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고시생의 스타트업 적응기 #7
페차쿠차란 일본어로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소리를 의미한다고 한다. 영국 출신 건축가들이 동료들과 작품을 공유하고자 도쿄에서 시작한 프리젠테이션 기법이기도 하다. 페차쿠차의 규칙은 '20개의 이미지를 각각 20초씩 보여주며 설명하는 것'이다. 시간이 다 되면 다음 이미지로 사정없이 넘어가기 때문에 무조건 시간에 맞춰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 회사는 신규 입사자들에게 페차쿠차를 통해 자신을 소개할 기회를 줬다. 단, 이미지는 기존 페차쿠차와 달리 10개로 한다. 나는 이번 워크샵 페차쿠차 대상자였다.
이번 페차쿠차에는 나뿐만 아니라 일본팀, 중국팀 멤버 전원과 미국팀 멤버 일부가 포함되어 있었다. 긴장되게도 나는 거의 마지막 순서였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남자방에 모두 모인 직원들은 페차쿠차를 보기 위해 모였다. 처음에 이미지 열 장을 영어 설명과 함께 보내라고 할 때 이런 건 귀찮게 뭐 하러 하나 싶었다. 하지만 막상 멤버들의 페차쿠차를 보니 주책맞게도 찡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정말이지 페차쿠차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최고로 담백한 방법이다. 가장 마음을 울렸던 것은 중국팀의 조선족 멤버가 발표한 내용이었다. 혼란 속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할아버지의 고향으로 떠났던 이야기를 듣는 동안 한국의 시골길을 걷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었다.
물론 그 감동적인 서사 바로 뒤가 나의 순서라는 것은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10개의 이미지를 무엇으로 채울까 고민했던 나는 역시 나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 10대 대부분을 피아노를 치다 접어야 했던 이야기, 20대 내내 PD가 되기 위해 내가 했던 많은 노력, 숱한 좌절로 힘들었지만 내가 꿈꿔 왔던 미래, 그리고 이곳에서 키워나가고 싶은 나의 업. 공식적으로 꿈을 두 번이나 포기한 인간의 삶이라 어쩌면 울적한 소재였을 수도 있는데 다들 잘 들어줬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페차쿠차에 감동받은 것처럼 나의 페차쿠차를 보고 그들도 나를 좀 더 이해하게 되었을까? 나라는 사람과 가까워진 느낌일까?'
물어본 적은 없지만 나는 그랬다. 그 날의 페차쿠차 시간이 참 좋았다.
그 뒤로 새벽까지 이어진 성장 총괄 디렉터님과 미국에서 온 컨설턴트와 대표님의 '영어' 강의라든가 조별로 해야했던 '영어' 발표는 감동을 깨고 나의 머리를 아프게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왠지 영어 귀가 트인 것 같은 착각이 들어서 유익했다. 비록 성장 총괄 디렉터님이 나를 칭찬하고 있는 줄도 모르다 본부장님이 "쟤 누가 뽑았니 누가? 나야 나"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알아차렸을지라도 유익했다. 긴 밤이 끝나고 드디어 잘 수 있게 되자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여자 직원들이 방으로 돌아갔다. 많은 술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밤새워 노는 것은 개인의 자유였다. 체력왕인 귀요미 인턴은 술을 마시고 싶다고 나갔지만 이미 체력이 달리는 언니들은 누워서 팩을 했다. 수다 떨 새도 없이 바로 다 곯아떨어졌다. 다음날 일어나서 아침을 먹으러 남자방에 갔다가 초토화된 그곳을 보고 나는 우리의 선택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미국에서 온 컨설턴트조차 캡모자를 푹 눌러쓰고 MT 다음날의 한국인 대학생 모습을 하고 있었다. 중국 술을 챙겨왔다더니 얼마나 자비 없이 달렸으면 (긴말안함)
뭐 그다음은 별 일정이 없었다. 아침을 먹고 공기놀이를 하다가 다시 버스에 몸을 실었다. 훗날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 회사에서 간 역대 워크샵 중 가장 재미없는 워크샵이었다고 한다. 막간을 이용한 공기놀이 외에는 '놀이'가 전혀 없었으니 그럴 법도 했다. 하지만 나는 항상 아직 아무것도 몰랐던 그때의 워크샵이, 그때의 사람들과 공기가 많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