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21일
2031년 2월 21일의 나에게
재채기가 나오고 눈이 몹시 간지러운 걸 보니 계절이 바뀌는 때인가 봐. 봄이 오고 있어. 아마 지금쯤 너도 눈을 비비고 있겠지?
환절기마다 으레 겪는 알레르기. 나에겐 너무 당연한 일인데도, 5년 뒤라고 하니 문득 당연하지 않을까 봐 겁이 나. 그 사이에 지구 온난화로 계절의 구분이 사라질 수도 있고, 어느 날 전쟁이 나거나 역병이 돌 수도 있고, 내가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잖아.
그러게. 나는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잘도 하는 걸까. 한바탕 극단적인 상상을 하고 나면 바라는 건 건강, 생존, 평화 같은 대주제만 남아. 5년 뒤에도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아있고, 대한민국이 건재해서 지하 벙커 대신 내 방 침대에서 빈둥거릴 수 있고, 다가오는 봄에 겹벚꽃을 볼 수 있다면, 그렇게 딱 지금만 같다면 그보다 더 한 행복은 없다고 미래를 향한 모든 논의를 강제로 종료하는 거지. 나아지고 싶은 마음보다는 잃고 싶지 않은 마음. 나는 상실이 두려워서 나아지는 것에 대해서는 신경 쓸 겨를이 없어. 우습지?
더 웃긴 건 하루나 한 달쯤으로 기간을 줄이면, 갑자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이 떠오른다는 거야. 아무래도 나는 멀리 떨어져 있는 너를 믿는 것보다는, 눈앞의 나를 혹사시키는 것이 쉬운 모양이야. (이런 게 바로 고도로 발전한 통제광?)
오늘의 나와 이번 달의 나로 추측건대, 5년 동안 나는 가사 시안을 500개쯤 더 제출했을 거고, 신춘문예는 다섯 번 도전했을 거고, 소설 한 편은 완성해서 출판사에 투고했을 거야. 행위의 결과는 내가 결정할 수 없지만, 행위는 내가 결정할 수 있지. 난 그런 건 잘해. 그래서 어때? 결국 내가 너의 꿈을 이뤘니?
이런. 벌써 새벽 세 시 반이야. 너에게 편지를 쓰느라 작사 학원 과제도 포기했어. 그만큼 이게 나한테 중요한 일인 거겠지. 사실 과제를 못 한 게 완전히 네 탓은 아닌 게 몇 시간 전까지 풋살 친선전 중이었어. 나는 비록 골은커녕 패스 실수도 엄청났지만, 우리 팀이 7:2로 이겨서 기뻐. 제발 5년 뒤에도 우리 팀이 매주 만나서 풋살하고 있다고 얘기해 줘. ‘골때녀’ 출연까지는 바라지 않을게. 다치지 않고 다들 함께한다고 말해줘. 그리고 운명적인 냥줍도 해서, 지금 폭 안긴 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 자고 있다고 말해줘. 앗, 어쩐지 바라는 게 많아졌네.
쓰면서 생각한 건데 나는 나보다 너를 더 사랑하는 것 같아. 그게 내 비극이라고 자조하지는 않을게. 엄마의 마음 같은 거라고 해두자. 알아, 내가 너보다 더 어리지만 그런 게 있어. 5년 뒤에 이 편지를 열어본다면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기억해 냈으면 좋겠다. 딱 5년만 나를 믿고 기다려줘. 안녕.
P.S. 답장 꼭 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