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고시생의 스타트업 적응기 #5
입사 한 달도 되지 않아 동기가 쓰러졌다.
이 회사에 지원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면접 전 한 번쯤 읽게 되는 기사가 있다. 초기 멤버 중 한 명이 회사 생활에 대해 인터뷰한 것인데 읽다 보면 제법 무섭다. 스타트업이다보니 야근 택시비를 청구하면 회사에 부담이 될까봐 지하철 끊기기 직전까지만 야근했다거나 회사가 언제 망할지 몰라 적금도 1년짜리만 든다는 등의 이야기가 그랬다. 본디 스타트업 직원은 사활을 걸고 밤새 일해서 회사를 살려야 하구나 싶었다. 실제로 1차 인터뷰를 볼 때 나는 너무 일찍 도착해서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는데 대기하는 내내 한 여성이 수면안대를 하고 피곤한 얼굴로 자고 있었다. 여기도 방송국처럼 밤샘이 일상적인가 봐. 나는 확신했다. 해서 내일부터 나오실 수 있냐는 HR 담당자의 말에 조심스레
"세면도구나 갈아입을 옷 가져와야 하나요?"
라고 물었던 것이다. 하지만 HR 담당자는 빵 터지며 저희 그렇게 늦게 끝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건 빈말이 아니었다. 아무도 야근하라고 눈치 주지 않았다. 이곳에서 야근은 철저히 본인의 자유였다. 동기와 나는 마치 알람처럼 정확히 여섯시 반이 되면 튀어나가곤 했다.
그렇다면 과로도 아니고 잘 먹고 잘 자고 칼퇴한 나의 동기는 왜 한 달도 안 되어 쓰러진 것일까? 황당하게도 모 커피숍의 봄 음료 때문이었다. 한국 마케팅팀은 일주일마다 커피 내기를 했다. 모두가 귀찮아하지만, 모두가 매일 해야 하는 잡무가 있었는데 일주일간 가장 많이 빼먹은 멤버를 체크해 커피를 쏘게 하는 것이다. 걸리면 몇만 원씩 깨지는 데다 프로베이션 기간이었던 동기와 나는 걸리지 않으려고 열심이었다. 덕분에 늘 공짜 커피를 얻어 마셨다. 그 날도 당첨된 멤버를 신나게 뜯어먹으러 한국마케팅팀 전원이 커피숍으로 향하던 터였다. 메뉴 중에 처음 보는 봄 신상 음료가 있었다. 당연히 비쌌다. 하지만 결제할 멤버가 동공지진을 감추며 마셔도 좋다고 하자 우리 둘은 양심 없이 그 음료에 도전했다.
"우린 이걸 마실 권리가 있어. 시키는 대로 일을 아주 많이 했다고!"
아마 아니었는지 몇 시간 뒤 천벌이 내렸다.
우리가 시킨 음료는 체리블라썸 크림 프라푸치노였다. 누가 봐도 '나 우유 가득해요' 라는 작명인데 시킬 땐 왜 몰랐을까. 나는 선천적으로 우유를 잘 소화하지 못하는 인간이다. 카페인 알레르기도 있어서 커피도 마시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살면서 커피숍에 갈 일이 별로 없어서 라떼나 프라푸치노 모두 우유가 들어간다는 것을 자꾸 잊는다. 동기도 그랬나 보다. 오후 6시쯤부터 둘 다 자리에서 배를 움켜쥐기 시작했다. 둘만 그 메뉴를 마셨고 둘만 동시에 배가 아픈 것으로 보아 커피숍의 봄 음료 때문이 분명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통증은 심해졌다. 끙끙대며 일하고 있는데 내 자리로 동기가 다가왔다.
"배가 너무 아파요"
나도 그렇다며 고통을 나누려던 참이었다.
"119 좀 불러주세요"
그러나 동기는 저 말을 남기고 책상 위로 우당탕 쓰러졌다.
사무실에 남아있던 모든 직원들이 달려왔다. 평소 하얬던 동기의 얼굴은 노래져 있었다. 대표님이 의무 소방 출신인 기획자에게 뭐라도 해보라고 하자 119가 오는 동안 그는 충실히 동기에게 상태가 어떤지 물었다. 모두가 심각한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하지만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던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동기는 지금 화장실에 가야 해.'
결국 어떻게 둘러대서 화장실까지 데려가는 데는 성공했는데 여직원들이 잔뜩 따라 들어온 것이 문제였다. 한시가 급한데 이래서는 편안히 일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일단 저희는 좀 나가 있을까요?"
겨우 사람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다행히도 조금 있으니 동기는 나아진 얼굴로 화장실을 나왔다.
훗날 내가 글을 쓴다고 말하자 그녀는 그 날을 이렇게 회고했다.
"제가 화장실에서 끙끙대던 것도 쓰실 건가요? 사실적으로 써주세요. 그땐 수습 기간이라 응가 싸게 나가달라는 말을 하기 어려웠어요"
급한 불(?)은 껐지만 그래도 응급실엔 가야 했다. 한 명은 따라가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당연히 그 사람은 나였다. 하지만 그 순간 나에게도 신호가 왔다. 결국 귀요미 인턴이 동기를 데리고 응급차를 타기로 했다. 장군처럼 손을 들고 자원한 그녀의 의리에 다들 감명했으나 사실은 제세동기로 전기충격요법을 쓰는 장면을 보고 싶어서 그랬다고 한다. 물론 응급차를 탈 때쯤 동기는 꽤 괜찮아졌기 때문에 귀요미 인턴의 큰 그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하나뿐인 동기가 실려 가는 모습을 보지도 못한 채 화장실에서 삐요삐요 소리를 들으며 힘을 줘야 했다. 그때 우리 참 진상 콤비였네. 하루 하루가 재미있었다.