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일
어릴 적 내게 주식은 인생을 망칠 수 있는 도박 같은 것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갑자기 회사를 그만둔 아빠가 주식으로 집 한 채 값을 날렸기 때문이다. 내 청소년기 운명이 송두리째 바뀐 게 아빠의 퇴사 탓인지, 주식 실패 탓인지, 그 기여도를 무 자르듯이 나눌 순 없지만 나의 십 대는 영영 바뀌었다. 아빠가 아무리 미안해해도 돌이킬 수 없는 선택. 그것의 나비 효과는 생각지도 못한 곳까지 뒤틀어버려서 어른이 되어서도 나에게 퇴사와 주식은 극복하기 어려운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 정말 많은 사람이 주식을 한다. 상상과 달리 주식이란 골방에 틀어박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앞길을 망치는 쪽보다는, 가방에 귀여운 키링이 주렁주렁한 어린 인턴도 하는 대중적인 재테크에 가까운 건지도 모른다. ‘이대로라면 나만 벼락 거지가 되고 말아.’ 10년 뒤 나 빼고 모두 건물주가 되는 그림이 그려졌지만, 그럼에도 나는 산뜻하게 주식 시장에 뛰어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송충이는 솔잎을 뜯어먹고, 나는 월급을 뜯어먹어야 탈이 안 난다.
이런 내가 어떻게 인생 처음 주식을 팔 수 있었느냐고 하면, 회사에서 받은 자사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 주식은 슬프게도 근 5년간 빛을 보지 못하고 있으므로, 남들의 만류에도 받는 족족 그냥 내버려 둔 것이 꽤 모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부자 할머니가 될 때까지 장독 깊이 묵혀놓고 싶었다만, 휴직 중인 나의 현재 통장 잔액은 40만 원. 돈 나올 구멍은 제로. 다음 달 생활비를 위해 증권 앱을 켰다.
대충 깜빡거리며 바뀌는 현재가 중에 제일 큰 금액을 쓰고, 소심하게 1주를 선택했는데 갑자기 팝업이 떴다. ‘증거금 부족으로 주문이 불가능합니다.’ 왜요? 고작 1주 파는 건데 왜 부족해요?
아차, 지금 **'매도(팔기)'**가 아니라 '매수(사기)' 탭에서 주문을 넣으셔서 그렇습니다!
그렇다. 증권 앱 계좌에 98원 있는 주제에 매수를 하려고 한 것이다. 무식함에 정이 떨어질 만도 한데, 제미나이는 AI다운 침착함으로 답을 해줬다. 오케, 알아들었어. 자신감이 붙은 나는 (대체 왜...?) 매도 탭을 터치한 뒤 500원을 올려서 4주를 팔겠다고 적었다. 빨간 불이고 상승세길래 500원 정도면 금방 오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쩐지 제미나이가 초조한 눈치였다.
지금 주가가 계속 변하고 있어서, **'지정가'**로 올리셨다면 내가 정한 가격에 사려는 사람이 나타나야 '체결'로 바뀝니다. 만약 '주문 내역'에서 계속 '미체결'로 떠 있다면 가격을 조금 조정하거나 기다려보셔야 해요.
안타깝게도 이 조언은 인간에게 읽히지 않았다. 대신 제미나이는 계좌에서 현금을 이체하는 메뉴는 어디 있냐고 설레발 떠는 인간의 질문에나 대답해야 했다. 그리고 그 인간은 미체결 이슈로 끝내 계좌 이체를 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러니까 내가 주식을 처음 팔게 된 건 금요일이고, 지금까지의 얘기는 목요일의 일이다. 목요일의 나는 아무것도 팔지 못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전날보다 4,000원이나 하락한 주가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500원을 욕심내다가 일을 그르치다니!’ 상심에 빠졌지만, 생활비가 급한 나머지 어제보다 4,000원이나 낮은 현재가로 1주를 매도하겠다고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도 계속 매도 체결이 되지 않았다. 왜요? 분명 이번에는 현재가에서 더 올리지도 않고 숫자 그대로 썼는데?! 이번에는 챗지피티에게 물었다.
“현재가 = 마지막 체결가”일 뿐, 지금 당장 사겠다는 사람이 그 가격에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고객님은 ***원에 팔겠다고 걸어둔 상태이고, 지금 당장 사겠다는 사람은 ***원에만 있습니다.
저런. 현재가를 쓰면 자동으로 팔리는 건 줄 알았더니 것도 아니었다. 무슨 부동산에 집 매물 내놓는 느낌이었다. 파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니. 초조해진 나는 낮과 밤이 바뀌어 졸린 눈을 부릅떴다. 당시 시각은 오전 8시 27분. 챗지피티는 지금은 프리마켓이라 유동성이 적다며, 정규장(09:00) 시작 후에는 위 호가들이 빠르게 바뀔 수 있다고 했다. 애석한 것은 챗지피티가 빠르게 바뀔 수 있다고 했지 오른다고 한 건 아닌데, 9시가 되면 더 오른다고 내가 멋대로 알아들어버린 것이다. 나는 한 시간만 더 안 자고 기다려보기로 한다.
그러던 중 드디어 1주가 팔렸다. 나의 첫 주식 매도! 전날 빨간색이었던 주가가 눈에 아른거렸지만, 이따 정규장이 열리고 다시 주가가 전날만큼 오를 걸 생각하며 스스로를 달랬다. 이따 팍팍 올라도 난 1주만 팔았을 뿐이니 큰 손해는 아니야. 어떻게 파는 건지 알았으니, 오늘은 꼭 목표대로 8주를 팔리라.
는 무슨 정규장이 열리자, 주가는 신비로운 푸른빛을 띠며 약 7,000원이나 하락했다. 주간 보고를 쓸 때 푸른색은 상승한 수치고 붉은색이 하락한 수치인데 주식은 반대라니 통탄스러울 따름이다. 두뇌 풀가동 끝에 나는 더 이상 팔지 않고 다음 주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날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과 전쟁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주식을 팔면서 나는 후회만 했다. 어제 더 팔걸. 아까 더 팔걸. 여기서 더 올라갈 거란 생각만 하고 내려갈 거란 가능성은 자꾸 지운 내가 원망스러웠다. 주식으로 돈을 벌려면 많은 노력과 인내심, 정신 수련이 필요한 게 분명하다. 난 자식이라도 없지 그 옛날 우리 아빠는 돈을 잃을 때 마음이 얼마나 지옥 같았을까.
앞으로 좋든 싫든 3개월간 쫌쫌따리 이 주식을 팔아가며 살아야 한다. (청약 통장을 깨버리고 싶은 강한 열망을 누르고 있다.) 그 안에서 나는 어떤 걸 배우고 어떤 격렬한 생각의 변화가 생기려나. 갑자기 맞이한 주식 의존적인 삶에도 운명적 이유가 있는 거겠지. 배달 음식을 끊게 될 수도 있고, 택시도 더 안 타게 될 거고, 소비 습관이 완벽하게 고쳐진 채 건강하게 복직할 수 있을지도 몰라. 남들 다 주식 시장에 뛰어드는 지금, 나는 뛰어들 돈이 0원인 것도 묘하게 운명적이다. 일단 앞으로 주가가 너무 떨어지지만 않기를 바란다. 물론 나의 몇 만 원보다 세계 평화를 더 원함... 안전제일...... 나는 주식으로 돈 벌기는 글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