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정말 여덟시 반 출근인가요?" 스타트업의 지각

언론고시생의 스타트업 적응기 #20

by 지금을

경력직 면접을 보러 온 업계 분들이 종종 묻는 것이 있다.

"이 회사 정말 여덟시 반 출근인가요?"

원래는 그랬다. 그 전날 야근을 했든 밤샘을 했든 상관없이 출근은 무조건 여덟시 반 두둥. 보통 스타트업은 열 시 출근이 많은 추세라 그 패턴에 익숙한 경력직들은 꺼릴 만도 했다.


대표님은 전반적으로 직원들을 몹시 자유롭게 풀어놓는 스타일이셨지만 출근 시간만큼은 단호하셨다.

우리는 아직 스타트업이니까 남들보다 일찍 일을 시작하자


난 별다른 불만 없이 마냥 즐거웠다. 일찍 출근길에 나서면 2호선이 덜 붐볐고, 옹기종기 모여서 회사가 미리 시켜놓은 아침 식사를 먹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특히 쌀국수와 씨네 주먹밥이 나올 때가 가장 행복했다. 아침밥 주는 회사 쪼아!


사실 회사 차원에서는 득 볼 것이 없어 보였다. 30여 명이 넘는(나중에는 60명에 육박한) 직원들에게 매일같이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음식물 쓰레기도 처치 곤란이었다. 대표님의 기본 마인드가 '오로지 일하는 데만 집중해라'셨던 덕분에 우리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지만 이틀에 한 번 청소 이모님이 오시는데도 주체가 안되는 쓰레기통이란. 게다가 말이 여덟시 반 출근이지 아침밥 먹고 치우고 커피까지 마시고 돌아와서 일하려고 앉으면 아홉시 반이었다. 일을 시작하는 시간은 다른 회사들과 같았다.


결국 그 어떤 말에도 신념을 굽히지 않던 대표님은 출근 시간은 아홉 시 반으로 바꾸셨다. 물론 그 결정을 내리시기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출근 시간이 드디어 바뀐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의외로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더 이상 팀원들과 아침밥을 먹으며 수다를 떨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대화 시간이 줄면 어떡하지?'
'개인주의가 창궐하면?'
'아침을 같이 먹고 있으면 가족이 된 기분이었는데!'

그러나 바로 다음 날 아홉시 반에 출근을 경험하자 나는 이 모든 생각을 버렸다. 아침밥이고 뭐고 출근은 늦을수록 좋은 것이로구나. 이제는 그 옛날 어떻게 여덟시 반에 출근할 수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여덟시 반 출근 시절 지각을 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 엄격한 제재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각자 양심에 맞게 지각 메일 쓰레드에 기록을 남기면 된다.

'버스가 막혀서 5분 정도 늦을 것 같습니다.'
'늦잠을 자서 20분 늦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간단히 쓰는 건데 대표님과 시니어 분들이 모두 메일 쓰레드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지각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게 된다. 벌금을 내는 것도 아니고,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것도 아니고, 연차가 삭감되는 것도 아니었지만 다들 순둥이라 메일 쓰레드에 지각 사유를 쓰는 것만으로도 콩닥거려 했달까.


참고로 나는 체질상 늘 인풋 이상의 아웃풋을 내는 사람이다(똥 이야기임)


그러다 보니 종종 모닝 응가를 집에서 마치고자 하는 비현실적인 야망 때문에 지각하곤 했다. 나는 그때마다 '배가 아파서 10분 늦습니다'라고 메일을 남겼다. 그러던 어느 날 본부장님이 버럭하셨다.

"너 응가 싸는 거 안 궁금하다고! 그렇게 쓰는 거 남들한테 민폐야! 앞으로는 컨디션 난조라고 써!"

응가싸느라 늦었다고 쓴 적은 없는 것 같은데.....어떻게 아셨지...


그 이후로 나는 지각하게 되면 무조건 '컨디션 난조'를 사유로 남기게 되었다. 동료들은 아직도 내가 화장실에 가려고 하면 컨디션 난조냐고 놀린다.


반추해보면 리더는 다방면으로 나의 오피스 예절을 고나리하기 바빴지만 웬일인지 지각에는 관대한 편이었다. 한 번도 근태에 대해 지적한 적이 없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모르지만 그 영향인지 나는 이직도 비슷한 출퇴근 문화를 가진 곳으로 했다. 세상에는 1분이라도 늦어도 엄격히 구는 회사도 있고 30분쯤은 구성원의 자율에 맡기는 회사도 있다. 둘 중 무엇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지, 실제로 영향이 있는 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저 예나 지금이나 나를 믿고 너그럽게 구는 회사가 고마우니까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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