지는 걸까. 그래서 이 시간이 더 의미가 있지만 말이야.
5년 전의 나는 미래를 향한 기대 따위 끼어들 틈 없이 지쳐있었다. 무력하게 침대에 누워서 시간을 보내던 나날. 어두운 터널 속에 있는 것 같기도 했고, 겨울잠을 자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절묘하게도 나는 최근 내가 그놈의 5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생각 중이었다. 나아진 점을 찾을 확률은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다. 그럼에도 바늘은 저 모래 속에 분명히 있을 테니, 마음에 낀 모래를 탈탈 털어보겠다.
2021년 2월 15일, 나는 갈 곳을 정하지 않고 퇴사했다.
쇼코의 미소를 읽고 떠올린 감상이 희뜩한 유령처럼 서 있다 안갯속으로 사라진다. 다시 읽으면 살아나려나. 불안하면서도 설렌다고 희망차게 썼지만 나는 그 뒤 한 달쯤 암흑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니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일주일에 두 개씩 면접을 봤다. 당시 세상은 코로나로 시끄러워서 나는 특히 더 경제적으로 쪼들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외출을 꺼리는 만큼 엄마의 가게는 손님이 무척 줄었다. “내가 이번 달 못 번 거 채워줄게”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질러놓고 나는 통장 잔액을 계산하며 숨이 막혔다. 마스크를 구하기가 두쫀쿠보다 어렵던 시기, 그렇다고 바이러스에 가족들을 노출시킬 수는 없어서 개당 5천 원이 넘어가는 마스크 100만 원어치를 산 적도 있다. 네 명이 나누어 쓰려니 어쩔 수 없었다. 반면 옆에서 부모님이 마스크를 잔뜩 보내줬다고 자랑하는 팀원을 보고 처음으로 위기감이 들었다. 월급 얼마 올린다고 이 격차가 사라지지 않겠다는 그런 위기감. 사실 돈보다 더 위험한 건 가족에게서 심리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얽매여 있는 나라는 위기감.
그러니까 이런 압박감 속에서도 내가 아무 해결책 없이 퇴사했다는 건 정신적으로 몰려 있었단 증거다. 엄마는 집에서 노는 나를 하루도 참지 못하고 나를 투명 인간처럼 대했다. 그 정적이 미칠 것 같아서 마구 지원서를 내고 마구 면접을 봤다. 몇 주간 해본 적 없는 직무, 원하지 않는 분야, 가고 싶지 않은 회사에 억지로 면접을 보던 나는 결국 벼락 맞은 것처럼 엄마에게 소리를 질렀다. ”엄마 때문이야. 나도 준비 잘해서 좋은 회사 가고 싶은데, 엄마 때문에 마음이 급해서 아무 곳이나 들어가니까 자꾸 망하는 회사만 들어가잖아!“
이름 있는 회사, 안정적인 회사를 바라는 건 나보다 엄마의 더 큰 소망이었으므로 그날 이후로 엄마는 나에게 잘해줬다. 유예를 받은 대신 번듯한 직장에 가야 하는 미션이 생긴 것이다. 덕분에 무차별 면접을 보는 자학은 멈췄지만, 나의 의욕도 멈췄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을 구할 것인가,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할 직장을 구할 것인가. 사실 둘 다 이루기 어려운 선택지였다. 나는 아무것도 안 될 가능성이 높았다. 해서 새 회사에 가기 전에 소설 한 편을 쓰겠다고 선언해 놓고, 남는 게 시간이면서 한 글자도 쓰지 못하게 되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긴 터널에 있는 기분이었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5년 전 그때를 나는 한 회고 스터디에 들어가면서 이겨냈다. (브런치에 연재한 ‘나의 현타 일지’가 그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일기를 쓰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는데 웃기게도 그게 나를 구했다. 마법처럼 슬럼프를 지나 인생이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꿈만 같은 몇 년을 보내게 된 것이다. 그래서 5년이 지난 지금, 또 한 번의 기적을 기대하며 생각글 모임도 시작하게 됐다. 나는 다시 터널이지만 최선을 다해 생각하다 보면 또 내가 나를 구할 거라고.
5년 전 내가 기대한 건 그저 이 상황에서 좀 벗어나는 거였을 것이다. 다행히 나는 빈약한 내 상상력보다 더 잘 되어서 작사가도 되고, 꿈꾸던 집도 사고 (집 값은 폭락했지만), 회사 덕분에 만난 멋진 동료들과 풋살도 하게 됐다. 물론 쉬면서 소설을 쓰겠다더니 이력서 쓰는 데 총력을 다하고 있는 내가 너무 여전한 게 불만이지만 그래도 5년 전에 비해 무엇이 나아졌냐고 하면, 조금 덜 불안해졌다. 조금 더 나를 위하고, 조금 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한 번뿐인 생에서 무얼 하고 싶은지 확신을 가지게 됐다. 작사가 데뷔 후 어느덧 3년 반. 남들은 숱하게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는 데 뒤처지고 있다는 초조함에 학원을 전전하며 방황하던 어느 날 번뜩 깨달았다. 나는 가사를 쓰는 게 좋다. 창작하는 게 좋다. 그 무엇보다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좋아하는 걸 잘하게 될 나의 미래를 기대한다.
좋아하는 걸 소중하게 여긴다는 건, 나 자신을 좋아할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 아닐까. 5년 전의 나는 기대하는 게 없었지만, 지금의 나는 5년 후의 나에게 기대하는 게 정말 많다. 그게 예전과 달라진 점이다. 우선순위를 깨달은 것과 별개로 나의 발목을 잡는 감정은 아직 많고, 그에 따른 실망스러운 내 행동도 반복된다. 그래도 터널 속을 걸으면서 되뇐다. 내가 좋아하는 걸 잊지 않아야지. 이것이 모래 속에서 찾은 나의 바늘만한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