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고시생의 스타트업 적응기 #6
애석하게도 동기가 쓰러진 날은 워크샵 하루 전이었다. 이벤트를 좋아하는 그녀는 일주일 전부터 인생 첫 워크샵을 기다렸으나 결국 연약한 육신 때문에 집에서 쉰다는 메일을 날려야 했다. 그것은 내가 아직 이름도 다 외우지 못한 낯선 사람들과 홀로 1박 2일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때만 해도 나와 동기가 이 회사에 가장 늦게 입사한 뉴비였다. 뉴비파워가 2에서 1로 줄어들었습니다 (시무룩)
오전 근무를 하고 점심을 먹은 뒤 출발하는 일정이었다. 기혼인 멤버들은 가족을 데려갈 수 있어서 따로 먼저 워크샵 장소에 갔다. 열두시쯤 되자 대표님의 귀여운 아들도 회사에 도착했다. 나는 아기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대표님과 똑같은 얼굴의 미니미가 아이패드로 로켓을 발사시키는 게임을 하고 있어서 더 귀여웠다. 그러나 도도한 대표님 아들은 아무리 애걸복걸해도 끝내 내게 아이패드를 넘겨주지 않았다. 나도 한 판 하고 싶었는데 쩝.
워크샵 장소에는 버스를 대절해서 갔는데 다행히 귀요미 인턴이 외로운 나에게 같이 앉자고 해주었다. 언프리티 랩스타가 유행하던 시절이라 둘이서 폰으로 열심히 보면서 갔다. 버스 안에서 한참 자고 놀고를 반복하다 보니 도착지였다. 방은 아주 초간단하게 남자방, 여자방 두 군데로 나누어져 있었다. 방을 찾아가는 동안에도 버스에서 본 언프리티 랩스타의 여운이 가시질 않았던 나는 남자 디자이너와 디스전을 펼쳤다.
위 알 낫 어 팀 A Yo 너 살쀄
충분히 날씬한 그는 틈나면 자신이 살이 쪘는지 물어보는 타입이었는데 정색하고 안 쪘다고 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 종일 모두가 괴로워진다. 하지만 나는 제시라도 된 양 디스전에 이기고 싶어서 금기어를 꺼내고야 만 것이다. 이건 컴피티션인걸?
님 고소할 거야
단단히 삐진 그의 마음을 풀기 위해 오랫동안 굽신대야 했다.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남자방에 모였다. 조별로 모여 우리 서비스에 대한 퀴즈를 푸는 시간을 가졌다. 분명한 건 그날 우리 조는 승리하지 못했다. 아마 대표님이 속해있던 조가 싹쓸이했을 것이다. 사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틈만 나면 옹기종기 모여서 한 공기놀이였다. 내 옆에 앉아 있던 분은 당시에는 몰라뵈었지만 우리 회사의 성장 총괄 디렉터였다. 향후 그의 원대한 마일드스톤에 따라 비현실적인 KPI를 달성하기 위해 쪼이게 될 줄도 모르고 나는 다리 좀 치우라며 계속 그를 구박했다. 평소 다른 미국팀 멤버들에 비해 한국에 대해 잘 모르고 한국어도 할 줄 몰랐던 미국인조차도 우리의 공기놀이에 굉장한 관심을 보였다. 나중에 그는 집에 가서 연습해 오겠다며 공깃돌 5개를 챙겨 갔다.
자녀가 있는 멤버들은 부인과 함께 아이들을 데려왔기 때문에 워크샵에는 아기와 어린이들이 꽤 있었다. 그중 4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기가 있어서 인기였다. 며칠 전만 해도 자신은 결혼해도 아기를 가지고 싶지 않으며 아기가 싫다고 열변을 토하던 개발자(23男, 츤데레)는 제일 먼저 달려와 마치 제 배로 열 달 품어 낳은 산모처럼 만면의 미소를 띠고 아기를 내려놓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4개월이면 한창 울 때 같은데 그 아기는 전혀 울지 않아서 다들 눈에 하트를 하고 조심스레 만져보았다. 반면 어린이 친구들은 몹시 활발해서 방 안을 휘젓고 다녔는데 그중 한 명이 나를 때려서 아빠(30대,개발자)한테 혼났다고 한다.
"괜찮아요. 애들은 원래 그렇지요"
너무 나무라지 말라며 내가 이렇게 말했다는데 기억이 잘 안 난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가치관은 신나게 뛰놀고 사고 치는 것이 아이들의 의무라는 것이기 때문에 괜찮다. 내 머리통쯤은 실수로 쳐도...
저녁 시간이 되자 펜션 뒤 편에 마련되어 있는 비닐하우스로 이동했다. 고기와 새우가 구워지고 있었다. 환기가 안 돼서 화생방처럼 연기가 자욱했지만 배가 고팠기 때문에 다들 잘 먹었다. 하지만 무한제공이었던 새우는 정말 짜서 대부분 한 개 이상 먹으려 들지 않았다. 일부러 많이 못 먹도록 짜게 간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정도였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제일 맛있는 것은 역시 소시지였다. 나는 소시지 굽는 개발자들 옆에 불쌍한 눈을 하고 서서 구워지는 족족 받아먹었다. 바로 옆에 초강력 난로가 있어서였을까. 어설픈 게 많고 날씨도 추웠던 식사 시간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다음 차례는 대망의 페차쿠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